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중 디카시 「업그레이드(upgrade)」

밟히고 굴러다니던 막돌들이
서로 얼싸안고 한 몸이 되었습니다.
오다가다 합장을 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몸이 되었습니다.
- 나석중, 「업그레이드(upgrade)」
막돌들이 모여 탑이 되었다. 그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탑 앞에서 합장을 한다. 막돌 하나 올려놓고 다시 합장을 한다. 합장(合掌)이란 무엇일까?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일이다. 막돌로 쌓은 탑에 사람들의 기운이 모인다. 막돌은 이제 그냥 막돌이 아니다. 사람들이 내놓은 소망과 정성이 모여 이루어진 정신이다. 산에 올라가면 어김없이 만나는 이 막돌로 쌓은 탑을 시인은 사진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막돌 주변에 마른 나뭇잎이 널려 있다. 때는 겨울인가 보다. 누가 먼저 저 위에 돌을 놓기 시작했을까? 돌 하나하나 놓는 그 마음이 모여 저 아름다운 탑이 만들어졌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탑인지도 모르지만, 합장하는 이들의 눈에 막돌 탑은 신령이 깃든 사물로 보일 뿐이다.
시인은 “밟히고 굴러다니던 막돌들”이라고 쓰고 있다. 어디에나 있는 막돌로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는 탑 하나를 만들어냈다. 주변 풍경 생각하지 않고 쌓은 탑일 텐데, 탑은 이미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막돌들이 서로 얼싸안고 한 몸이 되자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돌탑을 향해 합장한다. 무엇을 비는 것일까? 막돌로 쌓은 저 탑에 무슨 기운이 있다고 사람들은 기꺼이 그 앞에서 제 옷깃을 여미는 것일까? 막돌 하나하나에 그것을 집어올린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겹겹이 쌓은 막돌 탑이 저마다 다른 기운으로 한 몸을 이룬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막돌들은 제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 말 그대로 자연이다. 욕심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세계.
“오다가다 합장을 받는 몸이” 된 이 막돌 탑을 보며 시인은 “성스러운 몸”을 상상한다. 성스러운 몸은 서로 얼싸안고 한 몸이 된 상황에서 뻗어 나온다. 막돌 하나가 놓인 자리에서 합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막돌은 모여서 돌탑이 되고, 한 몸이 된다. 막돌은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이다. 막돌 하나에 온 세계가 담겨 있다. 그러니 저 돌탑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성스러운 몸”을 향해 합장을 하며 사람들은 성스러운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다. 사람들이 막돌에 준 기운을 또 다른 사람들이 온몸으로 받는다. 성스러움은 이리 보면 생명과 생명 사이에서 펼쳐지는 기운인 듯도 싶다. 성스러운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막돌은 서로 얼싸안는 힘으로 제 기운을 ‘업그레이드(upgrade)’ 한다. 시인이라고 다를까? 시인은 막돌을 보며 성스러운 기운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시는 바로 그 속에서 밀려나온다. 막돌과 더불어 시 또한 성스러운 언어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