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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자전거 여행

[도서] 불량한 자전거 여행

김남중 저/허태준 그림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흔히 ‘다시 태어난다’, 아니면 ‘다시 시작한다’ 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다짐하고 다시 일어서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냥은 아닐 것이고 분명 어떠한 계기가 작용해서 그러한 다짐들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그런 계기가 평생 생기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시작된 좌절은 계속 되고 ‘비뚫어질테다’를 외치기만 하겠지. 안타깝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해결 방법은 바늘구멍만큼도 보이지 않을 테지. 하지만 늘 그렇듯, 한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은 예고도 없이,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에서 그렇게 찾아오기도 한다. 뜻밖의 순간에……. ^^

 


이 책 『불량한 자전거 여행』의 주인공인 호진이, 오늘 날 자주 볼 수 있는 어린이의 표본인 것 같은 호진이다. 초등학교 6학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안 봐도 뻔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신나게 공부해야한다는 수업 시간보다는 점심 급식시간을 더 기다리고, 하교 후에는 정해진 코스로 돌듯이 학원 순회가 시작된다. 어른들이 퇴근하고 파김치가 된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서는 모습 그대로 호진이도 늘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간 집에는 아쉽게도 텅 비어 있다. 따뜻하고 든든한 말로 다독여주는 아빠도 없고, 열심히 공부하라 응원하면서 간식을 챙겨주는 엄마도 없는 집. 아빠는 회사의 충성스러운 딸랑이가 된지 오래고, 엄마는 호진이의 학원비에 보탬이 되겠다고 맞벌이에 나섰다. 모두 각자의 생활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집은 잠만 자고 다시 나가는 잠깐 머무는 간이역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집이란, 가정이란, 무엇가가 더 돈독해지기를 바라고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고 의지하는 곳이어야 할 텐데 더 이상 호진이네 집은 그런 곳이 아니다. 결국에는 엄마 아빠가 서로가 핏대 세워가면서 싸우고 이혼을 얘기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그날 밤, 호진이는 메모 한 장 달랑 남겨놓고 가출을 한다. 가출의 목적지는 집안의 망나니로,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밥벌이도 못하는 진상으로 인식되는 삼촌을 찾아 가는 것. 그때부터 시작된다, 호진이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호진이의 뜨거웠던 그 여름, 1,100km의 자전거 여행.

사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렇게 고생길 훤히 보이는 여행은 정말 싫어한다. 나이 먹고 집 떠날 일이 생길수록 편한 게 좋은 거라고, 먹는 것도 깨끗해야 하고, 실내에서 자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편히 씻고 쉴 곳을 찾아가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오직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선택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그런데 호진이의 자전거 여행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생각해오고 알아온 여행이 진짜 여행이 아닌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여행이면서, 동시에 마음에 무언가를 채우고 와야 하는 것이 성립되어야 진짜 여행이라고, 땀을 흠뻑 흘려봐야 그 시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리는 거라고, 사람들하고 부대끼고 호흡을 나누는 거, 그게 여행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자꾸만 든다.


호진이가 참가한 자전거 여행은 삼촌이 인터넷카페로 운영하는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다. 12일 동안의 자전거 여행, 편할 거라는 생각으로 참여하면 오산이다. 12일 동안 전국의 정해진 코스를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한 여름의 땡볕 아래서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만 이동할 수 있다. 침낭에 노숙은 기본이며 운이 좋으면 비어있는 교실에서 잘 수도 있다. 공동화장실에서 샤워도 할 수도 있고, 별것 아닌 반찬도 식판에 받아먹는 식사도 꿀맛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냥 자전거만 타고 무리 지어서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나름대로의 규칙과 체계가 있는 집단이다. 이끌어 주는 리더가 있고 참여자들은 그 리더의 인솔에 따라야 한다. 그래야 사고가 안생기고 정해진 대로 이동할 수 있고,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하는 자전거 친구>가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함께’다.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 있고 못타는 사람이 있다. 페달을 밟을 힘이 조금 더 있는 남자가 있고 힘이 조금은 부족한 여자가 있다. 며칠을 온 몸을 써서 자전거로 이동하다보니 환자가 생기기도 하고 그에 반해 멀쩡한 사람이 있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무엇의 차이로도 이들을 분리해 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해진 시간동안 자전거 여행을 같이 시작하고 마무리해야만 하는 약속으로 시작한 사이니까. 그리고 이들은 그렇게 해냈다. ‘함께’, ‘끝까지’, ‘무사히’.

 


호진이와 자전거 여행에 함께 한 이들은 참 다양한 사람들이다.

여행이 끝나면 암수술이 기다리고 있는 아저씨, 왕따를 당해서 대안학교에 다니는 여중생, 아빠의 강요로 억지로 참가하게 된 누나, 알코올 중독의 늪에서 이제 겨우 나온 사람, 곧 군대에 입대할 청년. 다들 저마다의 이유를 들고 자전거 여행에 참가했다. 그들은 처음 시작할 때 이미 정해져있던 목적지까지, 끝까지 그 페달 밟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의 끝, 그들의 가슴 속에 많은 것들이 채워졌다. 물론 호진이의 가슴 속에도 그들과 같은 것들이 의미를 가득 실어 담겨 있을 테지.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아야만 하는 오르막길(지옥)이 있으면 조금은 편하게 밟아도 되는 내리막길(천국)이 있을 것이고, 힘겨운 일 앞에는 언젠가 끝이 있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 땀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는 고민도 잠시 없어지고 자전거가 즐겁게 땀을 흘리게 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 가족이 ‘함께’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이혼을 얘기하는 그 순간 온 것도 가족 모두의 책임이며, 그 해결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엄마의 말처럼 모두가 ‘공범’인 것이다. 가족 구성원 누구 한 사람의 원인으로 그렇게 문제가 불거진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함께‘라는 이름으로 겉으로만 함께 했을 가족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서로가 조금씩 그 벽을 쌓아놓고 마치 내 가슴에는 벽돌 하나 얹어지지 않을 것처럼 위선을 떨었는지도. 그러다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진 벽돌 무더기가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리면, 그때는 내가 쌓은 것이 아닌 ’너‘ 때문에 쌓여진 것들이라고 책임을 돌렸겠지. 마치 나는 아무 잘못도 없었던 것처럼. 호진이의 엄마가 ’공범‘이라는 말을 외치는 순간, 호진이처럼 내 가슴도 뜨끔해졌다. ’나만 왜 이러나‘, ’세상에서 나한테만 닥치는 시련‘이라고 투정만 부리던 그 모든 순간들이 미안해졌다. 결국 모든 것의 원인은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같이 해결할 문제들이었던 것인데 말이다.

 


호진이는 가출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자전거 여행을 따라나섰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문득 이 고생길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페달을 밟아대느라 종아리 근육이 뭉치더라도, 자전거 안장이 불편해서 엉덩이가 무척 아프더라도, 뜨거운 햇살에 피부가 가려울 만큼 검게 그을리더라도, 비 오듯 흘리는 땀으로 온 몸에 소금기가 덕지덕지 붙어있더라도, 이렇게 내 가슴 속을 흔들만한 계기를 만들어주는 여행이라면 그 고생 사서라도 하겠다 싶은 마음이다.

 


“정말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을까?”

“하루에 백 킬로씩만 가면 돼. 힘들면 오십 킬로만 가도 되고, 더 힘들면 십 킬로만 가는 거야. 멈추지만 않으면 돼.” (208 페이지)

“백 미터만 더 가자. 할 수 있어! 다 왔다!”

“이제 오십 미터 남았다. 힘내!” (84 페이지)

다들 싸우고 있었다. 나도 싸우는 중이다. 처음에는 싸움 상대가 가지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높이 오를수록 알 수 있었다. 산은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다. 나와 싸우는 거다. 내 속에 있는 나, 포기하고 싶은 나와 싸우는 거다. 몸이 편하려면 집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집을 떠났고, 온 힘을 다해 산을 오르고 있다. (131 페이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문구들이 이 책 속에 가득 차 있다.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그 페달 밟기를 멈추지 않게 만드는 저 외침들이 귓가에서 쟁쟁~ 울린다.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내가 그들을 응원하면서 같이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 것 같은 착각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그들의 자전거 대열에 합류해서 같이 땀을 뚝뚝 흘리고 있는 모습을 찾고 있다.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고, 눈부신 햇살에 눈도 찡그려보고, 앞서 가는 사람의 실룩거리는 엉덩이도 보고, 지금 내 몸에서 계속 흐르고 있는 이 땀을 느끼는 순간. 정말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느낀 그것과 꼭 같은 모습이기를 감히 바라본다. 시작은 불량한 여행이었지만 그 마지막은 행복한 여행의 시작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말이다.

 



-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서대문도서관 2011년 선정도서

- 한 권의 책으로 하나 되는 익산 2011년 선정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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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깽Ol

    여행은 하고싶은데..
    그 설레임보다는 몸의 피곤함이 더 와닿아서 에이~!하고 맘을 접고야 만답니다.
    그런데 호진이와 같은 여행이라면 꼭 한번쯤 해보고 싶어요.
    하긴..집 떠나서 개고생 좀 해봐야 내 삶의 진정한 의미, 소중함을 깨닫는다니까 -.-;;;;
    자전거 타고 공님 댁 놀러갈께요! 밥 한그릇 주소! 살아서 갈런지 원..ㅎㅎ

    2011.11.03 00:0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제가 그래요. 몸의 피곤함이 귀찮아서 움직이기 싫어해요.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진짜 명언이에요... ㅎㅎ

      삽으로 퍼드릴께요. 근데 출발은 할 수 있나요? ㅎㅎ 엉덩이 30cm짜리 쿠션 깔고 댕겨야 할 것 같은데요... 생각만 해도 끔찍... ㅡ.ㅡ;;;

      2011.11.06 20:33
  • 파워블로그 블루

    주말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은데 신랑은 등산가자고 해요.
    가기 싫어도 억지로 따라나서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면 힘들기는 해도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요.
    내가 오늘 열심히 살았구나 싶고,
    땀 흘리고나면 내가 살아있구나 싶고.
    여행도 그런것 같아요.
    돌아올 곳이 있는 여행길이기에 마음속에 많은 걸 채워올수 있어요.
    여행 떠나봐요. ^^

    2011.11.03 17:5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블루님 남편분은 진짜 부지런하시고 건강하실 것 같아요. ^^
      오늘 좀 오래 걸었더니 다리에 알이 이따시만하게... ㅎㅎ

      2011.11.06 20:37
  • 파워블로그 eunbi

    초등학교 6학년의 1100km... 왠지 와닿지가 않습니다... 저도 자전거는 좋아하고 일찍 탓지만... 초6때 체력도 좋았지만... 저에겐 무리란 생각... 입니다... 물론 책에는 인터넷동호회의 도움을 받는거 같은데... 그래도 좀 그렇습니다...^^

    2011.11.04 10:1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뻑공

      ㅎㅎㅎ 이야기니까요. 근데 실제로 요즘 초등학생 보면 저 자랄 때의 중고등학생 같아요. 어찌나 크고 똘똘한지... ^^ 자전거 여행, 참 말은 멋지긴 한데 얼마나 힘들지 감히 상상이 되지가 않네요. ^^

      2011.11.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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