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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도서]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박건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역사 컬렉터를 자처하는 박건호의 두 번째 책이다. 사실 매우 재미있고, 의미있게 읽은 그의 첫 번째 책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에서 아쉬웠던 점 하나가 있다면 집요함이었다. 예를 들면, 한 통의 편지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까지는 추적했지만, 그가 나중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금세 포기해버리는 것 같았다(내 느낌이다). 아무래도 미시사 같은 것을 연구하는 역사가는 아니기 때문에 문헌을 찾아 파헤치는 작업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라 이해한다. 다만 조금 아쉬웠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 아쉬움을 저자도 느꼈던 것일까?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에서는 제목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탐정처럼 자료 너머의 진실을 몇 꺼풀씩 벗겨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상상력이 중심이었던 게 전작이었다면 여기서는 훨씬 근거에 기반을 두고 개인의 삶을 추적하고 있는 셈이다.

 


 

 

편지나 사진, 유언장 등과 같은 가장 사적인 자료에서 가장 공적인 역사를 이끌어내며, 미시사와 거시사를 통합시키는 작업은 여전하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 순간부터 시대의 자식의 된다고 하면서, 역사와는 무관할 것 같은 개인의 삶이 역사적 상황과 너무나도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박건호의 책을 읽으며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역사 속 그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무력했던 개인도 이해하게 되는데, 창씨개명이나 징용에 끌려가면서(혹은 자원하면서) 유언장에 아내에게 국방헌금을 내라고 한 것 등이 그 흔적들이다. 그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으랴! (다만 그 역사적 비극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을 소개한다. 윤석중의 <먼 길>이라는 동시다.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기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알고 있던 동시다. 젊은 아빠와 아가의 평온한 이별 장면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시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동시가 징용 가는 아빠가 모티브라는 것이다. 윤석중 작가 자신이 1939년 징용 통지를 받고 아내와 2살짜리 아들을 두고 떠나야 했다고 한다. 이제 이 동시가 달리 읽힐 수 밖에 없다.

 

역사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생각를 했던 적이 있었다.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그 길에 서겠다는, 젊었을 적의 각오는 희미해졌다. 나의 삶, 가족의 삶 하나 제대로 건사하는 게 쉽지 않아는 걸 깨달으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박건호의 책을 읽으며 지금 내가 남기는 기록 하나하나가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막중해지는 느낌이 든다. 나의 삶이 시대의 흔적, 기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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