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그래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나는 출생 시 기대수명의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이고, 또 하나는 아동 사망률의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이다. 앞의 그래프는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30세를 조금 넘는 출생 시 기대수명이 80세 가까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증가한 우리의 평균 수명이 최대 수명이 증가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비율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라는 걸 아동 사망률 추이 그래프가 알려준다. 우리는 겨우 100년, 혹은 그것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추가로 2만 시간이라는 추가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감염지도』,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등 탁월한 저서의 저자 스티븐 존슨은 이 2만 시가이라는 추가 시간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을까에 대해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추적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흔히 생각하는 것과도 조금 결이 다르다. 이를테면 항생제를 이야기하면서 플레밍이나 혹은 또 다른 과학자의 영웅적 활약, 내지는 페니실린과 항생제의 놀라운 효과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지만, 그것과 함께 페니실린이라는 약이 정말 인류의 수명을 증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데에는 플로리와 체인이라는 연구자와 더불어 미국의 연구 조직과의 관계, 정부의 지원 등이 한 데 어우러졌기 때문이라고 쓴다. 즉 네트워크가 항생제가 인류의 기대 수명을 증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그렇다. 기대수명의 증가라는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기대수명의 측정’이라는 과제를 수행한 연구자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존 그란트의 런던 시민들의 사인(死因)에 관한 도표(소책자), 토머스 매큐언의 인구 증가에 관한 연구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목하고 있다. 즉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또 인식시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연구의 중요성이 받아들여지는 과정 자체가 진보였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스티븐 존슨이 “우리를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한”, 즉 기대수명을 증가시킨 결정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앞의 기대수명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이를 바탕으로 천연두의 박멸을 가져온 백신, 콜레라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데이터와 전염병학(여기서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역학(epidemiology)가 맞을 것 같다), 우유와 수돗물을 안전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한 저온살균과 염소 소독, 의약품에 관해 약물 규제와 검사를 가능하도록 한 이중맹검법, 세균감염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항생제, 안전하게 자동차를 탈 수 있게 한 안전벨트, 기아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화학비료다. 이중맹검법이라든가, 안전벨트 같은 것을 지목하는 것만으로도 스티븐 존슨이 얼마나 이 문제를 광범위하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그는 특히 네트워크를 갖오한다. 이와 관련해서 예를 들자면 저온살균법을 통해 우리가 오염되지 않은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방법을 개발한 파스퇴르 덕이라고 하는 것은 참 쉬운 해답이라는 것이다. 물론 파스퇴르라는 과학자의 놀라운 연구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의 저온살균법이 바로 적용되고 널리 퍼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파스퇴르만을 지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저온살균법을 보급시키고 인식시키는 데는 스레터의 사회적 개입, 포목상이던 로버트 밀험 하틀리의 노력, 레슬리의 투쟁 등이,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없을 정도로 함께 작용했던 것이다. 백신 역시 마찬가지로 제너만을 지목하고 영웅시 했을 때 놓치는 것이 너무도 많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것이 변했고, 또 사고도 달라졌다고 본다. 아무리 과학이 우리가 기대야할 것이라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었다(그 ‘과학’이라는 말이 정치에 오염되면서 진영 용어가 된 게 참 우습고, 개탄스럽다). 이 책에서 스티븐 존슨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명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적 노력을 하고, 또 그것의 효과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검증한 후 적용시키기 위한 국가, 사회, 국제 기구의 노력이 있을 때 우리 삶의 조건을 바꾸어 더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고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