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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식물

[도서] 싸우는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김선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경쟁하지 않고 진화하는 생명은 없다

- 이나가키 히데히로, 『싸우는 식물』

 

 

 

하늘로 우뚝 솟은 한 그루 나무가 보인다.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자란 저 나무를 보며 사람들은 식물들은 동물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동물들은 쉴 새 없이 자리를 이동한다. 한 자리에 있으면 자기보다 강한 동물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이에 비하면 식물은 언뜻 자기 자리를 지킴으로써 살아남는 듯이 보인다.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식물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싸우는 식물』(더숲, 2018)에서 식물에 대한 이런 생각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제목처럼 제자리를 지키며 삶터를 꾸리는 식물은 다른 생명들과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며 생을 유지한다. 싸우지 않으면 식물도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으려면 식물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며 싸워야 한다.

 

식물은 우선 햇빛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은 해가 온 세상을 밝게 비춘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식물 입장에서 보면, 해는 모든 생명에게 고르게 빛을 주지 않는다. 거대한 나무 아래에 사는 식물에게 햇빛이 들어올 리 없지 않은가? 거대한 나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무는 윗줄기가 아랫줄기보다 푸른 경우가 많다. 햇빛이 주로 위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무도 이런데, 나무 주변에 사는 식물이야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식물들 중에는 다른 생명에 의존해서 사는 생명들이 많다. 덩굴식물(나팔꽃, 메꽃)과 기생식물이 그렇다. 덩굴식물은 다른 식물에 의존해 줄기를 뻗는다.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이다. 덩굴식물은 이렇게 남의 힘을 이용해 위로 자라는 뻔뻔한 방법으로 빠르게 성장한다. 다소곳이 자신의 줄기로 서는 식물과 비교하면 좀 교활한 듯하지만, 덩굴식물의 생장 방식은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식물계에서는 실로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18)

 

이렇게 보면 기생식물은 덩굴식물보다 더 교활한 생존 방식을 취한다. 기생식물은 다른 식물의 체내에 부리를 내리고, 거기서 영양분을 빼앗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겨울에 녹색 잎을 피우는 겨우살이가 대표적이다. 겨우살이는 다른 나무 위에서 사는 나무이다. 거처를 빌린 듯 다른 나무 위에 자라서 이렇게 불린다. 그러나 겨우살이는 거처를 빌려 사는 정도가 아니다. 쐐기 같은 뿌리를 다른 식물의 줄기 속에 집어넣고 다른 나무의 물이나 양분을 빨아 먹는 기생식물이다.”(27) 다만 겨우살이는 다른 식물로부터 영양분을 빼앗으면서도 스스로 광합성을 하여 영양분을 얻기도 한다. ‘반기생식물인 셈이다. 야고와 같은 완전기생식물은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않고 다른 식물로부터 영양분을 빼앗아 자란다. 도둑놈 심보라고 욕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생식물은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 생명에 대한 본능만큼 강력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약한 식물이 강한 식물에 질 수밖에 없다. 강한 식물이 침입해오지 않을 것 같은, 조건이 나쁜 장소가 잡초의 서식지다. 말하자면 김매기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밭이나 사람들에게 쉽게 밟힐 수 있는 역경에 처한 환경이 오히려 잡초가 생존하는 데 필요하다. 사람이 뽑아버리거나 밟는 곳은 어떤 식물에도 좋은 환경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잡초는 이런 역경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60)

 

저마다의 식물마다 다른 생존 방식이 있다. 우리는 잡초를 생명력이 강한 식물로 알고 있다. 맞다. 하지만 잡초를 강한 식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잡초가 생명력이 강한 이유는 강한 식물이 사는 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강한 식물은 살려고 하지 않는 척박한 땅에 잡초는 뿌리를 내린다. 농부들은 농작물 주변에 핀 잡초를 뿌리 채 뽑는다. 그런데도 잡초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뽑으면 뽑을수록 잡초는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땅속에 있는 씨앗은 햇빛이 있으면 싹을 틔우지 못한다. 그런데 잡초 씨는 햇볕을 쬐면 싹이 트는 성질이 있다. 왜 그런 걸까? 지은이는 인간이 잡초를 뽑아 주위 식물이 없어져서 그런 거라고 이야기한다. 잡초를 뽑을수록 다른 잡초가 많이 생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경쟁자가 사라진 땅에 잡초는 싹을 틔운다. 잡초를 뽑는 인간이 도리어 잡초의 발아를 유도하는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책 제목이 싸우는 식물이지만, 이 책에는 식물과 병원균, 동물, 인간들이 공존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연 속 생명들의 공존을 이타적인 행위로 볼 필요는 없다. 이기적인 삶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공존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식물들이 내뿜는 독성을 중화시켜 유용한 화학 물질을 만들어낸다. 식물들이 자기 방어용으로 내뿜는 독성 물질들이 인간에게는 더없이 좋은 물질이 될 수 있다. 독과 약은 한 끗 차이다. 독도 소량 섭취하면 인체에 좋은 자극을 주어 약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식물이 미생물이나 곤충을 죽이려고 축적한 독성분 대부분을 인간은 약초나 한약의 약효 성분으로 이용한다.”(212) 식물들이 벌이는 싸움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그 싸움의 결과물들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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