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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도서] 콜센터

김의경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조용할 만하면 한 번씩 툭 튀어나오는 갑질. 생각해보면 그렇게 튀어나오는 게 한 번씩일 뿐이지, 드러나지 않은 갑질은 일상적으로 계속되어왔을 것 같다. 참다 참다 그렇게 터트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울부짖듯이 꺼내놓은 폭로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콜센터로 걸려오는 전화의 폭력은 어마어마할 것 같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뱉어내는 말의 폭력. 대이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의 크기가 작아지는 건 아니다. 안 보인다고 더 험하게 말의 폭력을 휘두르는 건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이 피자 회사의 콜센터를 담당한 적이 있다.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고, 자주 직원을 구했다.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구인광고를 많이 내는 건가 싶었다. 그저 전화받고 주문 넣어주는 것으로만 여겼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모니터를 보면서 몇 번의 클릭으로 주문이 완성되고,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되는 일로 생각했다. 하지만 콜센터의 내면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주문만 받으면 되는 일이 아니었던 거다. 주문을 받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주문을 위해 전화를 걸어온 이들의 감정까지 담당해야 했던 거다. 말투에 괜한 트집을 잡고, 잘못 전달한 주문에 화를 내고, 이 정도면 억지가 아닌가 싶게 끈질기게 직원을 잡아두는 일. 고발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던 진상들의 활약을 이 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

 

베스트 피자 콜센터. 이곳에서 만난 다섯 명의 청춘이 있다. 시현은 아나운서 시험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일한다. 주리 역시 취업준비생이다. 용희도 마찬가지다. 형조는 대학 휴학생이고, 동민은 창업을 위해 경험을 쌓는다고 콜센터에서 일하다가 베스트피자 어느 지점의 배달원으로 일한다. 콜센터의 옥상은 틈틈이 올라와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로 가득하고, 그들이 남기고 간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걸려오는 전화에다가 차마 하지 못한 욕을 한껏 내뱉고 내려간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음 전화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온갖 욕설과 트집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스려야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직접 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말로만 듣던 콜센터의 이야기가 더 생생하다. 작은 부스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계속 전화를 받고 있는 직원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읽게 된다. 등단 준비를 하면서 일할 때 작가는 이곳의 이야기가 소설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결국, 가장 힘들 때 머물렀던 곳이 작가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게 되다니... 소설 속 주인공들은 콜센터를 종착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콜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마다 가야 할 곳을 향해 눈을 두고 있지만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니, 이곳에 잠깐 머무르면서 그곳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휴학생에게는 복학과 취직을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 취업준비생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참는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참고, 내가 가야 할 곳을 가는 데 필요한 것을 충당하게 하는 곳이니까 참는다.

 

"몸도 마음도 멍투성이야."

용희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놈의 콜센터에 다니는 동안 목소리로 너무 많이 맞았어. 피가 안 나고 멍이 안 드니까 아무도 내가 아픈 줄 몰라."

주리가 눈물 고인 눈으로 말했다.

"그놈들은 혓바닥에 압정도 달려 있고 야구방망이도 달려 있어. 나한텐 마우스피스도 안 주고 링 위에 올라가라고 해." (154페이지)

 

하지만 그렇게 참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피자가게 사장은 더 빨리 많이 배달하지 않는다고 배달원을 닦달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위험하게 곡예 하듯 달리는 배달원의 위험보다 피자 배달이 중요하다. 콜센터 팀장은 팀원들이 더 많은 콜 수를 받아내기 원한다. 진상 고객의 저주 같은 악담쯤 충분히 받아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그곳에 머무르는 이들에게는 또다시 찾아가고 싶은 치열한 꿈이 있다. 그 꿈을 위해서 기다리는 곳이다. 어느 정도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서,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에 내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선택하기도 하는 곳. 하지만 수십 통의 전화를 받아내며 별의별 사람들을 상대하고 감정노동으로 혹사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시현은 자기를 며칠 동안 괴롭히던 진상을 만나러 그 진상이 사는 부산으로 간다. 이때 다른 네 명도 합세한다. 대기업 부장이라던 그놈을 만나서 똑같이 복수해주리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막상 찾아간 그곳에 진상은 없었고, 진상의 정체를 알고 나니 허탈하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에 가지 않고 다른 데서 치료를 하려고 한다. 진상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선한 얼굴을 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당하는 일상의 힘듦을 콜센터 직원에게 푼다. 화풀이 대상. 세상이 어렵고 인생이 힘들어서 한껏 소리라도 치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아서 답답할 때, '그래 너 잘 걸렸어.' 싶은 대상에게 눈이 보이는 거 없이 퍼부어대는 걸로 치유한다. 그게 진정한 치유일까?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잘못(?)으로 그 많은 말의 폭력을 당해야 하는 상담원들은 어디서 감정을 풀어내야 하는가. 쳇바퀴 돌듯, 또 다른 곳에서 말의 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걸까?

 

사장은 손짓으로 동민에게 어서 포장을 하라고 했다. 동민은 칼로 피자를 자른 다음 포장을 하고 소스와 음료를 챙겨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시동을 거는데 화덕이 보였다. 화덕은 건물 옆 골목에 놓인 커다란 쓰레기봉지 옆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쓰레기봉지와 같은 색인 흰색 옷을 입고 있어서인가 화덕도 쓰레기봉지 같았다. 사장은 화덕에게 화풀이를 했다. 진상고객들은 배달원이나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화덕은 어디에다 화풀이를 할까. 동민은 문득 그것이 궁금했다. (62~63페이지)

 

사무실에서 내내 진상들에 시달리고 모든 것을 걷어차고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일탈했는데, 그들은 결국 되돌아왔다. 어쩔 수 없는 오늘의 현실과 타협했다. 마음속의 꿈은 그대로 품고 있지만, 어쨌든 오늘은 오늘대로 살아내야 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콜센터 내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자칫 현실의 상황에 묶여 포기하기 쉬운 꿈을 그래도 놓지 않고 이어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마지막 장면으로 담았다. 미래가 불안해서 오늘의 연애를 사치라고 여기고, 큰 꿈도 아닌데 바라던 일을 눈이 높다고 핀잔 듣지 않으며 이뤄가고 싶은 바람. 생존을 위해 견뎌야만 했던 굴욕의 순간을 벗어나니 자아가 보였다. 모른 척하면서 살아가고 싶던 자아를 찾아내니 다시 내일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너무도 생생하게 들렸던 콜센터의 상황,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가진 사연들, 저마다 종착역을 찾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실감 나는 소설이다. 이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본 적 없는 사람 얼마나 될까. 순간순간이 내 일이라는 공감이라는 것을 놓칠 수 없게 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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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약자가 더 약자에게 갑질하는 사회, 뻑공님 말씀처럼 화덕은 누구에게 화풀이를 하련지!! 진상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악의 평범함!! 저마다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 사회가 나아지는 것도 아닐텐데 오늘 누구에게 상처주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습니다

    2018.12.12 08:2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을이라는 생각에, 참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상처를 덜 받고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나부터도 누구에게 상처주지 않았을까 또 생각하게 되고, 그러네요...

      2018.12.18 00:08
  • 파워블로그 블루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화를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해야만 풀어지나 봅니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감정노동자거든요.
    어느 TV에선가 콜센터 직원들의 애환이 나왔는데, 정말 견디기 어려워보였어요.
    왜 그 사람들한테 화를 내고 분풀이를 하는건지. 물론 그 회사로 들어가는 관문이기에 그럴수 밖에 없지만, 내가 이 말을 하면 고통을 당하겠구나,, 그 생각을 좀 해보면 될 것 같은데 이거 어렵단 말이지요.

    2018.12.12 09: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비슷하지 않나요?
      나의 화를 푸는 방법이 쏟아내야 하는 건데, 그렇게 쏟아내다 보면 그걸 또 받아내는 사람이 필요하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일,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 감정 노동이 아닌 게 있나 싶어요.
      항상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해봅니다...

      2018.12.1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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