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사트바는 나누어 주어야 할 만큼 많이 가진 자이다. 그는 너무 많이 가졌다. 그래서 그대가 그의 사랑, 그의 존재, 그의 깨달음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그는 향기로 충만한 꽃과 같다. 향기는 바람에 실려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또한 그는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과 같다. 구름은 자신을 반기고 흡수할 목마른 대지를 찾는다. 보디사트바 또한 그렇다…… 비를 머금은 구름처럼 그는 여기저기 떠돌며 목마른 영혼을 찾는다. 자신을 반길 누군가를 찾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그의 선물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그대에게 커다란 빚을 지는 것이다.
보디사트바의 경지는 의식(consciousness)의 단계이다. 그것은 넌센스이지만 진실이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합당한 일이 아니지만 진실이다. 그것은 매우 비논리적이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직 그대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곧 그런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문턱에 서 있음을 본다. 그대들은 모르지만 나는 볼 수 있다. 그들은 최후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대는 붓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95쪽)
평화 속에 사는 것, 이것은 내면에 아무도 없음을 뜻하는 붓다의 독특한 표현법이다.
평화 속에 산다는 것은 거기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거기에 누군가 있다면 평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누군가 있다면 소란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집안에 아무도 없어야만 집이 고요할 수 있다. 거기에 누군가 있다면 소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는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거나 뭔가 다른 일을 할 것이다. 설령 그가 깊이 잠들어 있다 할지라도 그는 요란하게 코를 골 것이다. 하여튼 무슨 일인가 꼭 일어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아무도 없어야만 비로소 평화가 있다.
절대적인 평화가 왔을 때, 아무도 발견되지 않을 만큼 완벽한 평화가 있을 때, 그것을 붓다는 아라한의 경지라고 부른다. 붓다가 “수부티여,이제 그대는 평화 거주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수부티여, 이제는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것은 똑같은 말이다. (2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