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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선

[도서] 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저/전승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맨부커상을 받은 최초의 퀴어 소설이라고 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앨런 홀링허스트의 작품이었다. 작가의 이름을 입소문으로만 듣고 있다가 처음 만나게 된 작품이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받아들고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은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지도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긴 소개(?) 같은 내용이 길어지나 싶은 지루함과 조급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마의 구간을 넘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그 구간을 통과하면 이 소설과 작가의 매력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취향이란 게 있으니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작가의 작품을 조금 더 읽어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길지도...

 

1980년대 초반의 영국이다. 때는 1983년. 닉 게스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그의 진로가 고민이 되었을 테지. 그는 런던의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중 대학 동기인 토비의 집에서 여름을 보낼 기회가 생긴다. 영국 상류층인 토비의 집안은 보수당 초선의원인 아버지, 부유한 금융 가문 출신의 어머니. 이 정도의 소개만 봐도 토비의 집안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집안에 섞이게 된 닉은 토비의 가족을 부러워하면서도 불편하다. 괴리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해야 하나. 돈도 능력이라던 누군가의 말처럼, 타고난 금수저 집안의 토비가 부러웠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토비의 집안을 동경한다. 언뜻 이런 느낌이 든다. 처음부터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내가 속하고 싶은 집단이 눈앞에 있는 기분. 그래서 기어코 저 집단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인생의 목표가 지금 막 설정된 것 같은... 닉은 토비의 여동생 캐서린을 케어하는 듯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닉의 마음은 토비에게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의 영국의 분위기를 잘 알았더라면, 이 소설의 처음이 그렇게 힘들게 지나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옮긴이의 말과 몇 가지 검색으로 찾아보니, 이 시대의 영국은 신보수주의가 사회를 이루던 때였다고 한다. 그러니 닉의 동성애는 여기에서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 특히 그 시대의 상류층으로 존재하던 토비의 집안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토비의 집에 머물면서 닉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그가 바라던 이상향을 향해 그곳에 머물고자 한다면 토비를 향한 마음을 접어두고 그들이 구성한 사회로 지독하게 파고드는 것.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가 이방인처럼 끼어든 상류층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즐긴다. 하지만 그 사회의 주인공이 아닌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것은 위태롭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자리에서 잠시 머무는 역할이었던 것일까? 닉이 추구하던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짧은 환상의 세계에 머물다 나온 것만 같다. 에이즈 시대가 왔던 거다. 에이즈는 동성애 혐오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분위기는 전환된다. 에이즈의 발생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회로 그들의 권력을 단단히 하는 도구가 된다.

 

성적 취향의 다른 점을 누군가는 하나의 기회로 만든다. 닉은 그 기회의 희생자가 된다. 닉의 동성애가 드러나고 그는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그것도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아, 이 배신감이란...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거다. 닉은 그들이 꾸린 상류층으로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것. 그들의 세상에서 영원히 이방으로 머물러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인 1983년, 2부인 1986년, 3부인 1987년. 한 남자의 인생을 뒤흔든 세 번의 여름이다. 이 세 개의 시기는 그의 아름다운 세상으로의 시작과 끝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토비의 집안에 끼어들기 전까지 그는 그들만의 화려한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한 발 들인 그곳에서 마치 자기가 그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한껏 즐겼다. 사랑도 만났다. 1983년의 여름은 닉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때였다. 그리고 1986년 역시 닉의 세상이 아름답게만 펼쳐졌다. 호화로운 생활도 즐기고, 백만장자의 아들 와니를 애인으로 둔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 하지만 이때부터 닉의 아름다운 세상은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이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에서 그가 주인공인 건 맞는데, 그가 머물고자 애쓰며 발을 디뎠던 그곳에서 그는 주인공으로 살지 못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던 게 아니었을까... 모든 것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인생이 끝장난 것처럼 여기는 순간이 왔을 때, 그때 알게 된 그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살짝(?) 외설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도 있지만, 단순히 흥미로움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뭔가 진짜 사랑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정말 사랑하는 사이에서 가능한 행위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경험하지 않으면 이렇게 들려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미묘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닉이 경험한 ‘아름다운 선’의 다양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말한다. 애인의 벗은 몸에서, 그가 머물렀던 저택의 화려한 고가구들에서 봤던 그 아름다운 선에 닉은 몰두한다. 하지만 미처 그가 다 보지 못한 그곳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들만의 세상을 꾸리기 위해 부를 과시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것들이 평범하디 평범한 닉의 시선에 잡히지 못한 것이다. 닉이 그들의 바닥을 목격하고서야, 결코 그들의 세상에 침입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발견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닉이 스스로 찾아가서 만난 세상, 결국에 마주하게 된 결말을 보고 그는 어떤 내일을 살아갈까?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수업료를 내고 그가 찾아갈 인생이 궁금하다. 이제까지의 시간을 뒤로하고 화려하고 부유하게 보이는 상류층으로의 진입을 또 시도할 것인지, 평범한 인생으로 태어난 자기만의 삶을 다시 꾸려갈 것인지... 어떤 길로 가든지, 그가 겪은 몇 년의 시간은 그의 삶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통해 그가 잃고 얻은 것들로 어떻게든 걸어가겠지. 물론, 그의 검사 결과가 어떤가에 따라서 그마저도 위태로운 삶이 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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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이 책의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리뷰로 잘 보고 갑니다. 신보수주의 시대에서 동성애란 용인받기 힘들었겠죠! 잠시 머물렀다 빠져나온 상류층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랬을 것 같은데요

    2018.12.03 12: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여러 가지로, 주인공은 이 시기에 인생의 험난한 순간을 겪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쉽고 또 아쉬운 현실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게 되더라고요.

      2018.12.11 14:34
  • 파워블로그 블루

    문득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의 프레디 머큐리가 떠오르네요.
    이상하게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퀴어들의 이야기는 우울한 이야기가 많아요.
    결국엔 에이즈로 이어져서 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또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닉이 거쳐왔던 세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일들이 아픔을 담고 있네요.

    2018.12.05 09:4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저도 이때는 몰랐는데, 뒤늦게 보헤미안 랩소디 보고 나니까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인정받을 것까지는 없는데, 비난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2018.12.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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