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디카시 「인생」

할아버지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주변에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꽃길이다. 할아버지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생’이란 제목이 붙은 이 시에서 시인은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 태어난 사람은 어김없이 어딘가를 향해 간다. 그곳을 시간이라고 말해도 좋고, 죽음이라고 말해도 좋다. 시간은 우리를 죽음의 세계로 인도한다. 인생무상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상징이 아니라 사실이다. 언어가 아니라 현실이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죽음을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 가고 싶지 않다고 거부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죽음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더 깊게 파고드는 인연 줄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사진이미지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 죽음이 있다. 사진이미지 안에 있는 할아버지들은 시간이 흐르면 그 바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이미지 안에 갇힌 저 할아버지들은 지금 살아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시인은 “앞서거니 계절이 먼저 오고/ 뒤서거니 세월이 따라오고”라는 진술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나타내고 있다. 시간을 산다는 건 곧 시간 속에서 죽는다는 걸 의미한다. 삶 속에 담긴 죽음의 역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안이 있으면 밖이 있다. 안과 밖은 그럼 둘이기만 한 것일까? 안이면서 밖인 경계는 없는 것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경계는 어디에나 있다. 안과 밖은 곧바로 안팎을 이룬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시간 속에 수많은 이들이 살아온 시간이 있다는 말로 풀어도 좋다.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할아버지인 적은 없지 않은가? 누군가 태어나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었다가는 이내 노년에 이르렀다. 한 사람 인생에 새겨진 수많은 시간들이 삶이면서 동시에 죽음인 생명의 역사를 이룩한다.
할아버지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저 꽃길은 시인의 말마따나 곧 끝날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시작과 끝은 둘이면서 하나라는 말이다. 생명을 휘감고 있는 역설은 사실 인생 자체에 내포된 역설과 이어져 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죽음을 산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살며 우리는 한 살 한 살 죽음으로 다가간다. 열심히 달려온 길이 아득해지는 순간에도 이러한 역설은 변하지 않는다. 활짝 핀 저 꽃들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할아버지가 꽃길을 지나가면 어떻고, 눈길을 지나가면 어떤가? 꽃길이든, 눈길이든 시간의 흔적에 싸여 있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꽃길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눈길이 되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눈길이라고 슬플 리 없고, 꽃길이라고 기쁠 리 없다. 할아버지라고 슬플 게 없고, 청년이라고 기쁠 게 없다. 꽃길이 끝나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이 시를 읽으며 우리가 지금 인생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