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조선 왕을 말하다>는 조선의 여덟 임금을 다루고 있다.
악역을 자처한 두 임금, 태종과 세조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 연산군과 광해군,
전란을 겪은 임금들, 선조와 인조
절반만 성공한 임금들, 성종과 영조
가만히 보면 논란이 있을 만한 임금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세종이나 정조 등을 빼놓을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대신에 악역을 자처했거나 쫓겨났거나 한 임금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이덕일 씨는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도 달라지는 것인데, 그 평가라는 것은 한 꺼풀 걷어내고 보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임금들에 대한 평가를 범박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태종은 그야말로 후세를 위해 악역을 자처하고, 고통스러워 했던 임금이다.
그래서 세종이 나왔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수백 년을 지속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세조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왕좌에 오른 임금이다.
시대를 읽지 못했고, 당위성도 없었다고 평가한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둘 다 쫗겨난 임금이지만 (실은 단종도 쫓겨난 임금으로, 노산군이라 불렸었지만) 연산군은 자질이 부족했고, 준비도 없었던 임금이고, 광해군은 후계를 세우는데 불명확했던 선조의 무능 혹은 편견과 소수파로서 소통과 통합에 실패하면서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희생당한 케이스였다고 보고 있다.
선조는 정통성 콤플렉스를 겪으면서 숱한 전란의 징후에 눈을 감고 왜의 침략을 허용했고, 그래서 백성들을 고통을 가져오게 한 임금이고, 임금(광해군)을 갈아치고 임금 자리에 오른 인조는 한 정파(서인)의 왕이었고, 명분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임금이었다.
그리고 선조나 인조는 후계를 세우는데 어떤 형식으로든 실패한 임금이었다.
(오락가락하면서 어쩔 수 없이 광해군에게 임금 자리를 넘겨준 선조와 의심으로 소현세자와 손자까지 죽음으로 몰고간 인조였다.)
그럼 왜 성종과 영조를 절반만 성공했다고 하는가?
성종은 자신의 왕위가 당연한 게 아니라 공신들이 자신들에게 준 것이란 것을 자각하고
차분히 자신의 힘을 기른 후 개혁에 나섰고 업적도 남길 수 있었지만 현실과의 타협의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따라서 연산군이라는 시대적 퇴행을 가져오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 또한 조선의 문약화가 시작된 시점도 성종 때부터라는 데 '절반만 성공한 임금'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영조는 등장부터 한 정파의 옹립에서 시작되고, 경조 독살이라는 혐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탕평을 내세웠지만 자꾸 한 당파를 옹호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이성을 잃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임금이다.
저자는 영조의 가장 큰 업적을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라고 할 정도로 조금은 혹독한 평가를 하고 있다.
역사.
무서워 해야 하고, 두려워 해야 한다.
그리고 배워야 한다.
(2010년 7월 읽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