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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도서]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폴 핼펀 저/김성훈 역/이강영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통일이론을 향한 두 과학자의 집념

- 폴 핼펀,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폴 핼펀이 지은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김성훈 옮김, 플루토, 2017)는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진리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아이슈타인과 파동방정식을 정립한 슈뢰딩거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과학자가 내세우는 진리와 그에 반응하는 언론의 상업성 문제를 엮어 과학적 진리에 이르는 험난한 길을 드러내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주사위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언급과 관련되어 있고,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슈뢰딩거의 사고실험을 가리키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통일이론을 향한 두 과학자의 지난한 역정을 연대기적으로 살피고 있다. 진리를 향한 두 과학자의 열정(종교에 가까운)을 묘사하며 지은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이루는 과학과는 또 다른 삶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무작위성randomness’이라는 자연 질서의 적과 맞서 싸웠다. 스피노자와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근거하여 두 사람은 우주에 대한 근본적 설명에 애매모호함과 주관성을 포함시키는 것을 싫어했다.”(33) 양자역학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면서도 두 사람은 양자역학에서 내세우는 무작위성이나 불확정성을 옹호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이론적 깊이가 생기면 영원불변의 객관적 실재가 드러날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숱한 수학적 사고실험을 통해 이들은 통일이론을 정립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들은 통일이론을 정립하는 데 실패했다. 지은이는 두 사람의 과학이론을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연결시켜 과학과 언론, 나아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심도 있게 파헤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엄격한 결정론이 지배한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뒤흔들었다.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상대속도는 누적적으로 적용되었다. 이를테면 고전역학을 믿는 사람들은 배터리 하나를 이용해 무언가를 어떤 속도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배터리 수십 억 개를 연결해 수십 억 배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할 수도 있을 것(86)이라고 생각했다. 곧 고전역학에서는 속도(에너지라고 해도 된다)에 제한이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셈이다. 이에 비해 아인슈타인은 진공에서 빛의 속도는 어느 누가 측정하든 절대적인 값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우주선 보이저 호가 믿기 어려운 빠른 속도로 빛을 쫓아간다 해도 여전히 그 빛은 보이저 호가 멈춰 있을 때와 똑같은 속도로 멀어져가는 것처럼 보인다.”(86)고 아인슈타인은 생각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에 관한 후속 논문에서 빠른 속도로 운동할 때 질량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었다. 아인슈터인은 상대론적 질량relativistic mass이 일종의 에너지 형태이며,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방정식인 E=mc2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 물체의 질량은 특정 양의 정지 질량rest mass(말하자면 타고난 질량)에서 시작한다. 이 물체가 빨리 움직이면 운동에 의한 에너지만큼의 추가적인 질량이 누적된다.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질량도 커진다. 따라서 물체가 실제로 광속에 도달하려면 무한한 양의 에너지를 질량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질량이 있는 물체는 결코 빛의 속도에 도달할 수 없다. (이미 광속에 도달해 있지 않는 한 말이다.) (89)

 

특수상대성이론은 인과적 정보교환의 빠르기에 광속이라는 상한선을 정해 놓았다. 1913년 빈 학회에서 한 강연에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은 자연이 설정한 최고 한계속도를 따르는 국소장 이론local field theory으로 새롭게 틀을 한정할 필요가 있(107~8)다고 주장한다.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명명된 이 이론을 통해 그는 태양의 중력장에 의해 별빛이 휘어진다는 과감한 예측을 내놓았다. 태양의 중력이 주변 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휘어놓아 외부관찰자의 시점에서는 태양 근처를 지나는 모든 것이 휘어진 경로로 움직일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뉴턴의 절대공간, 절대시간은 이렇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통해 와해되어버린 셈이다.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정독하다가 드 브로이의 물질파라는 개념과 마주한다. 물질파는 광자처럼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걸 가리킨다. 특히 전자는 플랑크 상수를 자신의 운동량으로 나눈 값을 파장으로 해서 진동하며 움직인다.”(188)고 드 브로이는 주장했다. 슈뢰딩거는 물질과 빛의 공통점을 찾아낸 드 브로이의 상상력에 자극을 받았다. 그는 물질파라는 파동의 모형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물질의 파동성은 미시 세계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거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눈으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눈으로 확인하는 못하는 현상들이 많이 일어난다. 소립자의 전하와 물질이 공간에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는 이러한 이유로 설정된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통일이론을 형성하는 길을 걸은 슈뢰딩거는 고양이 사고실험을 통해 양자역학의 딜레마를 본질적으로 드러냈다. 이 사고실험 속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논리를 따르면 절반은 죽어있고 절반은 살아있는 이상한 병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좀비고양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미시 세계의 불확정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고양이 사고실험은 거시 세계의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요컨대 슈뢰딩거는 살아있는 존재의 운명을 입자와 한데 묶는다는 개념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279)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의 이 사고실험에 열렬한 동의를 표한다.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둘 다 포함되어 있는 파동함수는 한 마디로 실제 상태에 대한 기술이라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지.”(279)라는 말에 양자역학을 향한 두 사람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양자역학이 지배적인 과학이론이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통일이론을 향한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의 질서가 분명히 있다는 걸 믿었으며, 인간은 다만 그 질서를 발견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언론의 상업성이 따라붙고, 권력자의 의지가 접합되면서 두 사람의 과학 연구는 끝 모르는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과학혁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라고 이 욕망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 상태에 대한 기술이 아닌 사고실험들을 언론을 통해 홍보하기에 바빴다. 언론 또한 그들의 유명세를 빌려 자기 신문사를 알리는 데만 급급했다. 아인슈타인은 끊임없이 통일이론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지만 정작 물리학계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자기 생각에 갇혀 입자 세계에 대해 알려진 다양한 연구결과들마저 그는 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의 경우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말이 문화적 밈(meme)이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문학, 대중가요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 개념은 합리적 물질주의를 비꼬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고양이는 죽어있는 것일까요? 그냥 잠들어 있는 것일까요? 나는 애매모호함, 불확정성을 좋아합니다.”(419)라고 작곡가 롤랜드 오자발은 말한다. 양자역학의 딜레마를 넘어 통일이론을 지향하던 슈뢰딩거의 꿈은 역설적으로 애매모호함이나 불확정성이라는 양자역학의 특성에 갇혀버린 셈이다. 지은이는 두 사람이 걸어간 길을 어쩌면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두 사람은 결국 풍차와 싸우려 돌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423)는 말로 평가한다. 기사도가 사라진 시대에 기사도 윤리를 실천하려 한 돈키호테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걸은 과학적 여정은 이러한 돈키호테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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