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디카시 「시적용인」

차 뒷문에 누가 시옷을 새겨놓았다
人 자로도 보인다 사람부터 되라는 뜻인가
씩씩거리다 시옷 옆에 ㅣ를 긋는다
시 속에 앉아 시동을 건다
비싼 시 한 대 생겼다
- 박지웅, 「시적용인」
자동차 뒷문을 누군가 예리한 송곳으로 긁었나 보다. 검은색 자동차라 그런지 긁힌 자국이 선명하다. 내 차가 아니어도 차 주인 마음이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하겠다. 화가 난다. 저 상황에 처하고도 화가 나지 않을 이가 과연 있을까? 시인은 “차 뒷문에 누가 시옷을 새겨놓았다”라는 문장으로 시를 시작한다. 객관적인 상황을 표현한 것일까? 긁힌 자국을 보면 사람 인(人)으로 보인다. 이를 “사람부터 되라는 뜻인가”로 풀이하는 걸 보면 시인은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도 든다. 하지만 시인은 “씩씩거리다”라는 시어를 분명히 쓰고 있다. 시인이라고 일반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씩씩거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누구나 화가 나는 상황에서 시인은 그 화를 어떻게 내려놓고 있을까?
“시옷 옆에 ㅣ를 긋는다”. 시옷 옆에 ㅣ를 그으면 ‘시’가 된다. 누군가에게 긁힌 자동차가 한 편의 시로 변화되는 순간이다. 시인은 시 속으로 들어간다. 자기가 쓴 시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어떨까? 시 속에서 시인은 시동을 건다. 부릉, 하며 시동이 걸린다. 맑다. 수없이 들어온 엔진 소리일 텐데 오늘은 한없이 맑은 엔진 소리가 울린다. “비싼 시 한 대 생겼다”라는 구절로 시인은 시를 맺는다. “비싼 시”라는 시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리비가 많이 들 거란 얘기일까? 아니다. 말 그대로 시가 비싼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화=욕망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시에 내포된 가치는 한없이 뛰어오른다.
‘시적용인’이라는 제목으로 시인은 시로써 용인된 어떤 세계를 이야기한다.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 어디 일상적인 일이겠는가? 화가 난 마음은 물이 들끓는 주전자와 같다. 언제 화가 난 자신을 태워버릴지 모른다. 화가 난 원인이야 바깥에서 왔지만, 화를 진정시킬 방법은 오로지 안에만 있다. 화가 난 상황에 집착해 봐야 달라지는 건 전혀 없다. 화만 더 부추길 뿐이다. 어찌해야 할까? 시인은 ‘시적용인’에 방점을 찍고 있다. 상황을 그냥 놔두는 것이다. 상황을 그냥 인정(용인)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씩씩거리기만 하는 사람이 “시옷 옆에 ㅣ를 긋는” 이 마음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시인은 욕망의 바깥에서 시를 본다. 씩씩거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시를 본다. “비싼 시 한 대”는 이렇게 시인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