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사들 - #안세르
8월 14일 150p. #은행나무 #도서지원
그리고 오스퇴르 부부의 집에서 일하게 된 날부터 완전히 사라진 과거는 남아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이곳에 도착하던 날 아침, 활짝 열려 있던 대문으로 휩쓸려 들어와서는 오스퇴르 부부의 집 안으로 몰려들었고, 그날 저녁이 되자마자 부부의 집은 기둥, 기와, 벽난로 그리고 아직 돌아가고 있던 시계가 뒤섞인 거대한 덩어리를 삼켜버렸다. 17
한 자락의 과거도 남기지 않고 부부의 집으로 들어선 세 명의 여성이 있다. 순진하지 않은 그녀들, 엘레오노르는 남자와 6년간 동거도 했고, 로라는 일곱명의 연애 경험이 있으며, 이네스에게는 아기도 있다. 그녀들의 지난 과거는 이 집 오스퇴르 부부의 철제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아무 의미 없이 휘발되어 버린다. 세 명의 여성들은 무료함을 가득 찬 일상을, 그저 집안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으로는 하루 하루가 권태로울 뿐이다. 그 권태를 그녀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해소하게 된다.
문체가 화려했다. 한 줄의 문장을 읽을때마다 온통 괄호로 묶어 놓고 싶었다. 그녀들이 해소하고 해소했다는 말로는 부족한 광기어린 사냥(?)의 장면들을 내 나름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싶었다. 그녀들에게 남자들은 해소와 과시, 유린과 충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들을 망원경으로 관음하는 한 노인이 등장하는데 노인의 노란 망원경 반사빛을 가지고 놀만큼 유유자적하게 그를 자신들의 시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노인이 그녀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나? 그의 ‘지켜봄’이 필요했던 그녀들에게 그 또 다른 눈길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 우리 삶이 그런 맥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어느 누구도 날 쳐다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들에 어떤 의미들을 붙일 수 있나. 누군가에게 내비쳐지는 모습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내면의 자아나 솔직한 모습들이 떠올려지기도 했다. 일순간 나에게로 향하는 눈빛이나 인식들이 사라진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될 것인지. 노인과 그녀들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춰 의미를 찾으며 책을 읽었다.
92년에 발표된 이 소설 <가정교사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소설로 평가 받는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 ‘마술적’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찰떡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안 세르는 “문학 장르의 한계를 가지고 노는 작가”라 일컬어지며 실험적 소설들을 선보인다. 이 소설은 2018년 영미권에서 출간되며 주목을 받았고 이후 조 탤벗 감독이 연출하고 ‘오징어게임’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정호연배우와 릴리 로즈뎁, 레나테 레인스베라는 칸 여우주연상 수상 배우가 참여한다고 한다. 책을 읽기 전 은행나무측에서 진행한 인스타그램 라이브 북토크(편집자 진행)를 시청했는데 세 명의 배우 중 정호연 배우가 맡을 배역은 누구일까 짐작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상상하며 읽어야지 했는데 글쎄다. 누구라고 딱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이네스이건 엘레오노르건 로라건 매혹적인 그녀라면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은 바로 각자 자신의 편에 머물면서도 화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당신이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거나 혹은 그 반대로 상대방이 당신 쪽으로 오고 싶어 해서 정말 문을 열어주고 싶었던 게 맞는지 확신도 없이 그를 맞이하는 상황에서보다 훨씬 더 잘 화합할 수 있다. 142
정호연 배우의 추천사 중 ‘울타리’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해 경계와 금기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 또한 자기 자신의 울타리 속에서 그 경계에 머물며 삶을 관망하고 도발하고 수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들이 보인 광기어린 관능적 욕망들이 결국 우리 삶 속에 숨겨진 어찌 보면 너무나도 솔직한 모습이지 않을까한다. (누구나가 쾌락적 욕망에 휘둘린다는 말은 아니다. 숨겨진 본능과 그 본능을 쟁취하려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말이다.)
#정호연 #프랑스소설 #프랑스문학 #책추천 #소설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책그램 #북그램 #책사애 #책벗뜰 #양산독서모임 #양산 #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