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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속의 폭풍

[도서] 바늘구멍 속의 폭풍

김기택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해골 껍데기에 붙은 얼굴

 

 

 

  눈이 피곤하고 침침하여 두 손으로 잠시 얼굴을 가렸다

  손으로 덮은 얼굴은 어두웠고 곧 어둠이 손에 배자

  손바닥 가득 해골이 만져졌다

  내 손은 신기한 것을 감지한 듯 그 뼈를 더듬었다

  한꺼번에 만져버리면 무엇인가 놓쳐버릴 것 같아

  아까워하며 조금씩 조금씩 더듬어나갔다

  차갑고 무뚝뚝하고 무엇에도 무관심한 그 물체를

  내 얼굴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음직한 그 튼튼한 폐허를

 

  해골의 껍데기에 붙어서

  생글거리고 눈물 흘리고 찡그리며 표정을 만들던 얼굴이여

  마음처럼 얇디얇은 얼굴이여

  자는 일 없이 생각하는 일 없이 슬퍼하는 일 없이

  내 해골은 늘 너를 보고 있네

  잠시 동안만 피다 지는 얼굴을

  얼굴 뒤로 뻗어 있는

  얼굴의 기억이 지워진 뒤에도 한참이나 뻗어 있는 긴 시간을

  선글라스만한 구멍 뚫린 크고 검은 눈으로 보고 있네

 

  한참 뒤에 나는 해골을 더듬던 손을 풀었다

  순식간에 햇빛은 살로 변하여 내 해골을 덮더니

  곧 얼굴이 되었다

  오랫동안 없어졌다가 갑자기 뒤집어쓴 얼굴이 어색하여

  나는 한동안 눈을 깜박거렸다 겨우 눈동자를 되찾아

  서둘러 서류 속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 김기택, 얼굴

 

 

얼굴은 표면으로 드러나 있다. 우리는 그 표면을 눈으로 본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얼굴은 그러므로 시각을 감각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대상이다. 하지만 시인에게 얼굴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감추고 있는 신기한 사물이다. 김기택의 위 시에 표현되는 대로, 두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우리는 손바닥 가득 해골이 만져지는 것을 느낀다. 얼굴의 이면에는 해골이 있다. 얼굴은 그 해골에 살을 덧붙인 것일 뿐이다. 그런데 해골은 어떻게 생겼는가? “선글라스만한 구멍 뚫린 크고 검은 눈을 가진 해골은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과는 다른 형상을 지니고 있다. 그런 해골을 시인은 얼굴 위로 느낀다. “해골의 껍데기에 붙은 얼굴을 내 손은 신기한 것을 감지한 듯 그 뼈를 더듬는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나가면서 시인은 내 얼굴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그 튼튼한 폐허를감상한다.

 

해골이 튼튼한 폐허라는 시인의 말에 주목해 보자. 해골이 없으면 얼굴도 당연히 없다. “해골의 껍데기라는 시구가 암시하듯 얼굴은 해골 위에 붙은 껍데기=살일 따름이다. 얼굴은 생글거리고 눈물 흘리고 찡그리며 표정을 만들지만, 그 표정의 이면에 해골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표정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내 해골은 늘 너를 보고있다. 요컨대 해골은 얼굴의 타자이다. =타자가 되고, 얼굴=해골이 되는 시의 세계는 표면과 이면을 가로지르는 시적 사유로 넘쳐난다. 그것이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이유는 어둠 속에서는 무엇보다 시각이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손으로 얼굴을 만진다.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의 차이가 얼굴과 해골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얼굴을 만지는 순간 우리는 해골 또한 느끼는상황에 곧바로 직면한다는 사실이다. 이 시의 3연에서 시인은 해골을 더듬던 손을 풀자 햇빛이 순식간에 살로 변하여 해골을 덮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어둠이 사라지자 빛의 얼굴이 다시 살아난다. 해골이 뒤로 물러나고 얼굴이 표면으로 드러났으므로 시인의 감각은 시각 중심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이제 보이는 얼굴이 전부가 된다. 시각의 세계에 맞춰 눈은 서둘러 서류 속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일상의 얼굴을 회복한 존재는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노동은 빛의 세계에 드러난 얼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얼굴은 또 다시 생글거리고, 눈물 흘리고, 찡그리는 표정을 만들어낸다. 일상의 반복이고, 얼굴-표정의 반복이다.

 

김기택은 이렇게 얼굴로 살아가는 일상인들의 강박을 얼굴과 해골의 미묘한 대립을 통해 표현한다. “마음처럼 얇디얇은 얼굴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표정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부서지는 마음만큼이나 덧없이 나타났다가는 이내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얼굴-표정에 비한다면, 해골은 자는 일 없이 생각하는 일 없이 슬퍼하는 일 없이늘 얼굴을 보고 있다. 얼굴이 슬퍼한다고 해서 해골이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인은) 해골에는 표정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얀 바탕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해골의 형상을 상상해 보라

 

시인은 눈으로 상상하지 말고 손으로 상상하라고 이야기한다. 눈으로 상상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손으로 상상하면 보인다는 것일까? 김기택의 이 시는 이렇듯 손으로 상상하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준다. 지금 이 순간 어둠 속에서 손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얼굴을 더듬어 보자. 그러면 빛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던 해골이 손바닥에 느껴지고, 그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김기택은 온몸으로 느끼는 그것이 바로 당신=타자라고 이야기한다. 당신의 얼굴 속에 해골이라는 타자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타자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김기택의 시작(詩作)이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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