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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랫동안 눕혀져 있었다. 애초에 두루마리 형태였을 때는 그게 당연했다(상자에 세워져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코덱스 형태를 거쳐 지금과 같은 형태의 책이 되었을 때도 한참은 서가에 눕혀져 있는 것이 보통의 경우였다고 한다. 가장 많은 책을 보여한 수도원이라고 할 지라도(중세에는 수도원이 지식 보급과 유지에 가장 큰 역할을 했으므로) 보유한 책이 수백 권을 넘기가 힘들었으니 눕혀 놓더라도 공간의 문제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책을 보관하는 문제가 생길 정도로 책이 늘어나자 책을 서가에 세워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세워서 보관할 때 지금과는 달리 책등이 보이게끔 하는 게 아니라 지금과는 반대로, 즉 앞마구리를 보이도록 했다. 지금 보면 굉장히 이상해 보이지만 그렇게 했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랬던 이유 중 하나는 책 표지를 만들면서 책등에 아무런 표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라든가 저자 이름을 책등에 적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책에 대한 정보는 쪽지 같은 데다 적고 책에 끼워 넣었으니 앞마구리를 보이도록 놓는 게 책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 편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예전에는 책에 사슬을 채워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헨리 페트로스키의 책이 사는 세계에서 옮긴다(앞의 얘기도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책에 아직 사슬이 달려 있었는데, 사슬을 책 앞표지나 뒤표지의 세 가장자리에는 아무 데나 부착할 수 있었지만 책등에는 쉽게 또는 효과적으로 부착할 수 없어서였다. (중략) 책들이 선반에 수직으로 놓이게 됐을 때, 표지 위쪽에 부착된 사슬은 책 앞마구리나 옆면으로 흘러내리면서 책들 사이에 혹은 페이지 사이에 끼어 손상을 입혔을 것이다.” (116)

 

그러니까 지금과 같이 책등을 보이도록 책장에 세워두게 된 데에는 책이 흔해지면서 도둑질해갈 염려가 줄어들고, 책등에 책에 관한 정보를 새겨넣게 되면서라는 얘기다.

 


 

책이 사는 세계

헨리 페트로스키 저/정영목 역
서해문집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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