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의 문제가 뭔지는 쉽게 알 수 있어. 그이는 지친거야.”
신경질적이고 우악스럽고 광포해 보이기까지한 그의 대사들을 들으며 처음에는 그, 그러니까 윌리라는 한 인간이 그러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를 상대하는 린다는 마치 아이를 달래려는 듯 차분하고 따뜻한 말로 그를 위로하로 또 다독이는데 그것 또한 그녀의 성품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가며(나는 이 책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읽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처음 저 문구 ‘지친거야’라는 말이 어느 순간 훅 들어오면서 책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공황 직전(1929년) 미국이 세계의 자본가로 득세하던 시절 활발한 물자 생산과 그 수요자를 연결 해주는 세일즈맨이 폭발적으로 활동하던 시기, 유능한 데이브 싱글먼같은 세일즈맨이 호가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윌리 또한 극중 대사처럼 빨간 셰비 자동차를 아들들이 반짝 반짝 닦아 놓고, 그를 깎듯이 섬기는 가족들 덕분에 가방을 들 필요가 없었으며, 주당 커미션만 170달러를 받으며, 아이들 또한 미래가 유망하던 시절들이 있었다.
자신의 직업을 삶의 전부로 알고 살아오는 동안 보험료를 꼬박 꼬박 납부하고, 집 할부금을 다 갚고, 여느 소시민의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낸 그가 왜 그 모든걸 다 이룬 지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분에 차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일까?
두 아들들과의 불화, 특히 큰 아들 비프와의 대사들에서 처음에는 자신의 분노와 화를 아들들에게 투영해 풀어내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자기혐오와 불확실성에 흔들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분노의 감정마저도 아들들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구조 속에서 피치못하게 세일즈맨으로로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결국 몸 바쳐 일한 회사에서도, 득의 양양하던 가족에게서도, 자신의 유년시절에게도 모두에게 인정 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그의 대사 곳곳에서 느껴졌다.
비단 192~30년대의 미국 아버지들 뿐만 아니라 5~60년대 우리나라 아버지들에게서도 느껴지는 특유의 정서가 있는데 (나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런 정서를 대입해 가면 읽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우리가 가족 내에서 가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가장이 가장의 역할을 마쳤을 때 가족들은 그를 어떻게 대우해줘야 하는건지, 또 사회는 그들에게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하는건지, 한 개인의 죽음이 우울증이나 우발성이 아닌 사회적 구조 속에 불가피하게 이뤄지는 만연한 고통이라면 이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 개선되어야 하는지...
조금 있다 이 책으로 독서모임이 있다.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한 내가 가서 어떤 말들을 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참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좋은 말들을 많이 듣고 올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