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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도서] 평면의 역사

B. W. 힉맨 저/박우정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평면과 더불어 이루어진 인간의 역사

- B. W. 힉맨, 평면의 역사』

 

 

 

나는 지금 평면 책상 위에서 글을 쓰고 있다. 평면으로 된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평면으로 된 화면을 보고 있다. 평면으로 된 방바닥을 밟고 있고, 역시 평면으로 된 지붕을 올려다보고 있다. 지구는 둥글다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분명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둥근 방을 떠올려 보라. 둥근 책상을 떠올려 보라. 둥근 핸드폰, 둥근 노트북을 떠올려 보라. 놀이기구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사용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우리는 평면에 익숙해져 있다. 집을 지을 때도 우리는 평면 위에 짓고, 건물을 지을 때도 우리는 평면 위에 짓는다. 그러고 보면 설계도도 평면이다. 입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종이라는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린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당연한 듯 특별한 평평함의 세계(7)이다.

 

평면은 일상생활 곳곳에 추상화된 형태로든, 단순화된 형태로든 널려 있다. 우리는 평면 위에 서 있으며, 또한 우리는 평면 위에 만들어진 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다. 평면 위에서 건축이 이루어졌고, 평면의 세계관으로 문자문화가 이루어졌다. 표면을 쓰지 않는 텍스트가 있을까? 책은 평면이다. 굽은 종이로 책을 만들 수는 없다. 그림은 평면의 캔버스에 그려야 하고, 영화는 평면의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 텔레비전 브라운관도 예전에는 곡선이었지만, 지금은 평면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한마디로 평면이 현대 세계의 근간을 이룬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입증된 지금도 평면의 세계관은 여전히 우리 생각을 지배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알려면 먼저 유클리드 기하학을 알아야 한다. 근원은 평면이다. 평면을 알아야 평면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s)』(기원전 300?)에서 수립된 평면기하학의 고전 모형은 수치 측정보다 공간적 특질과 더 관련이 깊다. 유클리드는 공간을 모든 방향으로 무한하며 무한하게 나눌 수 있고 편평한것으로 이해했다. 그의 기하학은 공간 시각화 또는 정신 모델, 그리고 이상화에 의존했다. 유클리드는 점과 선의 정의에서 시작하여 점차 고차원적 물체를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는 공간을 균질하고 합동을 요구하는 무한한 것으로 이해하고 사각형--삼각형의 기본적인 평면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측정의 일종이 아니라 시각적 작업이다. 따라서 삼각형의 내각을 모두 합치면 180도가 된다고 발표하기보다 유클리드는 내각은 두 개의 직각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39)

    

유클리드는 공간을 모든 방향으로 무한하며 무한하게 나눌 수 있고 편평한것으로 정리했다. 공간에 대한 사유를 방에 대한 사유로 한정할 수는 없다. 지은이는 만주 벌판처럼 드넓은 평면을 상상한다. 만주 벌판을 처음 본 박지원은 한바탕 울 만한 장소라는 말로 그 기쁨을 표현했다. 지평선과 맞붙은 드넓은 벌판은 우리를 무한으로 이끈다. 모든 방향으로 무한하게 뻗은 공간은 눈으로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무한한 평면에서는 그 무엇도 가능하다. 유클리드는 평면을 측정의 일종이 아니라 시각적 작업의 일종으로 사유했다. 시각적 작업으로서 평면은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는 상상. 무한하면서 편평한 공간 이미지는 그 자체로 우리네 상상을 자극하지 않는가.

 

평면 위에서 인간은 새로운 꿈을 꾸었다. 그 꿈을 인간은 문명으로 실현했다. 평면으로 실현된 문명은 물론 평면이 아닌 것들을 평면으로 만드는 파괴를 동반했다. 산을 뚫어 도로를 내는 기술을 떠올려 보라.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평면이 아닌 것을 평면으로 만드는 힘을 부여했다.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에 구현하기 위해 원근법을 발견한 인간과 무엇이 다를까. 근대과학은 절대공간을 가정함으로써 그전 인류는 이루지 못한 문명을 만들어냈다. 절대공간은 이성이라는 평면 위에 그려진 그림과 같다. 그곳에서 과학자들은 사고실험을 했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물로 표현했다. 문명이 왜 거친 표면보다 매끄러운 표면을 좋아하겠는가? 매끄러움은 평면의 특징이다. 울퉁불퉁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듦으로써 인간은 삶의 안정을 얻는다. 물론 무언가를 잃음으로써 얻은 안정이라는 점에서 불안정한 안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은이는 최종적인 평평함은 지구온난화의 직접적인 결과물이 될 수 있다.”(265)고 경고한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해수면 또한 높아지고 있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지금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열역학 법칙에 나오는 평형상태가 일어난다고나 할까. 지구라는 생명체는 허투루 힘을 쓰면 쓸수록 그만큼 더 빨리 힘을 소진한다. 200년 사이에 인간은 지구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연은 끔찍하게 파괴되고 있고, 자기 욕심에 취한 인간은 자신들이 벌인 행동을 뒤돌아보지 않고 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사회, 문화, 관습, 예술이 모두 극도로 2차원화되는 초평면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별개의 층이 하나로 합쳐져 버리는 이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될까?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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