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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도서] 두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카렐 차페크 저/김규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카렐 차페크는 로봇(robot)’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오히려 그의 작품 자체는 얘기되지 않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차페크는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초반 체코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R.U.R이란 작품에서)로봇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데에서 알 수 있듯 그는 SF 기법으로 현대 사회의 병폐를 풍자한 소설가이다.

 

차페크는 단편소설 혹은 콩트를 즐겨 썼다. 대표적인 것이 두 주머니 속 이야기라고 하는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두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 각각 24편의 짧은 소설을 담은 이 단편소설집은 모두 1929년에 출판되었다. 거의 대부분 네보이사라는 잡지에 실렸던 이야기라고 한다. 각각의 소설이 10쪽이 겨우 넘는 분량으로 한 달음에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짧게 쓴 것 말고도 이야기의 방식 자체가 독특하다. 다분히 차페크가 형식 실험을 한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에 실린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모든 이야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것은 거룩한 진실입니다.”

나이 많은 카라스는 말했다.

 

그러고는 카라스의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진다. 어떤 이야기는 중간에 잠깐 쉬어가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이렇게 화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전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형식은 구어체일 수밖에 없다(번역본이란 차페크가 체코어의 구어체를 어떻게 소설에 접목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청중을 앞에다 두고, 혹은 어떤 진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혹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20세기 현대 소설이지만 다분히 아주 오래전 구전으로 이야기를 전하던 시절을 복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범죄 이야기다. 차페크는 탐정소설의 귀재였다고 하는데, 이 짧은 소설들에서도 그런 면모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다만 짧기에 정교한 추리의 과정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찰나의 번뜩임이 더 많이 엿보인다. 사람 심리의 한 면을 툭 던져주며 당신도 이렇지 않느냐,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서도 논리적인 추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직관이 더 중요한 해결책일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것은 풍자작가의 한 면모인데, 인간의 지성보다 어리석음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그런 풍자적 요소는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잘 알지 못하던(그너 로봇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작가라는 것 말고는) 카렐 차페크의 소설집을 읽게 된 데는 <우표수집>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여기서 화자(카라스)는 자신이 성홍열에 걸렸을 때 절친했던 친구(로이지크)를 오해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친구와 멀어지고 상실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 속에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살아간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얻지만 가족들과 기계적인 관계만을 맺을 뿐이었다. 그러다 아내가 죽은 후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선 아버지의 유품을 뒤지다 자신이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카라스의 이야기를 듣는 파테르 보베스라는 이는 이렇게 말한다.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그것을 교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카라스의 다음과 같은 말로 맺는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적어도적어도 저는 그 우표수집을 다시 시작했답니다.”

 

다른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짧은 소설에서도 삶의 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그처럼 오해하고 지나온 것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우리는 오해했는지도 모르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들로 잃어버린 관계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렇게 피폐화한 우리의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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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산바람

    추석연휴 잘지내셨나요?
    오늘 저녁도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 되세요.

    2023.10.03 17:3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ena

      네, 산바람님. 저녁이 선선하다 못해 조금 서늘해졌네요. 건강한 10월 기원합니다.

      2023.10.0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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