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 우선 짚고 넘어가야 중요한 점 한 가지! 음악에도 여러 가지 범주가 있는데 이 책은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처음부터 그러리라 기대하고 예상했다. 책 제목이 콕 집어서 클래식의 언어가 아니라 음악의 언어인 것은 음악하면 가장 먼저 클래식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는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흑역사(!)가 있다. 아아... 이거 정말 비밀인데...(소곤소곤) 대학을 졸업하고 갓 직장 생활을 하던 무렵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연주회에 처음으로 가본 적이 있다. 그것도 데이트 신청으로 비싼 초대권을 선물 받았다. 상대방에게 고백을 받고 서로에게 조심스러웠던 연애 초기여서 꽤나 신경이 쓰이는 자리였다. 그 당시 클래식 음악회에 1도 관심이 없었던 나는 공연 관람이 처음이 아닌양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연주를 들었으나, 이내 졸고 말았다;;; 정신줄을 아무리 붙들고 목에 힘을 줘도 티가 안 날리 없었고, 상대는 매너있게 모른 척 해준 걸로 기억한다. 아흑;;; 지금도 가끔 자기 전에 문뜩 생각나면 이불킥을 절로 하게 된다. 내가 음악적 취향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학교 다닐 때 음악 수업 시간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학창 시절을 되돌아 보노라면, 음악 수업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곤욕스러움을 더 많이 안겨주었다. 음악실에서 한 명씩 앞에 나가서 노래 시험을 치르는 시간은 나를 움츠려들게 만들어서 학창 시절 내내 내가 음치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노래방이라는 문화를 접하고 나서야 자신감을 회복했고, 심지어 제법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음악 감상 시험은 또 어떻고. 수업 시간에 한 번 들어본 클래식 곡들로 실기 시험 때 음악가와 곡명을 듣기평가 당한 덕분에 클래식을 제대로 감상하고 좋아할 겨를도 없이 정을 뗐다. 성인이 되어서도 팍팍한 생활 덕분에 노동요를 들었으면 들었지, 우아하고 고상하게 클래식을 틀어두고 감상을 즐길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음악도 수학이나 물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즐기려면 일단 알아야겠기에(아는 만큼 들릴 테니까) 클래식에 관련된 책들로 리스트를 만들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동네 음악선생이라는 친근한 명칭도 좋았고, “음악은 언어다. 소리로 마음을 주고받는 언어”라는 글귀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만큼 내용을 먼저 읽어 보았다. 첫 장부터 베토벤이 에밀리에게 보내는 따뜻한 편지글을 만났다.
사랑하는 에밀리, 나의 친구에게
너만의 길을 따라가면 된단다. 그저 예술을 행함에 그치지 말고 내면으로 파고들기를 바란다. 예술과 과학만이 인간을 신성에 가깝게 이끌 수 있기 때문이지. 사랑하는 에밀리, 정말 힘들 때는 나를 믿고 내게 편지를 쓰렴. 진정한 예술가는 자만하지 않아. 예술에는 한계가 없음을 아는 이는 자신이 목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법이거든. 다른 이들이 아무리 자신을 찬양해도, 머나먼 곳에서 반짝이는 한 줄기의 빛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천재의 수준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괴로워하지. 화려함으로 내면의 빈곤함을 감추는 이들 말고, 너를 보러, 너의 작품을 보러 가고 싶구나. ―루트비히 판 베토벤 (p11)
베토벤의 편지를 받았을 에밀리가 부러웠고, 저자 역시 수많은 에밀리 중 한 명이 된 마음으로 힘든 시기에 베토벤의 상냥한 조언에 힘입어 음악의 목표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글귀가 와닿았다. 나도 저자처럼 상냥한 음악의 언어로 자신을 발견하는 한 명의 에밀리가 되고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음악을 해석하고 연습하고 연주하듯 기록한 일상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서른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독자들 앞에서 강연하듯 큰소리를 내지 않고, 옆에서 조곤조곤 대화하듯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근한 목소리처럼 들리는 문체에 이내 귀를 기울이고 음악 이야기에 마음 한켠을 내어주게 된다. 전공자의 음악 연습에 관한 이야기는 나랑 아무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고심하는 글쓰기 연습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리고, 인생 연습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려서, 음악이 가지는 메타포에 새삼 놀랍기만 했다. 무언가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음악에 담긴 의미를 다층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에게 비추어 볼 수도 있으리라.
저자는 서문 격인 프렐류드(prelud)에서 베토벤의 편지에 대해 얘기했고, 33개로 이루어진 일상 변주곡의 중심부(Var.17)에서 베토벤의 변주곡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지막 장(Var.33)에서 다시 베토벤의 교향곡 중 환희의 노래를 언급하며 “음악은, 우리 모두를 향해 사랑하라고 전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맺는다. 그리고 저자 후기 격인 악장의 종결부(coda)에서 베토벤을 향한 질문의 방식으로 삶과 음악의 의미를 확인한다.
오늘은 오늘의 하루를 살았고, 오늘도 오늘의 음악을 배웠다. 이렇게 일상을 변주하며 나를 연습한다. 변주에는 끝이 없으니까. 그렇죠, 베토벤 선생님? (p230)
베토벤으로 시작해서 베토벤으로 끝나는 세심한 구성을 가진 잔잔하고 다정한 음악 같은 에세이였다. 처음 접한 저자이고, 저자의 첫 책인데 기대 이상으로 나에게는 의미있었기에 저자의 이름 세 글자를 가슴에 새겨두었다. 그리고 나의 종결부는 아래와 같다.
“음악이라는 언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기꺼이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베토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생겨서 관련 책들을 잔뜩 빌렸답니다. 음악도 공부도 끝이 없으니까요. 그렇죠, 동네 음악 선생님?”
[노년이 되어서라도 꼭 배우고 싶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그리고 베토벤에 관한 책들 중 몇 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책을 읽으면서 참고하면 더 좋은 내용들 모음 *
요즘 음악 관련 책들은 QR코드가 대세이던데 이 책에는 그게 없어서 아쉬웠건만 이렇게 리스트가 있어서 반가웠다.
< 저자가 만든 유투브 플레이 리스트가 있는 주소>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ZBSsp5eRJ1QasYzAQgEY-82PM_4mZjAh
책의 1장(Var.1)에 언급된 바렌보임의 연주 모습이 너무 궁금했는데 다행히 유투브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시라크 대통령 장례식 피아노 연주 동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66saQMea0kI
책의 10장(Var.10)에 언급된 이야기로 사르트르가 말년에 피아노를 연주했고 그 모습이 남아 있어서 놀랍다!
<사르트르의 피아노 연주 동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twzqvIHtVqU
책의 28장(Var.28)에 나오는 트라베소 이야기. 살면서 처음 들어본 악기 이름이라 폭풍 검색!
<바르톨드 쿠이겐의 트라베소 연주 동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6QYouEfO6Y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