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밤 - #최은영
8월 7일 343p. #문학동네
언니의 죽음으로 세상으로 향한 통로를 받아버린 엄마에게서 나에게 주어진건 아픔이든, 슬픔이든, 고통이든 그게 뭐든 참고 버텨내야 한다 배우게 된 지연이 여기 있다. 지연의 남편은 그녀가 정성들여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그날 다른 여자를 만나 외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 남편에게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던 지연은 남편뿐 아니라 나와 접점해있는 세상과도 멀어지고 싶었다. 할머니가 계신 곳 희령으로 내려가면서도 할머니를 단박 떠올리지 못했던건, 엄마 미선과 할머니 영옥과의 관계였다. 세상의 통로를 닫아버린 엄마는 할머니 영옥과의 통로도 닫아버렸다.
할머니를 만난 지연은 희령에서 할머니의 삶을 엿보게 된다. 머물다 갈 자리이지만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는 지연의 상황은 암흑과 불안이었다. 우연히 할머니가 간직한 사진 한 장을 보게 되면서 이 책 <밝은밤>의 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할머니 영옥의 엄마 삼천이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갖은 구박속에서 외롭게 생을 버틴, 어린티가 물씬 나는 작은 소녀였다. 그런 삼천이가 파는 찐옥수수를 천천히 씹어먹던 남자 희수는 그저 내 여자가 될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옥을 개성인 자신의 터전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으로 떠나던 영옥은 홀로 남은 엄마를 희수의 지인 새비아저씨에게 맡기고 가면서 언제고 오늘 일을 후회해 마지 않을거란걸 알아차린다.
엄마의 임종과 장례를 치러준 새비 아저씨. 죽는날 까지 그 은혜는 잊지 않으리라 다짐한 삼천은 어느 날 지친 모습으로 개성을 찾은 새비아저씨와 그의 처 새비와 조우하게 된다. 나이터울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체구가 작아서일까? 동생으로써 보살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백정의 딸이라는 말을 했음에도 “고생이 많았다지요?”라고 자신의 안부를 되물어주는 새비에게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진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만난 새비와 삼천.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이념과 사상을 문제삼아 많은 사람들이 맥없이 목숨을 잃어갈 때 그녀들은 서로에게 가족 그 이상이었다. 두어번의 이별과 그 속에서 삼천이 잊지못할 그 날, 새비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홀홀단신으로 대구로 피난을 내려가던 날, 내쫓듯 그녀를 떠나보낸 그 날을 삼천은 끝내 잊지 못한다. 그 잊지 못함으로 새비에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한 것일까? 피보다 진한 그녀의 그 진심은 새비의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을까? 한 시기를 통과하며 그녀들이 서로에게 진 빚은 빚이 아닌 진정한 용기였고 사랑이었다. 남자들이 곁을 지켜주지 않아도, 속한 삶이 지난하고 척박해도 그녀들은 서로에게 기대 그 험난한 시기를 건너올 수 있었고, 그 속에서 그녀들만이 느낄 수 있는 끈끈한 연대가 있었다. 그 연대를 나는 사랑 아닌 용기와 버팀이라 말해보고 싶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닌 얼어붙은 강물이라 했던가. 매 순간 머물러 있는 생의 어느 시기들을 부단히 헤치고 나와 삶의 그 어드매에 자릴 잡아 오롯이 선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녀들이 남긴 것들은 비단 어린 소녀들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든다. 저와 같은 삶을 살게 하지 않기 위해, 나보다 더 나은 삶은 살게 하기 위해 희자와 영옥에게 했던 그녀들의 말과 행동들에서, 그런 그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나마의 밝은 빛들에 둘러 싸여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인다. 지금 나의 밤이, 나의 번뇌가 어둡지만은 않은 것은 그녀들이 한평생을 바쳐 수 없이 많은 밤들 속에서 감내하며 용기내어 빛을 내어준 까닭이지 않을까.
그녀들의 삶을 지켜보며 결국 아픔을 이겨내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우리가 여자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그 작지만은 않은 비극들을 하나씩 하나씩 부수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새비와 삼천, 영옥과 희자, 지연과 미선, 또하나의 여인 명숙에게까지 그녀들의 삶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그런 이어지는 삶 속에서 잠시나마 무너졌던 지연은 분명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녀들이 생을 걸어 지켰던 신의와 믿음과 사랑의 힘이 지연과 이 세상의 또다른 지연을 지켜줄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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