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전학은 초파리의 시대였다.
초파리가 실험 동물로 좋다는 이유는 아마 고등학교 때쯤, 아니면 대학교 1학년 때쯤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정작은 1900년대 초반 헌트 모건이 초파리로 눈부신 발견을 해냈기 때문이다.
("모건과 초파리의 우연한 만남은 두 기회주의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쪽은 키가 크고 턱수염이 더부룩한 사람으로 실험과학에 열중했고,
다른 한쪽은 작은 몸집에 온몸이 털로 뒤덮인 동물로 실험적인 짝짓기에 열중했다.
생산적인 것을 열렬하게 추구하는 공통의 열정으로 맺어진 둘의 환상적인 결합은
실험실에서 결실을 맺었다." 27쪽)
초파리만한 실험 동물은 많았고, 지금도 많지만 모건과 그 이후 과학자들에 의해 쌓인 초파리에 대한 연구 업적들로 초파리는 가장 좋았던 실험 동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틴 브룩스는 그렇게 20세기 유전학의 역사를 바꿨던 초파리와 그 초파리를 사랑했던(?) 과학자들을 둘러보고 있다.
모건과 브리지스, 스터티번트는 초파리에서 돌연변이를 찾아내고 그것들의 지도를 작성함으로써 본격적인 유전학의 시대를 열었고, 멀러는 초파리를 이용하여 인공 돌연변이 시대를 개척했다.
모건의 제자인 도브잔스키는 초파리를 통해 유전학과 진화학을 엮고, 드디어는 '진화유전학'이라는 분야를 탄생시켰다.
"진화는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99쪽)는 저자의 소제목은 도브잔스키가 초파리를 통해 다윈이 말했지만 입증하는데 불충분했던 자연선택의 실재를 입증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다윈은 무덤 속에서 탄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유전의 기초를 밝히지 못해
평생 동안 자신의 진화론이 옳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 없었다. 유전학은 그의 이론에서 느슨하게 풀려 있던 나사들을 단단히 죄었을 뿐만 아니라, 진화생물학을 실험과학으로 바꾸어놓았다. 다윈이 제시한 진화론의 증거는 생물과 그 환경의 비교 연구와 화석 기록 및 동식물의 품종 개량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러한 증거들이 예외적이었던 만큼 그것은 기술적이고 간접적인 증거에 그쳤다. 그런데 초파리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실험적인 증거를 더해주었다." (114쪽
그 다음엔 벤저가 등장한다.
바로 인간 행동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던 과학자였다.
그는 초파리를 통해 '행동도 유전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125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틴 브룩스는 초파리의 성생활을 연구하는 트레이시 채프먼을 소개하고 있다.
초파리의 성생활이라...
묘한 느낌이다. 초파리의 그것도 '성생활'라 부를 수가 있는가?
그런데 그들의 성생활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전쟁'이다.
초파리의 정액은 암컷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고, 서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인 것이다!
브룩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초파리에 비해 인간 남녀의 싸움은 얼마나 사소한가" (159쪽)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밖에도 노화에 대한 연구, 종분화에 대한 연구 등에 대해서도 브룩스는 기꺼이 한 장 (chapter)를 할애해서 쓰고 있다.
뭐랄까? 공부를 한 느낌이다.
미생물을 다루는 사람게게 초파리 연구에 대해 이처럼 체계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모른다고 비난받거나 놀림을 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20세기 유전학과 진화학 연구(그것만도 아니지만)의 맥락도 모르면서 연구란 걸 한다는 것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할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초파리>는 내 책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꽂혀 있을 만한 책이다.
그리고, 마틴 브룩스의 마지막 문장들.
"설사 당신이 모든 주요 과학 학술지의 편집자들과 터놓고 지내는 사이라 하더라도, 설사 명망 높은 위원회의 위원이 된다 하더라도, 후손은 평생에 걸친 당신의 연구 업적을 이름도 없는 과학연감의 어느 구석에 단 한 문장의 각주로 처리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초파리의 이름은 영원하다."
- 조금은 서글프지만, 그만큼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각주 때문에 과학은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