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필론의 돼지」
굴욕의 시간
이문열은 「필론의 돼지」에서 폭력에 대응하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은 언제나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펼쳐진다. 강자들은 약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으로 무릎을 꿇리려고 한다. 강자들은 물론 처음부터 아주 강압적인 말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약자들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는 강자들에게 눌린다. 강자들의 폭력은 그러니까 이러한 말의 폭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인 ‘군용열차’라는 공간이 바로 그런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제대병들을 싣고 달리는 기차 안에 검은 각반을 두른 현역 병사들이 밀어 닥친다.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는 그들은 하사와 그를 따르는 병사들로, 병역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한다. 겉으로는 유들유들 웃으며 술값을 보태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강탈이나 다름없다. 아직은 군인인 제대병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검은 각반 하나가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이 나머지 서넛은 모자를 벗어 들고 객석을 순례하기 시작한다. 곧바로 욕설이 터져 나온다. 누군가 동전을 모자에 떨어뜨린 모양이다. 제대병 하나가 집단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다. 사람들이 잠시 수런거렸지만 검은 각반들이 매섭게 눈을 뜨자 이내 조용해진다. 검은 각반들은 기껏해야 대여섯 명밖에 안 된다. 제대병들은 이보다 서너 배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저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불합리와 폭력에서 이제야 벗어났다고 생각한 주인공의 가슴에 은은한 분노의 불길이 타오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주인공은 어서 헌병이나 열차 공안원이 와서 저들을 제지해주길 기다린다. 괜히 나서봤자 폭행이나 당할 게 뻔하지 않은가.
주인공 앞좌석에 앉은 홍도 헌병을 찾는다. 주인공은 갑자기 홍이 밉살스럽다. 자신도 나서지 않으면서 홍이 나서기를 기대한 것일까? 홍에 대한 증오는 이내 자기혐오로 돌아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홍을 욕한다는 것은 곧 자기를 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가. 드디어 앞줄에 앉은 제대병 하나가 참지 못하고 욕을 하며 일어난다. 선임자가 누구냐고 묻는 그를 향해 각반 하나가 잽싸게 주먹을 날린다. 제대병이 무슨 짓을 했는지 각반은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는다. 동료가 당하자 다른 각반들은 주춤한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객실에 있는 제대병들 모두가 달려들 수 있다. 입구에서 술에 취한 채 관망만 하던 각반 하사 하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끼어든다. 갑작스레 등장한 ‘영웅’은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군대 생활을 했는지 이야기한다. 하사는 이런 ‘영웅’을 많이 다루어본 모양이다.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영웅을 꼬인다.
영웅의 얼굴에 무언가를 계산하는 표정이 어린다. 그는 무엇을 계산했을까? 혼자서 각반들을 당해낼 수 있을지 계산했을까? 아니면, 제대병들이 자신을 도와 싸움을 할 것인지 생각했을까? 제대병들의 간절한 눈길을 외면하고 제대병은 하사를 따라 술을 마시러 간다. 영웅이 사라진 자리에서 각반들이 다시 설치기 시작한다. 돈을 주며 인상을 쓰는 주인공에게 홍은 그저 참으라고만 한다. 주인공은 그런 홍이 자꾸만 밉살맞다. 그예 3년 동안 정말 더러운 것만 배웠다고 한마디 내뱉는다. 홍은 피식 웃으며 자기나 주인공이나 돈을 준 건 마찬가지니까 너무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홍에 대한 증오와 자신에 대한 혐오 사이에서 주인공은 묵묵히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기다린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굴욕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이다.
또 하나의 제대병이 내야 할 이유가 없다며 각반들의 요구를 거부한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깡마른 제대병이다. 각반 하나가 주먹을 날린다. 제대병이 휘청댄다. 코피를 쏟으면서도 그는 일병 계급장을 단 각반을 향해 하극상이라고 외친다. 어느새 온 하사가 다시 그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린다. 제대병(병장)을 향해 명령이니 돈이나 내라고 외친다. 제대병은 부당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고 외친다. 맞는 말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강자는 약자가 맞는 말을 하면 더욱 더 폭력을 사용한다. 논리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른 제대병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주인공처럼 암담한 마음으로 입구 쪽을 주시하고 있다. 헌병이나 공안원을 기다리는 것이다. 입구에서 뜻밖의 인물이 나타난다. 각반들에게 처음으로 저항한 ‘영웅’이 비참한 몰골로 두 명의 검은 각반에게 끌려 들어온다.
저항의 물결
달아올랐던 객차 안이 일순간 고요해진다. 징수가 다시 시작된다. 그런데 아까와는 무언가 분위기가 다르다. 깡마른 제대병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모진 구타를 당해 쓰러지는 과정을 두 눈 뜨고 지켜본 사람들의 얼굴에 분노감이 치밀어 오른다. 구석에 앉아 있던 제대병 하나가 3년 동안 당한 것도 억울한데 끝나는 날까지 당할 것이냐고 소리를 치며 일어난다. 검은 각반들의 외침소리에 아랑곳없이 그는 백 명이 어떻게 다섯 명을 당해내지 못하느냐고 소리를 친다. 폭력에 눌려 있던 제대병들이 하나하나 호응한다. 제대병들은 양쪽 출입구를 봉쇄하고 각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특수 훈련을 받은 검은 각반들이 재빠르게 대처하며 빠져 나갈 길을 뚫는다. 하나는 소주병을 깨뜨려 휘두르고, 다른 하나는 열차 창문을 구둣발로 박살낸다. 칼처럼 생긴 유리 조각을 제대병들에게 휘두르는 각반도 있다. 기세등등하던 제대병들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길을 틔워준다.
주인공은 이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 얼굴이 불그레하게 익은 홍 또한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가겠다면 보내주지 뭐 하러 저리 싸우느냐고 말한다. 각반들이 포위를 뚫고 빠져나갈 찰나, 한 제대병이 웃통을 벗어부치고 각반들의 앞길을 막아선다. 그는 자기를 찌르고 가라고 외친다. 몸 여기저기에 흉측한 자상이 나 있다. 각반 하나가 질린 얼굴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제대병은 무릎을 꿇고 빌라고 이야기한다. 칼을 버리는 순간 끝장이라는 것을 모를 각반들이 아니다. 각반 하나가 제대병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두른다. 제대병의 몸에서 피가 흐른다. 각반들에 기세에 밀려 멈칫했던 제대병들이 다른 제대병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는 일제히 각반들에게 달려든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각반 넷이 쓰러지고, 각반 하나만이 절망적인 얼굴을 한 채 서 있다.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는 각반을 제대병들은 사정없이 발길로 차고 주먹으로 때린다. 주인공은 “잔인한 린치”로 변한 광경을 보며 순한 양처럼 당하고만 있던 제대병들 어디에 저런 광포함과 잔혹성이 숨겨져 있을까 생각한다. 그는 각반들이 폭력으로 제대병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도 못 마땅하지만, 다수의 힘으로 소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또한 못 마땅하다. 술을 마셔 얼굴이 불그레한 홍도 소동에 말려들지 않은 채 제자리에 앉아 있다. 주인공과 홍만이 소동에 끼어들지 않고 관망하고 있다. 제대병 가운데 한 사람이 각반의 팔을 담뱃불로 지진다. 검은 각반은 숨넘어가는 비명을 내지른다. 객차 안 곳곳에서 둔중한 신음과 함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각반들이 여기저기서 성난 제대병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성을 회복한 누군가가 이제 진정들 하자고 외친다. 당신은 속도 없느냐는 외침이 이내 들리고, 이런 악종들은 아예 씨를 말려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제정신이 아닌 제대병들을 보며 주인공은 섬뜩한 상상에 빠진다. 만약 검은 각반들이 죽는다면? “이미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눈먼 증오와 격앙된 감정이 있을 뿐, 대의는 없었다.”는 진술에 드러나는 대로, 주인공은 검은 각반들을 향한 제대병들의 폭력에는 대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누군가 이성을 찾자고 했지만 비난하는 소리만 되돌아왔다. 제대병들이 폭력을 당할 때 나서지 못한 것처럼, 제대병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지금 상황에서도 그는 그들을 만류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는 슬쩍 이 “대의 없는 소동”의 와중에서 주인공은 빠져나온다. 소동이 난 객차를 빠져나온 그가 다음 객차의 빈자리에 앉는 순간 한 떼의 헌병과 호송병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잠자는 돼지
주인공은 막연한 우울감에 빠져 깊이 한숨을 내쉰다. 누군가 뒤에서 그런 그의 어깨를 친다. 홍이다. 머리카락이 바짝 서듯 송연한 기분이 든다. 홍은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며 주인공에게 소주병을 내민다. 그는 맥없이 병을 받는다. 화끈거리는 소주를 병째로 들이마시면서 주인공은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일화를 생각한다. 일화는 이렇다. 배를 타고 여행을 하던 필론이 큰 폭풍우를 만났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속에서 필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배 선창에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이 일으키는 소동과 상관없이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필론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낼 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사실 돼지가 이런 상황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리 없다. 우화는 언제나 사실을 넘어선다. 돼지가 잠을 자는 것 말고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저 꿀꿀 비참한 소리만 더할 뿐이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돼지가 과연 비슷한 상황에 있는지 먼저 물을 수 있다. 폭풍우는 자연 재해다. 폭풍우에 해당되는 사건이 이 소설에서는 검은 각반들의 폭행과 이어진다. 폭풍우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폭풍우가 빨리 그치거나, 아니면 빨리 죽음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검은 각반들의 폭력은 다르다. 폭행을 당하는 약자들이 힘을 합치면 검은 각반들을 물리칠 수 있다. 주인공은 제대병들의 과잉 폭력을 문제 삼고 있다. 이성을 잃은 대중은 언제나 감정에 치우쳐 과도한 폭력에 이른다는 게 주인공의 생각이다. 이 소설에 표현된 사건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전의(戰意)를 상실한 각반들에게 다수의 제대병들이 잔인한 폭력을 행사했으니까. 주인공은 폭풍우 속에서도 잠을 잔 돼지가 그들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 소설에서 돼지에 해당하는 인물은 홍과 주인공일 것이다. 홍은 애초부터 이런 상황에 끼어들 생각이 없고, 주인공은 마음과 행동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겪는다. 주인공은 생각이 없는 홍을 처음에는 무시하지만, 나중에는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돼지가 되어 폭풍우가 일어난 자리를 피한 것이다. 돼지에게는 그것이 잠이다. 잠에 빠지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죽음을 맞는 이 돼지의 눈으로 보면, 검은 각반들이나 제대병들이나 자기들이 처한 본질을 전혀 보지 못하는 얼치기들이다. 제대병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악당을 잡은 ‘정의로운 집단’으로 자기들을 드높일지 모르지만, 그들 또한 이성을 잃은 점에서는 각반들과 다를 바가 없다. 돼지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만큼 주인공은 인간의 이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을 지은 이문열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뭉친 집단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에둘러 드러낸다. 제대병들은 왜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는가? 각반들에게 당한 게 분해서이다. 작가는 제대병들이 주창하는 정의가 분노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분노에서 자라난 정의가 제대병들을 끔찍한 폭력으로 내몬다. 이문열이 ‘혁명’을 옹호하지 않는 까닭은 여기에 있으리라. 아무리 정의로운 혁명도 결국에는 분노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분노는 언제나 지독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돼지와 같은 현자(賢者)가 되는 게 낫다고 그는 이야기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분노를 다스릴 줄 모르는 대중이 권력을 잡으면 사회는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작가의 이러한 주장을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대중은 정말로 이리 어리석은가?
대중은 어리석지 않다
1980년에 ‘광주 항쟁’이 일어났다.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군인들은 총을 쏘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고,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맨몸으로 권력에 맞선 시민들은 이리 허망하게 죽을 수 없어 총을 들었다. 군인들이 갖고 있는 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구식 총이었다. 구식 총을 들고 대드는 시민들의 함성이 무서웠는지 군인들은 시가지를 비우고 외곽으로 후퇴했다. ‘해방 광주’가 들어선 것이다. 이문열의 생각대로라면 해방 광주는 피바다가 되어야 하고, 혼란의 극치를 이루어야 한다. 대중들이 지배하는 장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해방 광주를 만든 시민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철저히 지켰다. 혼란에 빠지기는커녕 해방 광주는 사람들의 이성을 통해 적절히 통제되는 도시로 거듭났다. 대중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언뜻 인간의 자유를 표현한 듯싶은 이 작품에는 이렇게 대중을 바라보는 작가의 편견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제대병들이 힘을 합쳐 검은 각반들과 싸울 때, 주인공과 홍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홍은 아예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주인공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기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결국 그들은 제대병도 될 수 없었고, 현명한 돼지도 될 수 없었다. 현명한 돼지가 되려면 폭풍우라는 상황에 초연해야 한다. 그들은 상황에 초연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도피하려고 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처럼 소리치느니 돼지처럼 잠을 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검은 각반들의 폭력은 이와 전혀 다르다. 그에 저항하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대중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저항마저도 무위로 돌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 소설은 이문열이 왜 한국사회의 극우보수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극우보수는 권력이 시민들에게 행하는 폭력은 정당하게 생각하면서도, 시민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무조건 부정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들에게 권력의 폭력은 정당방위이고, 그에 대응한 시민들의 폭력은 범죄이다. 민중들이 일으킨 온갖 항쟁들을 그들은 그래서 ‘빨갱이들의 선동’이라고 아직도 주장한다. 그들은 민중들이 폭력을 행사한 그 장면만 부각시킬 뿐, 그런 폭력에 이른 과정은 전혀 따지려고 하지 않는다. 권력은 옳고 민중은 그르다. 어떤 경우에도 민중은 권력에 저항하면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이 소설의 문맥을 따른다면, 집단이 폭력을 행사하면 반드시 이성을 잃는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이성을 잃은 권력이 막강한 무기로 민중을 살육하는 것은 그럼 무엇이 되는가?
주인공은 어떤 경우에도 돼지를 따르는 필론이 될 수 없다. 그는 분명 검은 각반들이 무서워 몸을 사렸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각반들을 욕한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그 욕을 현실로 표현했고, 누군가는 그 욕을 그대로 마음에 품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검은 각반을 대하는 방식대로 제대병들을 바라본다. 그는 돈을 주며 모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그가 왜 제대병과 합세하지 않았을까? 그는 모난 돌이 되기 싫은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사람들이 벌이는 소동 속으로 끼어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주인공처럼 행동하면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서야 하고, 또 누군가를 그를 따라 소리를 질러야 한다. 이게 세상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세상 원리와는 담을 쌓는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세상을 힐끔거린다. 돼지를 지향하면서도 돼지가 되지 못하는 인물(나아가 작가)은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