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프란츠카프카
7월 17일 277p. #민음사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13
한 줄의 문장 속에서 여러 가지 단상들이 파편이 되어 튀어 올랐다. 먼저 ‘잠자는’이라는 말을 단박에 이해하지 못했고 (^^), ‘잠자’는 그레고르의 성이었고, ‘불안한’이라는 단어에서 그레고르는 왜 불안한 꿈을 꾸나에 의구심이 일었다. 불안한 꿈을 꿀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일까? 또 벌레에도 종류가 많은데 하필이면 왜 ‘해충’으로 그를 변신시킨건지에 대해 강한 의문이 일었다.
책이 고전이라 책서명만 검색란에 넣어봐도 여러 가지 정보들이 우후죽순 이어진다. 워낙 유명하고 또 유명한 것 뿐 아니라 ‘실존주의’와 맞닿아 카프카의 작품 중 경단편임에도 시사하는 바가 묵직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벌레가 된 가족’이라는 질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얼마 전 sns에서 짧은 영상으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화통화로 “내가 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거예요?”라고 질문하는 여성의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을 읽는 내내 판타지스러운 설정인 이 ‘벌레가 된’ 나의 모습과 또 변신을 한 아이, 또는 남편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내용은 그레고르라는 청년이 어느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해 있었고,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가 벌레로 변해버린 후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면서 존재가치가 옅어지고,가족들이 그를 대하는 모습들 속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가를 떠올리게 한다. 외면되어지고, 무시되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실제적인 존재에서 서서히 희미해져가는 존재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피하기만 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완연한 벌레인 그레고르를 마주하고는 혼절하고 그런 모습을 맞닥뜨린 아버지가 분노하며 내던진 사과가 등껍질에 깊숙이 박혀 시작된 고통이 가족들의 철저한 외면과 고립속에서 서서히 죽음으로 치닫게 된다. 마지막 부분, 어떻게 저게 우리 오빠일 수 있냐라는 누이동생의 말에서 처음에는 음식을 챙겨주고 방을 치워주는 등 가족으로서 유일하게 오빠를 마주하고 보살피던 그녀가 왜 마음이 서서히 바뀌어갔는지 또 그가 외롭게 죽은 후 남은 가족들이 이후의 삶을 희망적으로 그리며 휴가를 떠나는 모습에서 현실의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이야기들을 읽어나갔다.
독서모임으로 읽은 책이라 편하게 읽었다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거리를 만들며 짧은 분량의 소설을 읽었다. <변신> 자체는 대략 70페이지 정도로 짧은 내용이다. 하지만 짧은 내용 속 생각해보고 나눠야 할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무겁고 깊었다. 가족의 안녕을 책임지기 위해 자신의 기꺼이 희생하고 또 그런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오히려 더욱 더 박차를 가했던 그의 삶이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하면서 과연 그는 그 삶에서 해방이 된건지, 저주를 받은건지 사실 모호하기도 했고, 벌레로 변한 자신을 자각하자마자 걱정한 건 이게 뭐야? 가 아니라 회사는 어떻게 가지? 였을 정도였던 그에게 가족의 부양은 어떤 의미였을지가 궁금했다.
또 벌레로 변한 그를 바라보며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는 가족들의 시선도 궁금했다. 기꺼이 마주하며 보살피는 누이, 차마 마주하지 못하는 어머니, 적대시하며 분노하는 아버지. 벌레로 변한 그는 계속해서 그들의 가족이었을까? 그냥 단순히 없애도 괜찮은 해충이었을까? 누이가 바이올린을 켤 때 아픈 몸을 이끌로 방 밖으로 나온 그는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한 행동일까? 누이에게 마지막까지도 단말마의 고통을 안고 행한 책임감이었을까? 지저분해지는 그의 방이 대변해주듯 어느 순간부터(대략 2달정도의 시간) 멸시 당하고 외면 받게 되는 그레고르는 과연 가족들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아스라이 스러져가는 존재들이 있다면 그건 다수의 혐오와 멸시, 무시와 폭력때문은 아닐까? 그레고르의 죽음은 과연 자살인가, 타살인가.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청소년독서모임 #고전소설 #카프카 #고전 #단편소설 #책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