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아니 읽지 않았다.
재미있다고 사람들이 많이 읽고, 유명한 작가임에도 왠지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무거움과 어려움 그리고 차가운 낯선 느낌. 북흐북흐에서 김훈작가의 하얼빈을 읽기로 선정되었을 때도 걱정이 앞섰다. 잘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대로 초반은 힘들었다. 조금은 낯선 문체와 어려운 한자어가 문장을 툭툭 끊어지게 만들었다. 어려운 단어를 찾아가며 읽기도 하고 문맥상으로 뜻을 유추해가며 읽어가며, 점점 특유의 담백한 문체에 빠져들어갔다. 중반을 넘어가서는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 책장을 덮기가 힘들었다.
걱정했던만큼 어렵고 낯선 작가였고, 인기있고 유명한 만큼 소설이 재미있고, 작가의 문체는 매력적이었다.
하얼빈.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하얼빈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안중근을 떠올릴만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사건은 한국 사람이라면(아마 일본도) 당연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어쩌면 뻔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
책 표지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이 소설이 영웅 안중근이 아니라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겠구나...생각했다
안중근은 젊었고, 자신의 살길과 안위만 걱정하는 무책임한 왕과 고위대신들때문에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걱정했고, 제국주의와 문명개화를 핑계로 나날이 악랄해지는 일본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매일 고민했다. 그 고민속에 아직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된 젖냄새를 풍기는 자신의 자식들까지. 그럼에도 젖냄새 풍기는 자식들의 앞길을 위해서 안중근은 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얼빈으로, 이토를 쏘기 위해...
그러나 이토를 쏘기까지 안중근 고민하고 또 고뇌한다. 이토를 쏘고 나서도 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기 위해 애쓴다.
젊은 안중근이 이렇게까지 애쓰고 힘들여 놓은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나라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름없는 의병들의 죽음, 독립군들의 고민과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자유는 없었을 것이다. 이토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왕과 고위 대신들은 나라를 쉽게 팔았는데, 수천년간 왕과 귀족들에게 핍박받고 억압받았던 백성무지랭들이 들고 일어나 목숨을 바친 것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것일까....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보기 힘들다....
이 책이 조금 다른 것은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토의 입장도 함께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토는 젊은 안중근과 다르게 늙었지만, 흘러가며 변하는 세월을 겪으며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지금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어 본다.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은 정확하다. 이토가 생각하는 조선지배는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미개한 나라나 국민을 문명개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합리적인 의견에 미개한 나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그것이 안중근이 멈추고 싶어하는 이토의 작동원리일 것이다.
하얼빈에서 만나는 안중근과 이토, 그리고 또 하얼빈으로 향했던 안중근의 처 김아려와 자식들. 대의를 품은 안중근을 묵묵히 견뎌내며 받아들이는 김아려를 보며, 먹먹했다. 남은 그의 삶이 얼마나 퍽퍽하고 고단했을지.....
약육강식 풍진시대 (弱肉强食 風塵時代)
그 험난했던 세월을 견뎌내면 살아갔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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