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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도서] 춘향전

송성욱 편역/백범영 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목숨을 걸고 사랑을 쟁취하다

- 춘향의 사랑법

 

 

 

춘향이라는 사랑의 아이콘

 

춘향과 이 도령의 그 유명한 사랑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미가 기생인 춘향은 사또의 자제인 이몽룡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어미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이 결정되었습니다. 아비가 양반이어도 어미가 천인이면 그 자식은 천인으로 낙인찍혔지요. 황 진사의 딸인 황진이가 그랬고, 홍 판서의 아들인 홍길동이 그랬습니다. 춘향의 어미인 월매는 기적(妓籍)에 오른 기생이었습니다. 기생 어미를 두었으니 춘향 또한 기생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도령과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신분상 그녀는 이 도령의 정실이 되지 못합니다. 첩실이 되어 살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녀와 이 도령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천민이라는 신분의 굴레를 쓰고 살아야 합니다.

 

조선 후기의 백성들은 글을 알지 못했으므로 저자에 나가 강담사(講談士, 이야기꾼)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즐거이 들었습니다. 강담사는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읽어주었는데, 특히 인기가 있는 이야기가 <춘향전>이었답니다. 춘향전은 무엇보다 춘향과 이 도령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은 사랑 이야기에 목말라 합니다.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받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지요. 사랑에 웃고 사랑에 우는 풍경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드라마치고 사랑이 없는 이야기가 있던가요. 현실감이 없는 자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막장 드라마라고 욕하면서도, 대중들은 그 속에 담긴 애절한 사랑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당대 백성들은 왜 춘향을 좋아했을까요? 춘향이 이 도령과 첫날밤을 보낼 때 백성들은 달콤한 상상에 빠졌을 것이고, 춘향과 이 도령이 이별을 할 때 백성들은 눈물 콧물을 짜며 슬퍼했을 것입니다. 변 사또가 춘향을 감옥에 가두고 가혹한 벌을 내릴 때는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며, 암행어사가 된 이 도령이 마패를 높이 쳐들고 암행어사 출도를 외칠 때는 가슴을 쭉 펴고 이야기꾼을 따라 암행어사 출도를 외치기도 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춘향을 통해 꿈을 꾸었습니다. 춘향이 기뻐하면 백성들도 기뻐했고, 춘향이 슬퍼하면 백성들도 슬퍼했습니다. 춘향은 저 먼 구중궁궐에 사는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춘향은 기생의 딸이었지요. 천한 신분인 춘향을 변 사또는 제 마음대로 다루려고 했습니다. 기생의 딸은 기생이라는 논리로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을 핍박했습니다.

 

변 사또가 춘향을 괴롭힐수록 백성들은 더욱 더 춘향을 마음속에 품었을 겁니다. 백성들은 늘 권력의 횡포 아래 놓여 있지 않은가요. 그들은 어서 이 도령이 나타나 춘향을 구해주길 간절하게 바랐습니다. 춘향이 구원을 받는 날이 곧 자신들이 구원을 받는 날입니다. 이야기꾼 또한 백성들이 원하는 이 지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엿보며 이야기의 수위를 조절합니다. 백성들이 소망하는 바를 이야기 속에 담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춘향의 사랑을 방해하는 변 사또를 물리칠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백성들 스스로 민란을 일으켜 변 사또를 몰아내는 것입니다. 홍길동이나 임꺽정을 생각하면 되지요. 이렇게 되면 이 도령의 역할이 애매해집니다. 이야기꾼은 변 사또보다 더 강한 인물을 만들어냅니다.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된 이 도령입니다.

 

암행어사가 된 이 도령을 받아들이려면 춘향은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춘향이 절개를 굽혀 변 사또를 받아들이면 이 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도 춘향은 절개를 굽히지 않습니다. 거지꼴로 나타난 이 도령을 보고서도 춘향은 자신의 죽음보다 이 도령의 앞길을 걱정합니다. 어미인 월매에게 거지가 된 이 도령을 구박하지 말라는 말까지 하지요. 춘향이 이 도령에게 부탁한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 도령의 선산발치에 묻어달라는 것. 춘향은 죽어서도 이 도령 집안의 귀신이 되려고 합니다. 정실이 아니니 선산에 묻힐 수는 없습니다. 춘향은 그 누구보다 자기 신분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춘향의 이 서글픔을 마음 깊이 받아들입니다. 그녀가 걷는 고난의 길을 더불어 걸으려고 합니다.

 

절개를 지키는 춘향의 모습을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춘향이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여자였다면, 굳이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지 않았을 겁니다. 기생의 딸로 태어난 춘향이 기생 신분으로 사는 삶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당장 퇴기인 어미의 외로운 삶을 그녀는 늘 보고 살았을 테니까요. 이 도령의 정실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변 사또의 첩실이 되어 뒷날을 대비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춘향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첩실이 되느니 차라리 죽으려고 합니다. 그 길이 춘향에게는 절개를 지키는 길입니다. 요컨대 춘향은 이 도령을 위해 절개를 지킨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절개를 지킨 것입니다. 권력자에 휘둘리는 삶을 사느니 그녀는 깨끗이 목숨을 버리려고 했습니다.

 

절개와 자유 사이

 

김주영이 지은 <외설 춘향전>이라는 소설에는 이 도령이 바람둥이 한량으로 묘사됩니다. 사또 자제인 이 도령은 단옷날 그네를 뛰는 춘향을 보고 첫눈에 반하지요. 방자를 시켜 춘향을 데려와서는 이런저런 수작을 하다가, 결국에는 춘향의 어미인 월매의 허락을 받고 처음 만난 그날 춘향과 첫날밤을 치릅니다. 이팔청춘 두 사람이 그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판소리 ?사랑가? 등에 잘 나타납니다. 퇴기인 월매는 딸인 춘향이 번듯한 양반을 만나 살기를 원합니다. 정실은 언감생심입니다. 이 도령이 정실 약속을 해도 집안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월매는 춘향이 능력 있는 양반가 남자의 품안에서 한 송이 꽃으로 편안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기생으로 한 세상을 풍미한 어미 입장에서는 이 길만이 춘향을 지켜주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춘향 또한 처음에는 어미와 같은 생각으로 이 도령을 맞았을 겁니다. 월매는 꿍쳐두었던 돈을 풀어 이 도령을 극진히 접대합니다. 사또의 아들이니 투자한 만큼 이익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 겁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이 도령이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르면 상황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도령의 아버지가 벼슬이 승차해 한양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이 도령은 춘향을 한양으로 데려가고 싶지만, 아버지가 그것을 허락할 리 없습니다. 춘향은 남원에 남고 이 도령은 쫓기듯이 한양으로 올라갑니다. 이 도령이 남원을 다시 찾지 않는 한, 춘향이 이 도령을 만날 길은 사라졌습니다. 만약 이 도령이 돌아오지 않으면 춘향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 도령과 보낸 시간은 이미 남원 고을에 쫙 퍼졌습니다. 다른 남자와 쉬이 맺어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도령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변 사또가 나타납니다. 춘향에게 다른 선택지가 생긴 겁니다. 춘향은 기생의 딸이므로, 변 사또 수청을 든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도령이 춘향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적어 남기기는 했지만, 종이쪽 한 장에 한 생을 거는 게 온당한 일인가요. 이 도령이 과거에 급제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설사 급제한다고 해도 춘향을 어찌 대할지는 그때 가봐야 압니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춘향은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절개를 선택합니다. 변 사또의 수청을 들면 몸 하나는 편할 겁니다. 어미인 월매 또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겠지요. 춘향이 이 도령을 기다리는 험난한 길을 선택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 됩니다.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절개가 개인의 자유로 변화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부장제는 여자가 한 남자를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는 물론 양반가 여자를 가리킵니다. 권력은 양반가에 몰려 있는 법이니까요. 가부장제는 왜 여성에게 절개라는 제도를 강요했을까요? 자기 피를 받은 아들에게 안전하게권력을 양도하기 위해섭니다. 여자가 절개를 지키지 않는 사회라면, 여자가 낳은 아들이 누구의 피를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남자에서 남자로 이어지는 순수 혈통을 지키기 위해 가부장제는 여자를 안채에 가두고, 절개를 강요합니다. 재가한 과부가 있는 집안에는 10년 동안 벼슬을 주지 않는다는 법규가 생길 정도였습니다. 10년 동안 벼슬길이 막힌 집안은 망할 수밖에 없지요. 집안을 중시하는 가부장들은 그래서 여자를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절개라는 제도는 곧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셈입니다.

 

변 사또는 이 도령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춘향을 향해 기생이 무슨 절개냐고 반문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절개는 양반가 여성에게나 강요되던 풍습입니다. 지킬 권력이나 돈이 없는 여자들에게까지 사회적으로 절개가 강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생의 딸인 춘향이 절개를 들먹이며 고을 사또의 수청을 거부합니다. 변 사또는 명령을 거부한 춘향을 호되게 다룹니다. 인정상으로는 못된 일을 한 것이지만, 당대의 신분 제도를 보면 변 사또의 행위를 비판할 수만은 없습니다. 만약 변 사또가 선치(善治)를 베풀었다면 이 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와도 춘향을 구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다행히(?) 춘향을 괴롭히는 변 사또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못된 사또였습니다. 춘향이 절개를 지킬수록 변 사또는 더욱 더 악당이 되는 상황이 자연스레 마련된 것입니다.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돌아온 이 도령은 춘향을 두 번이나 시험합니다. 첫 번째 시험은 앞서 말한 감옥 장면에서 일어납니다. 거지꼴로 나타난 이 도령을 춘향이 매몰차게 외면했다면, 암행어사 출도가 일어난 이후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춘향은 자기 패물을 찾아 거지가 된 이 도령을 극진히 대접하라고 어미에게 부탁합니다. 이 도령의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암행어사 출도가 일어난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마당으로 끌려나온 춘향에게 동헌 옥좌에 앉은 이 도령이 묻습니다. 자기처럼 젊은 남자에게도 수청을 들지 않겠느냐고요? 춘향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한양에서 내려오는 수령들마다 개개이 명관이로구나 하며 비꼬기까지 합니다. 이 도령은 바로 이 시점에서 자기의 신분을 밝힙니다. 춘향의 절개를 인정한 것이지요.

 

춘향에게 절개는 변 사또로 대변되는 권력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변 사또가 기생의 절개를 부정할수록 춘향은 이 도령을 향한 절개를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지킨 절개를 인정받기 위해 숱한 고난을 견뎌야 했습니다. 변 사또는 물론이거니와 이 도령 역시 춘향의 절개를 의심하고 시험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대다수 여성들이 절개를 지킴으로써 자기를 버리는 길로 나아갔다면, 춘향은 절개를 통해 자기를 지키는 길로 나아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가 여전히 춘향의 사랑을 기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사랑을 선택했고, 스스로 그 사랑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자기 뜻을 허물려는 권력자와 맞서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은 사회 통념에 젖은 춘향이 아니라 그 바깥으로 기꺼이 나아간 춘향을 좋아했습니다. 끝까지 제 뜻을 밀어붙인 춘향은 이렇게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성 인물로 거듭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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