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알맹이 없이 느껴지던 코미디보다는 세상을 풍자하는 코미디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당연하게 그 안에 유병재가 있었다는 것도 언급해야겠다. 처음에는 코미디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는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 안에서 시청자들의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말로 대리만족을 이루어주기까지 하니, 그의 코미디를 무심코 지나칠 수도 없었다. 그의 일상, 그가 겪은 부조리가, 그가 보는 뉴스가 코미디의 재료가 되어 시청자들을 웃게 하고 씁쓸하게 한다. 우리,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웃고 있는 그 뼈있는 말들 속에서 우리 사는 세상의 서글픔이 함께 묻어난다는 것을. 그는 어디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고, 우리의 삶 속에 같이 녹아든 시간을 공유하는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재치와 풍자를 공감하는 우리가 이 책 속의 그의 농담 같은 문장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웃기지만, 슬퍼요..."
그가 보여주는 웃음을 느낄 때마다 따라오는 감정이다. 웃기지만, 슬픈 일. 이 책도 그 '웃김과 슬픔'의 연장선이다. 그가 하는 농담을 담은 책이지만, 한 줄씩 읽어갈 때마다 그의 농담이 그저 가볍지 않음을 알게 된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팍팍하고, 왜 이렇게 아쉽고, 왜 이렇게 쓰린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공유할 것만 같은 사이. 그가 독자에게 보내는 신호 같다. '우리, 다 이렇게 살고 있지?' 이런 세상에서 이런 농담 같은 쓴소리, 세상을 향한 외침도 못 한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가 던지는 뼈있는 농담들이 우리가 견디는 일상에 얼마나 활력소가 되는지도 증명한다. 물론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세상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눈물이 어린 농담으로 하루의 고충을 잠시 내려놓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것은 믿는다.
걱정, 근심, 게으름, 시기, 질투, 나태, 친일파, 자격지심, 악성댓글, 독재자, 뻔뻔함, 교만, 식탐, 성욕, 의심, 위선, 이기심, 군부세력, 불평등, 폭력, 성범죄자, 혐오, 피해의식, 적폐, 질투, 차별, 꼰대, 자기혐오를 내 통장에 넣어두고 싶다. 거기는 뭐 넣기만 하면 씨팔 다 없어지던데. (59페이지)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을 잃으면
대개 명예와 건강도 잃는다. (32페이지)
그의 이런 농담이 그냥 웃기기만 해서 공감을 얻는 것일까? 아니다. 그는 우리 일상 속 깊숙하게 자리한 슬픔의 지점을 안다. 그와 우리가 똑같이 경험한 이야기들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깊이를 알아서 저절로 공유되는 이야기가 되는 거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겪는 일상의 부조리를 숨죽여야만 했던 우리의 분노를 꺼내주어 소리 내는 그의 목소리에 감격한다.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나에게만 찾아오는 일일까 봐, 그냥 참는 것밖에는 할 게 없다고 여기면서도 차마 담아두지 못해 매번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는 아픔의 시간을 그가 대변해주는 듯한 이 문장들이 시원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곡을 찌르고, 쾌변을 한 것처럼 시원해지고, 조금은 씁쓸한 현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웃픈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동안 방송에서 본 유병재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만을 찾아 이 책을 선택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병재식 유머를 좋아하고 익숙하게 봐왔던 독자라면 이 책 속의 시린 웃음을 첫 페이지부터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모순을 드러내는 일, 나의 이면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일에 더없이 공감하게 된다. 짧은 문장들로 독자의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와 긴 여운을 남긴 채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코미디’ 속에서 우리 삶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그가 전하는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나의 모습과 세상의 희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으리라. 더불어, 이렇게 추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의 말 한마디로 따뜻해질 수 있다면, 속이 좀 후련해질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찾고 싶은 작가로 남을 듯하다. 지금처럼 방송에서도 그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더불어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