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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이고 무겁지 않은 시
not2b
200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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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산책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금빛 넘치는 금빛 낙엽들
햇살 속에서 그 거죽이
살랑거리며 말라가는
금빛 낙엽들을 거침없이
즈려도 밟고 차며 걷는다
만약 숲 속이라면
독충이나 웅덩이라도 숨어 있지 않을까 조심할 텐데
여기는 내게 자명한 세계
낙엽 더미 아래는 단단한, 보도블록
보도블록과 나 사이에서
자명하고도 자명할 뿐인 금빛 낙엽들
나는 자명함을
퍽! 퍽! 걷어차며 걷는다
내 발바닥 아래
누군가의 발바닥을
맞대고 걷는 듯하다.
황인숙 시인의 가장 최근 시집이다.
그리고 다섯번째다.
언제부턴가 시인의 시집을 모두 사서 읽었다.
또 몇권인가 산문집도 냈는데 역시 내 책장에 있다.
누군가에게 소개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우연히 알게 되었다.
운 좋게도 처음 접한 시집이 싫지 않았다.
여류시인의 감수성이 내게 맞았던 모양이다.
한때 현실에 관한 심각한 시들 속에서
그녀의 감각적이고 무겁지 않은 시가 한마디로 말해 쿨했다.
나는 그녀의 초기 시들이 더 좋다.
젊은이의 톡톡 튀는 발랄함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 시들이다.
요즘의 시들은 어딘지 모르게 그녀의 나이듦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리고 그렇게 점점 나이가 들고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뭔가 탐탁치 않게 여겨지는 것은
나 스스로 나이드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일까?
나는 가끔씩 그녀의 시집들을 꺼내 읽곤 한다.
시 속에서 내 마음같은 구절들을 발견하는 것이 즐겁다.
앞으로도 시인이 부지런히 시를 쓰고 새로운 시집을 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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