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석 디카시 「하늘의 지문」

똑 똑 또르르 똑 똑 똑 또르르르
한순간 얼어붙은 하늘 풀렸는지
꽁꽁 얼었던 땅의 몸 두드린다
막대기만 꽂아도 잎 돋고 꽃 피게 할
경칩에 내린 부드러운 하늘의 지문들
- 조현석, 「하늘의 지문」
빗방울 무늬가 창가에 서려 있다. 아름답다.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구성된 빗방울 무늬를 보며 규칙에서 벗어난 것들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낀다. 규칙에 얽매이면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규칙이란 네모난 틀이 아닌가? 어디로 가든 사방이 막혀 있다. 시는 규칙이 없을 수 없지만, 규칙 너머를 향해 항상 한 발을 내딛는다.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동그란 게 있으면 네모진 게 있다.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만 취할 수 없듯 네모진 것만 취하고 동그란 걸 버릴 수는 없다. 아름다움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규칙이다. ‘하늘의 지문’이란 제목 아래 시인은 봄에 내리는 비를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봄비는 “꽁꽁 얼었던 땅의 몸 두드린다”. 생명을 퍼뜨리는 비라는 얘기겠다.
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만으로도 봄비에 스며든 어마어마한 맥락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시인은 “똑 똑 또르르 똑똑똑 또르르르”라는 감각으로 시를 시작하고 있다. 봄비는 눈으로도 오고 귀로도 온다.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비는 몸속에서 생명의 불꽃을 틔운다. 그러니 봄비는 몸으로도 오는 것이 된다. “한순간 얼어붙은 하늘”이 풀리면서 봄비가 내린다. 얼어붙은 하늘을 푸는 건 봄비가 지니고 있는 ‘따뜻함’이다. 묘하지 않은가? 추위가 극에 달하면 따뜻함이 온다. 따뜻함이 극에 달하면 추위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면 얼어붙은 하늘은 그 순간에도 봄비를 준비하고 있다. 꽁꽁 언 땅의 몸을 두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겨울을 견디는 생명들은 얼마나 간절하게 봄비를 기다리겠는가? 봄비는 땅에 거주하는 수많은 생명들과 만나 비로소 따뜻한 물이 된다. 따뜻한 생명이 된다. “막대기만 꽂아도 잎 돋고 꽃 피게 할/ 경칩에” 내리는 비다. 경칩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는 절기가 아닌가? 추위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지상에는 서서히 따뜻한 기운이 퍼지고 있다. 땅 위가 이러니 땅속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한겨울에도 땅속에서는 수많은 애벌레들이 봄을 기다리며 제 삶을 견디고 있다. 하늘도 얼어붙고 땅(표면)도 얼어붙은 그 순간을 땅속 생명들은 제 몸의 온기로 버틴다.
자연은 생명이 살 최소한의 조건을 줄 뿐이다. 그 상황을 견딘 생명만이 때가 되면 자연이 보내는 생명수를 즐길 수 있다. 하늘에서만 봄비가 내리겠는가? 땅속에서도 화답하듯 봄비가 내린다. “경칩에 내린 부드러운 하늘의 지문들”은 그대로 땅에 그려진 지문들로 이어진다. 창가에 스민 하늘의 지문을 보며 우리는 땅속 깊은 곳에서 펼쳐져 나오는 땅의 지문을 본다. 그게 하늘이 풀리고 땅이 풀리는 순간이다. 봄비는 그 순간을 온몸으로 우리에게 들려주는 자연의 선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