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자 하는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하고,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지속되어야 하며, 납득할 만한 결말을 제공해야 한다. 대중 상업 소설을 지향하기에 문학성보다는 가독성을 추구한다.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 가장 세계에 독자들을 한껏 빠져들게 한 뒤, 책장을 덮고 현실로 돌아오며 자신만의 질문을 품게 하려 애쓴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탐구하고 공감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믿기에, 내 소설이 독자들의 삶을 살피는 계기가 되고 ‘인생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동력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쓴다. (17페이지)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 작법서(본인은 작법서가 아니라고 하지만)가 출간되었다고 해서 읽어봤다. 저자가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프롤로그에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당신에게’라고 말하는데,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소설을 쓰기 위함이 아닌, 그저 저자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를 쓰는 법’은 어떤 걸까. 요즘에는 굳이 작가가 되려는 이가 아니어도 글쓰기가 너무 중요한 상황이 많아서, 소설가가 되지 않더라도 이제 글을 쓰는 일은 누구나 갖춰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자소서를 쓸 때도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은가. 글쓰기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 일상이었던 거다.
저자 자신은 이 책이 작법서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작업서’다. ^^ 소설가만의 글 쓰는 작업을 위한 글이라고 하면서, 그의 무명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그는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다 2007년 전업 작가로 방향을 잡고,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로 데뷔를 한다. 그 후로 출간한 소설들이 좋은 반응을 불러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1년 『불편한 편의점』이 대박 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내가 알기로는 2022년 많은 도시의 올해의 책이 되었고(내가 사는 이곳 시에서도 202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선정된 도시마다 돌면서 강연을 했을 거였다. 비단 어느 도시의 올해의 책이 아니어도 그의 작품 『불편한 편의점』은 너무 인기였으니, 많이 바빴던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내가 이상하게 느끼는 건 이거다. 『불편한 편의점』 이전의 작품들이 왜 부진했냔 말이지. 정말 재밌었다고. 그의 말대로 소설은 재밌어야 하는데, 정말 재밌었어! 그래서인지 『불편한 편의점』이 여기저기에서 언급되고 인기가 있을 때, 기분이 좋더라. 괜히 그런 기분 있지 않은가. 누군가 열심히 사는 데 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지 몰라서 안타까울 때, 성실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정말 빛을 발하게 되었을 때 축하해주고 싶은 거. 나는 소설가 김호연의 다른 모습은 전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읽어왔던 그의 작품이고, 재밌게 읽었는데 그동안 잘 팔린 도서 목록에 없어서 아쉬웠다는 거, 그게 나의 진심이다.
어쨌든, 이번 신작은 저자가 그동안 써온 작품들이 어떻게 출간되었나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전하는 조심스러운 조언이기도 하다. 소설 쓰기에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어떤 환경이 소설 쓰기에 영향을 미치는지, 소설의 구성(아이템이나 플롯, 캐릭터 만드는)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같은 그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한 정보라고 해야 할까. 이 길로 가고 싶은 이가 보고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저자의 다양한 시행착오와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값진 정보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저자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다. 그 세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직접 펼쳐보면 되겠다.
쓰면 쓸수록 어려운 게 어디 소설뿐일까. 그래서인지 많은 독자가 저자의 이 고민을 이해할 것 같다. 매번 작품을 쓸 때마다 연구해야 하는 저자의 작법은, 스스로 만든 기술과 능력이 된다. ‘루틴’을 만들고, 루틴을 활용할 공간인 ‘작업실’도 중요하고, 글감을 얻기 위한 ‘산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저자의 글쓰기 근육이 된다는 ‘독서’까지, 그가 글을 쓰게 해주는 바탕이 되었다. 특히 작가가 되려는 이들에게 유용한 공간인, 소설가를 위한 전국의 공공 작업실과 문학관은 다른 작가의 글에서도 본 적이 있다. 저자가 마음을 많이 기울이는 작업실에 관해 많이 듣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덧붙여 저자가 영향을 받은 스토리텔링 작법서가 이 책의 끝에 담겨 있으니 소설을 쓰려는 이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듯하다.
내가 관심 두고 읽었던 부분은 중반 이후부터인데, 베스트셀러 작가에게도 첫 문장 쓰기가 너무 힘들 때가 있다는 것에 괜한 공감이 되고, 글쓰기에 힘이 되는 노동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 소설이 아니라 뭐라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이 두 가지는 중요하다. 첫 문장의 시작이 중요하다는 건 많은 이가 알 테고, 지루하고 고된 글쓰기에 음악이 도움이 된다는 것도 많이 공감할 것 같다. (아무 소음도 없이 고요한 상태에서 써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 그건 취향 차이겠지) 도대체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를 상황에서, 정말 한 문장만 떠올라도 쓰는 것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그 내용이 말이 되든 안 되든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써진다는 게 어디냐. 그 정도면 좋은 시작 아닌가. 계속 쓰고 읽고 하면서, 말이 안 되는 건 말이 되게 수정하고 보충하고 잘라내고 하면서 완성해 가는 것. 각자에게 맞는 방법은 각자 알아서 활용하면 되는 일이니, 어떤 경우에도 오직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건 아닐 테다.
거기에 저자가 인정한 작품들이 마지막 장에 소개되어 있다. 사실 앞부분 읽다 말고 나는 이 부분을 먼저 읽었는데, 독자로서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책 소개를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소설가가 인정한 소설 리스트다. 소설의 내용도 다양해서 더 볼만하다. 범죄 스릴러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발견하기도 하고(『심플 플랜』), 자기 과거로 복습하면서 새 인생을 쟁취하는 주인공을 보기도 한다(『캑터스』). 감정노동의 현장을 보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저절로 배우기도 하고(『콜센터』),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은 작품을 읽는 내내 한 사람의 인생을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긴장감 넘치는 생존 여정에 인간의 생명력을 확인하며(『인더백』), 인생을 배우면서 눈물도 흘린다(『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저자가 스토리텔링을 공부할 만한 최고의 작법서라고 극찬한 『액스』도 많이 궁금해서 꼭 읽어보고 싶다.
무엇을 쓰든, 그 글 속에 우리 삶이 담겨 있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읽으면서 조금씩 자신의 글쓰기를 발전시키는 것도 좋겠고, 그동안 써왔던 글이든 소설이든 읽으면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의 소설만큼이나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에, 그의 글쓰기 역사와 노력을 듣는 시간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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