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북클럽에서 본 작품 중 유독 눈길을 끈 소설 <<자기 앞의 생>>속 주인공 로자와 모모의 만남이 특별한 인연으로 마음 속 화톳불을 지핀다.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던 인생의 이면에 자리한 생활의 음영은 다양한 외양만큼이나 다채로운 인생 속에 녹아 있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생각한 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점이 많음을 알면서도 생각대로 살고 싶은 갈망이 컸다. 일회적인 유한한 삶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점을 떠올리며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 가는 길의 여운을 곱씹으며 모모와 그녀가 함께 지냈던 7층 후미진 공간의 음울함 속에 깃든 사랑의 힘을 그려본다.
'로자 아줌마'와 함께 승강기도 없는 7층에 살고 있는 아랍인 소년 모모는 빈민가에서 생활하며 희망을 꿈꿀 수 없는 공간에서 이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는 동반자로 구차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창녀 출신의 로자는 창녀들이 낳은 자식들을 돌보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녀 역시 한 때는 아름다움으로 쾌락을 팔며 지냈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둔중한 노인으로 변모해버렸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후로도 험난한 생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로자 아줌마와 함께 생활하며 일찍 철이 든 소년 모모는 삶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인생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갔다. 단란한 가정의 소소한 행복 속에 자라는 ‘나딘’의 집에서 겪은 일들은 모모의 마음속에 자리한 바람을 드러내게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슬픔을 포용하고 살아야 함을 각성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차피 나와는 번지수가 다른 곳이었으니까’라고 되뇌는 모모의 모습은 짐짓 괜찮은 척,어른인 척 하던 그의 태도에 안쓰러움이 일었다. 깊은 병으로 병원 시세를 져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로자 아줌마는 모모가 있어 그녀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의미 없는 생을 연장시키는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깊어진 로자 아줌마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던 모모의 비애는 커보였다. 의사는 로자 아줌마를 살리기 위해 병원에 보내라고 하지만,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그냥 죽게 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그동안 온갖 고통을 받으며 살아온 그녀는 지하실에 꾸며 놓았던 자신의 안식처에서 숨을 거두었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으로 모모와의 표면적인 인연은 끊어졌지만 서로가 함께 한 시간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일상이었다. 하밀 할아버지는 책머리에,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단다.’라고 말한다. 어린 모모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가족처럼 지냈던 로자 아줌마의 죽음 이후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살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힘겹고 고단한 생활이더라도 자기 앞에 놓인 시간을 담담히 수용하며 걸어가는 ‘자기 앞의 생’ 속의 인물들은 우리의 진짜 삶을 닮아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모모가 살아가는 환경은 상상했던 것보다 열악하고, 모모와 주변 사람들의 삶 또한 비참하지만 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융해해 살아나갔다. 자신의 앞에 놓인 삶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생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특히 로자 아줌마의 그 모든 추한 몰골에도 마지막까지 그녀를 힘껏 사랑했던 모모를 보며, 서로가 생의 의미로 자리하는 사랑을 한다는 것이 숭고한 사랑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나 또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삶을 살든,그 안에 사랑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만큼 처한 상황에서 자아내는 숱한 경험은 축적되어 개개인의 역사를 이루며 수많은 생 중에 개별성을 띠게 된다. 나딘처럼 넉넉한 재산에 화목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생일 수도 있지만,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생처럼 고난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폐해진 영혼을 일깨우며 살아갈 힘을 불어넣는 ‘사랑’은 그 사람의 생에 찬란한 빛과 가치를 선사해준다. 지금까지 나의 생에도 많은 사랑들이 있었고, 여전히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고마운 사랑들이 있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사랑하며 사는 가운데 우리의 삶을 다채로운 빛으로 투사하는 가운데 사랑을 발현하며 살고 싶다. 책 속 작은 조각을 꿰어 맞추며 작품을 완성하듯 단편적인 책 소개로 시작된 독서는 강렬한 울림으로 자기 앞에 놓인 시간 틀에 의미 있는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갈 에너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