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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도서] 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정연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작은 마을 셜리폴스에는 삼십대 초반의 엄마와 열여섯 살 딸이 산다. 그들의 이름은 이저벨과 에이미. 어느 해 여름, 그들에게는 거센 감정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해 여름 그들에게 닥친 사건과 그에 따른 갈등은 펼쳐진 오래전부터 유전(流傳)되어 온 것이기도 하고, 그들에게서 느닷없이 펼쳐진 막연한 안개 속 같은 것이기도 했다. 갈등의 끝에는 화해가 오고, 아픔을 겪어야 성장한다고 하지만, 과연 누구에게나 그런 갈등과 아픔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그런 갈등과 아픔을 미화시키기 위한 위로는 아닌지.

 

작은 읍내 같은 마을이고, 그 좁은 공간에서 엄마와 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학교, 공장 사무실 등에서 벌어지는 작은 커뮤니티의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삶의 우여곡절은 커뮤니티의 크기와는 상관없다. 흔하디 흔해 보이는, 홀로 딸을 키운 엄마와 사춘기에 접어든 딸 사이의 갈등은 오히려 시시해 보이지만, 그게 엄마와 딸에게 이어진 운명의 고리 같은 것이 걸려 있다면 그것은 결코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에 성(), 그것도 정상적이지 않은, 선생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끼어들고(제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나,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어른들의 불륜이 있다. 사랑의 감정과 신분 상승의 욕구가 얽혀 어떤 것이 진짜인지 모르는 상황도 있으며, 십대 소녀의 우정도 그려진다. 이런 굵직한 갈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전개는 어수선하지 않다. 그게 작가의 능력이다.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가의 능력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 올리브 키터리지으로 증명되는데(나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지 않았다). 그게 어떤 작품인지 모르지만 이 작품으로도 충분히 작가적 능력은 인정받았지 않았나 싶다. 좁은 지역에, 길지 않은 시간 속에 여러 부류의 개성 있는 인물들을 섞어 놓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다루면서,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중심을 굳건히 하면서도 이른바 조연들의 몫도 충분히 챙긴다. 주연들의 활약이 조연의 배경을 통해 빛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전개는 잔잔히 이어지다, 갑자기 휘몰아치면서, 독자의 감정마저 격하게 만들며 책장을 급하게 넘기도록 하더니 어느새 결말이 이른다. 결말은 너무 갑작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질질 끌어가지도 않는다. 절정의 순간을 지나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다보면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에서 딸(에이미)는 엄마(이저벨)검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긴다. 어디서나 존재하는 굵지도 얇지도 않은 그 선은 정체가 없는, 단지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게 운명 같은 것, 대물림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엄마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엄마를 원했던 딸은, 격정적인 십대의 여름을 보내며 성숙해지고,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으로써 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이 비슷한 운명을 겪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

 

소설의 끝에 후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주로는 무엇을 할 걸, 무엇을 하지 말 걸, 그런 것이다. 그러나 후회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후회는 반복되기 마련인데, 그래서 난 후회란 참 무책임하단 생각해 왔다. 후회할 일을 절대로 않겠다는, 이를 앙다문 다짐!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려 그리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진다. 그건 또 과거에 대한 왜곡이 되는 건 아닐까? 적당히 후회도 하며 살아가련다. 후회가 아니라고 거듭거듭 강조했던 것을 조금은 후회한다고 하리라. 다만 될 수 있으면 빨리 후회를 추억으로 전환시키리라. 그리 되었을 때 삶이 좀 너그러워지고, 멀리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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