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는 가능한가?
- 김소연 외, 『로봇 중독』
4차 산업사회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한다. 인간 지능을 대표하는 바둑기사를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기는 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사회가 올 거라고 예측한다. ‘특이점’이라는 개념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지점을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권에 해당하는 ‘로봇권’(이 말이 생소하면 요즘 유행하는 ‘동물권’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자)의 문제가 새삼 논의되는 게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 현황을 보면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한번쯤은 되새길 시기가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청소년소설로 나온 『로봇 중독』(별숲, 2018)에는 3명의 작가가 쓴 소설이 실려 있다. 소설이 허구성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세 편의 소설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로봇 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일상생활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작가들은 인간과 로봇이 만들어야 할 진정한 관계를 묻고 있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다. ‘생각 능력’으로 다른 동물과 구분되던 인간이 이제는 ‘생각하는 기계’와 더불어 생활을 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김소연은 「특이점을 지나서」에서 생각하는 로봇을 향한 인간의 불안감을 구현하고 있다. 2050년 로봇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로봇이 인간과 함께 고입 시험을 보는 실험이 이루어진다. 이니티움 305가 이름인 이 로봇은 다른 투박한 모습을 한 로봇들과 달리 인간과 거의 흡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딥 러닝은 하지 않은 상태로 중3 학생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학습하고 그 결과를 측정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로봇과 비교되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전교 회장이자 3학년 학생대표인 진용은 특히 이 로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로봇이 인간과 비교대상이 되는 상황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중간, 기말 시험에서 이니티움 305가 1등을 하자 로봇을 향한 진용의 적대감정은 더욱 심해진다. 그는 이 소설의 주인공 지영을 이용하여 로봇을 학교에서 추방하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진용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지영은 진용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역하지도 못한다. 그녀는 혼자서 밥을 먹는 자리에 이니티움 305를 초대하는 등 로봇과 친숙한 관계를 맺는다. 같은 인간인 진용이 지영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얻는 데 급급하다면, 이니티움 305는 지영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피하고 있다. 이 소설은 별다른 꿈도 없이 학교생활을 하던 지영이 로봇의 영향으로 요리사 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남자친구 진용이나 학교 선생님은 지영의 미래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에 비한다면 이니티움 305는 진심으로 지영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오면서 로봇을 적대시하는 인간의 마음이 거세지지만, 그 와중에도 지영처럼 로봇과 공존하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작가는 로봇과 공존하는 삶을 미래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셈이다.
임어진의 「로봇 중독」과 정명섭의 「거짓말 로봇」도 크게 보면 인간과 로봇의 적대감이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인공지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인식이 여기에는 담겨 있다. 「로봇 중독」은 ‘지니어스’라는 이름의 로봇이 인간과 생활하면서 자의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지니어스는 “로봇이라고 해도 외피도 약하고 힘도 잘 못 썼다. 그냥 연약한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84쪽) 생활을 편리하게 하려고 만든 로봇을 도리어 인간이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지니는 주인공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차츰 인간 세상에 적응하게 된다. 인간과 로봇(인공지능)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작가는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설 말미에서 지니는 방사능이 유출된 용해시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 인간은 갈 수 없는 곳에 가서 인간을 돕겠다는 마음을 실천한 것이다. 인간이 로봇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인간과 로봇의 관계가 정립될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제대로 투영된 경우라고 하겠다.
정명섭이 지은 「거짓말 로봇」은 제목 그대로 거짓말하는 로봇 P-23호가 주인공이다. 소년 모습을 한 P-23호는 문제가 있는 인공지능을 가려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로봇을 감시하는 로봇인 셈이다. 제4차 세계대전으로 지구는 사라지고, 살아남은 인간은 화성에 재건지구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로봇에게 시키면서도, 인간은 로봇을 동등한 생명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P-23호는 명욱이란 아이의 도움을 받아 연구소를 탈출하지만 특정 주파수를 감지하는 센서 때문에 이내 기절한다. 로봇 전문가인 명욱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인간에게서 탈출할 길을 모색하던 P-23호는 인공태양이 작열하는 농장에서 결국 연구소 직원들에게 잡힌다. 로봇을 단지 로봇으로 보려는 입장이 로봇을 인간과 동등하게 대하려는 입장을 표면적으로는 이긴 셈이다. 이야기는 P-24호로 재탄생한 아기로봇이 명욱을 향해 P-23호와 비슷한 손짓을 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과거를 기억하는 로봇이 탄생하는 순간을 작가는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이 기억을 하면 인간과 무엇이 다를까? 로봇을 다룬 이 소설들을 읽으며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다루는 일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된다. 요즘으로 따지면 ‘동물권’과 같은 것이 아닐까?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생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동물권 사상이 로봇권 사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권이든, 로봇권이든 그 밑바탕에는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관점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생명을 인간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듯, 생각하는 존재를 생각하는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관점이 여기에는 게재되어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할 명분은 사라진다. 시대가 변하면 생각도 변한다. 인간이 세운 편견=관점으로 다른 생명을 무시하는 건 분명히 옳지 않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생명윤리는 인간의 삶을 판단하는 핵심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내려놓는 일은 그래서 한없이 필요해 보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