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에서 문화적 진화로 가는 길
- 대니얼 리버먼, 『우리 몸 연대기』
중년이 되면 사람들은 해마다 건강 검진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불룩 배가 나오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을 할딱대는 빈도도 이전보다 많아진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운동을 안 한다. 고기 먹는 걸 줄이고 과일과 야채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만 되면 어김없이 폭식을 한다. 야구 경기를 볼라치면 치맥(치킨+맥주)을 꼭 챙긴다. 밥을 먹는 배, 술을 먹는 배, 간식을 먹는 배가 따로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먹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먹는 만큼 몸은 움직이지 않으니 몸에는 점점 살이 붙는다. 비만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면서도 비만을 방지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대니얼 리버먼은 『우리 몸 연대기』(웅진지식하우스, 2018)에서 진화론적 관점으로 우리 몸을 들여다본다. 600만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 속에서 진화를 거듭해 온 인간이 진화사에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에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지금 현재 어떤 몸 상태에 이르렀는지를 지은이는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600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주로 과일을 먹었다. 과일이 귀해지면 질긴 이파리, 줄기, 뿌리처럼 평소에는 먹지 않는 음식을 먹었다. 이런 음식을 먹으려면 당연히 어금니가 두툼해야 했다. 어금니가 강하고 두툼한 사람들이 살아남아 후세에 유전자를 남겼을 테니 우리는 일단 그런 인류의 후손인 셈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진화를 자연선택과 문화적 진화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자연선택은 생물학적 진화를 가리킨다. 인간은 유인원 중에서 호미닌hominin이라고 불리는 한 집단에 속한다. 진화적 계통수를 거슬러 올라가면 침팬지, 인간, 고릴라의 공통 조상을 찾을 수 있는데, 호미닌은 침팬지와 인간의 마지막 공통 조상에서 뻗어 나온 한 종(種)이라고 보면 된다. 침팬지와 고릴라와 조상을 공유하는 호미닌이 어떻게 우주에 사람을 보내는 현생 인류로 진화하였을까? 지은이는 직립보행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직립보행이 이루어지면서 손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것이 도구 사용으로 이어져 현생 인류로 진화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두 발 보행의 분명한 이점은 두 발로 서면 특정 과일을 찾기 더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랑우탄은 나무에 매달린 먹이를 먹을 때 가끔씩 나뭇가지 위에서 거의 똑바로 선다. 그렇게 무릎을 곧게 펴고 다른 가지를 붙잡은 채로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과일을 딴다. 침팬지와 일부 원숭이들도 낮게 매달려 있는 딸기와 과일을 먹을 때 비슷한 방식으로 선다. 따라서 두 발 보행은 처음에는 자세가 주는 이점 때문에 진화한 적응이었을 것이다. 식량이 드물어 경쟁이 매우 치열해지는 계절에는 두 발로 더 잘 서는 초기 호미닌이 더 많은 과일을 딸 수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더 옆쪽으로 퍼진 골반 등 직립을 돕는 특징들을 지닌 초기 호미닌 개체는 에너지를 덜 쓰고 더 힘이 세고 더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개체보다 유리했을 것이다. 더 효과적으로 두 발로 서고 걷는 개체들은 경쟁이 치열할 때 침팬지들이 그러하듯 더 많은 과일을 가져올 수 있었다. (70~71쪽)
직립보행을 하는 호미닌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특정 과일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음식을 쉽게 찾는다는 건 그만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여기다 호미닌은 옆쪽으로 퍼진 골반을 갖고 있어 다른 직립동물보다 에너지를 아끼며 이동하는 장점이 있었다. “동일한 에너지로 더 많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열대우림이 축소되고 파편화되고 개방되면서 평소에 즐겨 찾던 식량이 점차 줄어들고 분산되던 때에 매우 유리한 적응이었을 것이다.”(72쪽) 물론 직립보행을 하면서 이전에 없던 문제도 생겼다. 우선 임신한 여성은 네 발 동물과 달리 무게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균형을 잡다 보면 요추에 무리가 가는데, 이로 인해 요통은 인간 어머니들이 흔히 겪는 질병이 되었다. 이동 속도가 느려지는 것도 문제였다. 이동 속도가 느리면 사자, 표범과 같은 포식자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직립보행을 선택했다. 직립보행의 이점이 그 손해를 넘어선다고 판단한 셈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면서 인류는 점차로 뇌 용량이 증가했다. 뇌 용량이 증가하면서 인류는 이전보다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야생 과일을 주요 먹을거리로 삼았던 초기 인류는 어떻게 큰 뇌가 요구하는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었을까? 먼저 호모 에렉투스와 고인류는 몸집에 비해 소화관이 작았다. 수렵채집인이었던 이들은 고기를 사냥하고 꿀, 덩이줄기, 견과류 등을 채집하여 잉여 에너지를 비축했다. 한편으로 이들은 협력과 기술을 통해 에너지를 저장하는 능력을 키웠다.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끼리 협력을 하는 자연선택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돌로 된 창촉을 만들어 사냥을 보다 쉽게 하는 방법도 익혔다. 거친 음식은 기계적 가공으로 자르고 갈고 부수어 소화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줄였다. 날것을 먹지 않고 불에 익혀 먹어 면역계를 가동하는 비용을 크게 줄이기도 했다.
이렇게 잉여 에너지가 생김으로써 큰 뇌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유인원과 비교한다면, 인간의 뇌는 신피질이 두껍고 뉴런이 크고 복잡하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뇌 용량은 더 컸지만 창의력과 소통능력은 사피엔스가 뛰어났다. 언어 사용에 필요한 발성기관 역시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영장류와 다른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특성들이 모여 후기 구석기 시대의 상징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죽은 이를 땅에 묻는 장례문화 등이 이 시대에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만큼 인류의 의식이 그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진화되었다는 걸 알려준다.
‘행동의 현대성’을 뭐라 정의하든 그것이 후기 구석기 시대 이래로 우리 몸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으며 수천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왜 그럴까? 우리의 인지 능력과 행동을 현대적으로 만든 생물학적 형질들이 주로 문화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문화는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일군의 학습된 지식, 믿음, 가치를 일컫는다. 이러한 일은 때로는 적응 과정을 통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임의로 일어나기도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침팬지 같은 유인원은 매우 단순한 문화를,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같은 고인류는 정교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생 인류와 관련된 고고학 기록을 살펴보면, 혁신을 이루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전달하는 우리의 능력과 성향은 다른 어떤 종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철두철미 문화적인 종이다. 사실 문화는 우리 종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이다. 외계인 생물학자가 지구를 방문한다면, 그는 인간의 몸이 다른 포유류와 어떻게 다른지 금방 알아채겠지만(우리는 두 발로 걷고 털이 없고 큰 뇌를 갖고 있다.) 옷, 도구, 도시, 음식, 미술, 사회조직, 언어를 포함하는 우리의 다양하고 임의적인 행동 방식에 가장 놀랄 것이다. (216~217)
인류의 형성은 자연선택과 같은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가 이어져 이루어졌다. 지은이 말마따나 “호모 사피엔스는 철두철미 문화적인 종이다.” 문화적 진화가 현생 인류의 풍요로운 문명을 이끈 것이다.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현상적으로 다양한 먹을거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농업혁명 시기에 식물의 작물화, 동물의 가축화가 이루어졌다. 정착 생활을 하며 이전보다 식량은 많아졌지만, 농부들은 수렵채집인들보다 질병에 걸리기 쉬운 상황에 노출되었다. 수렵채집인은 유랑을 하며 다양한 먹을거리를 섭취했지만, 농부들은 쌀·옥수수·밀·감자와 같은 주요 작물만 집중적으로 재배해 먹을거리에 한계가 있었다. 지은이는 진화적 불일치로 해서 생기는 불일치 질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더욱 확산되는 불일치 질환은 문화적 진화가 인류에게 끼친 부정적 영향을 대변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불일치 질환에 걸린 현대인들이 어떻게 하면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존을 위해 지방을 몸에 저장하는 인류의 습관이, 먹을거리가 풍부해진 현대인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렵채집인이나 농부들은 먹는 만큼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지만, 현대인들은 먹는 만큼 몸을 움직이지 않아 영양 과잉 상태에 빠진다. 비만이 질병이 되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2형 당뇨병이나 심장병, 유방암 등은 지나친 풍요가 역효과를 일으킨 질병이라는 점에서 ‘역진화’에 해당된다. 너무 먹어서 생기는 병이 있다면, 쓰지 않아서 생기는 병도 있다. 이를테면 인류는 움직임이 적다 보니 뼈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폐경 이후의 여성 중 젊은 시절에 운동을 별로 하지 않았고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며 비타민 D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매우 위험하다.”(420쪽) 의자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의 습관이 뼈가 약해지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평발이나 근시와 같은 질환 역시 불일치 질환에 해당한다. 문명이 도리어 우리에게 질병을 주는 이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불일치 질환은 생명의 가장 큰 목적인 생식 기능을 크게 해치지는 않는다. 근시가 있다고 해서 자식을 못 낳는 게 아니다. 골다공증이나 심장병 등은 나이 든 사람들(즉 생식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질병이다. 자연선택으로 이런 질병들을 방지하기 힘든 이유이다. 이렇게 보면 문화적 진화로 빚어진 질병들은 스스로 환경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자세에서 그 해결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진화, 즉 더 적합한 자의 생존이 우리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고, 21세기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장단점도 거기서 비롯되었다.”(509쪽)라고 이야기한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듯, 우리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적응은 순응과는 다르다.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일으켰다. 우리가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진화적 불일치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무엇보다 강조한다. 우리는 내장지방이 쌓이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식생활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담배가 몸에 끼치는 폐해를 알면서도 여전히 담배를 즐기고 있다. 운동을 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운동할 시간을 자꾸 외면한다. 수렵채집인들은 먹을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이동을 했고, 농부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몸을 끊임없이 놀려야 했다. 우리 몸은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다는 얘기다. 많이 먹어서 질병에 걸리는 상황은 어찌 보면 우리 몸에 맞지 않은 생활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건강하게끔 진화하지 않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종족 번식에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생명에게 건강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진화적 불일치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문화적 진화라는 큰 틀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