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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도서] 언젠가 헤어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F 저/송아람 그림/이홍이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꼭 그 나이가 되면 하는 고민이 있다. 얼마 전에 TV에서 봤는데, 이병 일병 때는 어떻게 하면 군대 생활 잘 적응하면서 선임에게 예쁨을 받을까 고민하고, 상병 병장이 되면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고 누군가 그러더라. 비슷한 시간을 살아오면서 비슷한 고민과 걱정으로 공감을 이루는 묘한 마음들. 하지만 그 공감은 쉽게 찾아낼 수 없다. 우리는 각자 혼자의 삶을 지내고 있으니까. 나는 여기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는 반대편에서 각자의 고민과 생각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 말로 드러내 주는 순간들이 귀하다.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럴 것이다 추측하고 있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아서 저마다의 가슴에 품고 있는 말. 그런 말들을 내놓고 같이 듣게 하는 순간이 고맙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이라는 아련한 기대를 냉정히 버리고, 분명하게 “나는 이걸 원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한다. (146페이지)

 

알면서도 바라게 된다. ‘내가 꼭 말하지 않아도 이 정도는 알아주면 안 되나? 그 정도는 눈치로 다 알아주는 거 아니야? 눈치라는 단어가 왜 생겼게?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없으니까 생긴 말 아니야? 눈치껏? 응?’ 억지라는 거 안다. 그만큼 내가 하고 싶지만 하기 어려운 말을 알아줬으면 하는 자기 욕심이 발동하는 게 인간이라는 거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말로 내 마음까지 알아달라는 건 과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분명하게 표현하는 법, 그렇게 해야만 내 마음 온전히 전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한때 나도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말도 못 하고 마음은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로 상처 입고 울면서 상대를 탓했다. 언젠가부터 이 상처를 받아들이는 게 버거웠다. 더는 내가 하지 않은 말로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말을 하는 연습을 했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없다. 나를 통해서 나가를 말이 내 마음을 대신한다. 그것뿐이다. 다른 거로는 (물론 문자나 메모나 적어서 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내 마음 같은 건 없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하려는 말들도 비슷하다. 그렇게 하지 못한 말들을 꺼내줌으로써 읽는 이들을 위로한다. 특히 그렇게 꺼내지 못한 말 대부분은 감정적이고, 그 감정적인 것을 물리적으로 해결할 방법도 거의 없다. 외롭다. 힘들다. 아프다. 이런 감정은 우리 각자의 것이고, 저마다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방법도 다르다.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똑같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감정을 느낀다는 공감이 너무 크다. ‘나 이렇게 외로운데 어떡하지? 너도 그러니? 나도 외로웠는데...’ 말하지 못한 감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안다. 그러니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꺼내놓자고. 아마도 작가가 하려는 말이 이런 거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이런 이야기들에 내가 느끼는 것도 비슷하니까 말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어쩌면 끝내 말로 드러내지 못할 것만 같아서 품고 있는 것들을 건드려놓는다. 자기만의 연애, 사랑, 현실 속 이야기들을 이렇게 공유한다.

 

 

그렇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좋아졌다. 온갖 말들과 수사로는 꾸며낼 수 없으니까 좋아진 것이다. 이미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고, 설명할 수도 없을 만큼 터무니없는 고독을 맛보게 해줬기 때문에 좋아졌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좋아진 거다. (20페이지)

 

메시지나 메일로 일주일 후의 일정을 물어본다면 10점. 내일 일정을 묻는다면 5점. 오늘 밤 일정을 묻는다면 1점. 상식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라며 별것도 없는 일상 이야기를 한다면 25점. 아무 내용도 없는 이야기는 고백과도 같다. 그건, 남자든 여자든 똑같다. (50페이지)

 

누군가,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이유를 찾아내야 하고 설명하는 일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를 짓눌렀던 무게는 가벼워진다. 상대를 알아가는 건 당연한 순서이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처음부터 잘 몰라도 문제가 아니다. 문득 좋아진 순간, 그대로 계속 좋아하면 되는 일이다.

 

싫어하는 사람과는 인연을 끊어야 한다. 완전히 끊는 것이다. 확 끊어버려라. 가차 없이 끊어내야만 한다.

그런 식으로 난폭하게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어른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좋고 싫고로 주변 환경을 통제할 수 있어야 어른이다. 어른들은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은 못 하더라도, 요령 있게 피해 다닐 수는 있다. (112페이지)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끄덕이던 부분이다. 분명, 싫은 사람과 마주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끌어안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게 꼭 옳은 방법인지 고민할 때가 많았다. 나만 그런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받고 소화가 안 되어서 억지로 밥을 먹고 소화제를 삼킬 때가 많았는데, 참 쓸데없는 고민으로 내 위장을 불편하게 했던 거다. 싫어하는 것은 끊어내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판단과 결정도 어렵지 않게 할 방법을 배우는 거 아닌가? 저자의 말처럼, 싫어한다고 말을 못 해도 그 싫어하는 것을 피할 요령을 배우는 거,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 책이 사랑과 연애에 관해 이야기하는, 익숙하게 들어왔던 많은 이야기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막상 책을 펼쳐보니, 사랑과 연애를 바탕에 둔 인생 이야기였다. 송아람의 현실 증명 웹툰은 저자의 이야기들을 더 생생하게 들리게 한다.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수도 없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때마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답을 찾느라 애써야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도,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한다는 이유를 전하고, 잊거나 사라지지 않게 좋아한다고 계속 말하면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던 한때의 순간도 의미가 없어졌다. 처음부터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다. 타인의 시선에 먼저 마음을 두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내가 이루어가고 있는 내 옆의 사람들과 다른 것들에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뿐이다. 여전히 혼자이더라도, 혹시나 다시 혼자가 되더라도, 그게 불행과 같은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언제나 혼자일 수 있고, 고독을 느끼며 살아가도 괜찮은 존재였다는 믿음.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자신감을 가지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솔직히 자신감 같은 거 있어도 없어도 그만 아닌가?

자신감을 가져야 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결국 당사자가 아니라 타인이다. 우리 눈앞에 놓인 선택은 “자신감을 가질까 말까”가 아니라, “남들 앞에서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굴까, 없는 것처럼 굴까? 어떻게 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까?”일 뿐이다. 각자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게 어떤 연기를 할지, 얼만큼 철저하게 연기할지 선택하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다. (189~190페이지)

 

솔직한 감정 표현과 의외의 순간과 판단으로 쉽게 답을 찾아내는 이야기에 빠져 읽을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의 묵직함은 조금 부족하지만, 청춘이라 불리는 이십 대가 읽었을 때 가장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속한 관계들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지낼 수 있는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본 것 같다. 우리는 많은 인연을 맺고 그 인연들과 소중하게 지내게 되지만, 언젠가 헤어지게 된다. 단순한 이별이든, 죽음으로의 영원한 이별이든. 하지만 헤어짐의 순간이 언제 올지는 모르는 거 아닌가. 언젠가 헤어질 그 순간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기보다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보는 많은 것에서 찾는 행복의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말한다. 어차피, 우리 사는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므로... ‘이 순간의 행복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것이 최우선의 삶이 아닐까 싶다’고 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보는 것. 그것 말고는 없다. 지금 내리는 빗방울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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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블루

    저는 제 감정을 표현하자고 생각했던게 이십대였던 것 같아요.
    십대 때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끙끙 앓았거든요.
    혼자서 여행도 많이 다니며 싫은 건 싫다, 좋으면 좋다 제 마음을 표현하자고 생각했어요.
    뭐,,, 지금도 그런 편이고.
    싫은 사람과는 함께 있는 자리도 힘들지만, 또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아예 피할 수는 없고요. 삶의 지혜를 말해주는 책 같습니다. ^^

    2018.12.05 09:3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누구나 그 시기에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처음부터 모든 걸 표현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걸 배우지는 못하니까요.
      자라면서 서서히 자기만의 태도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책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2018.12.1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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