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 「모래톱 이야기」
보고 싶은 건우에게
건우야, 너와 헤어진 지도 어느덧 이십 년이 흘렀구나. 강산도 두 번이나 꼴을 바꾼 이 시간을 너는 어떻게 살아왔니? 너도 이제는 서른 중반의 나이가 되었겠구나. 서른 중반이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나 잘 알 나이지. 하긴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너는 이미 그 시절에 느꼈겠지. 돈이 있으면 있는 죄도 없어지는 세상이 아니더냐. 이십 년 전 나는 K라는 소위 인류 중학에서 너를 만났지.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첫 시간이 생각나는구나. 나는 네게 지각한 이유를 물었지. 너는 울상이 된 얼굴로 나릿배 통학생이라고 말했다. 처음 듣는 술어였다. 명지면(鳴旨面)에서 통학하는 아이라고 다른 학생이 말해주었다. 명지면이라면 낙동강 하류의 김해 땅이다. 강을 건너야 부산으로 나올 수 있는 곳이었지. 네가 아버지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걸 알고 나는 네게 좀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학기 초 네가 자기 자신에 대해 써낸 글을 읽게 되었지. 그 글에서 너는 자기가 사는 조마이섬을 소유자가 도깨비처럼 바뀌는 섬이라고 써놓았어.
일제 때는 일본 사람의 소유였던 조마이섬은 해방 후에는 어떤 국회의원의 명의로 둔갑이 되었고, 그 뒤에는 또 조마이섬 앞강의 매립 허가를 얻은 다른 유력자의 앞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런 내용을 너는 날카롭고 냉랭한 필체로 표현하고 있었지. 가정방문이 있는 주간에 오전수업만 하고 네 집을 찾았다. 나루터에서 내려 반시간이나 더 걸어야 했지. 아버지는 육이오 때 돌아가셨다고 했고, 홀어머니와 할아버지와 더불어 산다고 했다. 두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겠고. 해가 얼마만큼 기운 뒤에야 네 집에 도착했지. “농사집 치고는 유난히 말끔한 마루청,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지 않은 장독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길찬 장다리꽃들……”을 보니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알겠더라. 그제야 농촌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입성이 항상 깨끗했던 네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네 공부방을 둘러보다 ‘섬 얘기’라고 쓰인 두툼한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네가 쓴 글이었다. 책에 실린 글들에서 너는 서민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 정치인들을 매섭게 비판했다. 나는 희망을 잃지 말고 꾹 참고 살아야 한다는 뻔한 말을 네게 들려주었어. 어른들이 죽으면 너와 같은 아이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절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지. 조마이섬에 사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도 모르면서 내뱉은 말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윤춘삼 씨를 만난 게 기억나는구나. 그와는 감옥에서 만났어. 육이오 때 나는 몇몇 대학 교수들과 함께 육군 특무대에 갇힌 적이 있는데, 바로 거기서 ‘송아지 빨갱이’라고 불리는 윤춘삼 씨를 만났단다. 그가 정말로 빨갱이였느냐고? 아니, 그는 빨갱이가 아니었어. 남에게 배내를 준 송아지를 청년단 사람들이 잡아먹었는데, 청년단에 그걸 따지다가 그만 특무대에 잡혀 왔다고 했다. 이념을 등에 업은 청년단을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시절이었지.
윤춘삼 씨와는 인연이 있었던지 나루터에서 다시 그 사람과 마주쳤다. 윤춘삼 씨 옆에는 털보 영감이 있었는데, 그 분이 바로 네 할아버지였지. 셋이서 술을 마시며 조마이섬에 얽힌 기막힌 얘기들을 들었다. 갈밭새 할아버지는 국권이 침탈되면서 일본인에게 땅을 빼앗긴 내력부터 시작해서 해방 후 국회의원, 하천 부지의 매립 허가를 받은 유력자로 섬 소유자가 변하는 과정을 꺽꺽한 목소리로 설명했어.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섬을 가로챈 유력자들을 섬사람들이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 수 있었지. 나는 일부러 섬사람들도 힘을 모아 싸워보라는 말을 던졌다. 윤춘삼 씨는 섬에 문둥이 떼를 싣고 왔을 때 유력자들과 한번 싸워보기는 했다고 말했어. 섬사람들은 유력자가 문둥이를 이용해 섬을 집어삼킬 요량이라고 생각했지. 그때 앞장을 선 사람들이 갈밭새 부자라고 윤춘삼 씨는 말했다. 피는 속일 수 없다고, 네 아버지도 아마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나 보구나.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 조마이섬에 폭우가 내렸지. 육십 년래 처음이니 뭐니 하는 말로 매스컴이 떠들어댈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비가 좀 뜸해지자 사람들이 사립 밖으로 꾸역꾸역 기어 나왔어. 나는 걱정이 돼서 버스를 타고 네 집으로 향했지. 길과 논밭이 분간이 안 되는 길을 버스는 어림해서 달렸다. 나루터에 도착했지만 배가 있을 리 없었다. 주변에 있는 접낫패에게 나는 조마이섬 소식을 물었어. 그저 눈가림으로 해놓은 둑을 섬사람들이 달려들어 무너뜨렸다고 하더군. 본대대로 물길을 터 놨다나. 이럴 거면 뭐 하러 돈을 들여 둑을 만들었는지. 예나 지금이나 관청에서 하는 일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마이섬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다가 뜻밖에 윤춘삼 씨와 마주쳤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에게 조마이섬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어. 윤춘삼 씨는 한숨을 내쉬며 남은 건 물바다뿐이라며 나를 주막집으로 데려갔어.
한동안 말을 않다가 나는 네 가족 소식을 물었다. 윤춘삼 씨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사람들이 다행히 목숨을 건졌는데, 그 바람에 갈밭새 할아버지가 경찰서에 끌려갔다고 했다. 사람들을 구한 할아버지를 경찰이 끌고 갔다고? 바로 어제 있는 일이라며 윤춘삼 씨는 무겁게 입을 열었어. 연 사흘 비는 쏟아지는데, 실하지도 않은 둑이 터지기라면 하면 섬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할 판이었다. 마침 배에서 돌아온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설득해 둑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 할아버지가 잡혀간 이유는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섬사람들이 한창 둑을 파헤치고 있을 때 웬 깡패같이 생긴 청년 두 명이 현장에 나타나 노발대발 화를 내며 사람들을 방해했다. 유력자들이 보낸 사람들인 게지. 허술한 둑을 이대로 놔두면 섬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말해도 그들은 도통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 그러기는커녕 눈이 치째진 친구가 되레 할아버지의 괭이를 와락 빼앗아 물속으로 집어던지기까지 했지.
가만있을 할아버지가 아니지. 사람의 목숨이 중하냐, 네 놈들의 욕심이 중하냐? 하는 말을 외치며 할아버지는 그 자를 덜렁 들어 물속에 태질을 해버렸어. 그 자는 아이고 소리도 내보지 못하고 탁류에 휘말려 가버렸지. 이내 경찰이 둘이나 들이닥쳐서는 할아버지를 경찰서로 데려갔다. 경찰은 할아버지에게 살인죄를 적용했어. 살인죄라니?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상황이 어디 그런가 이 말이야. 윤춘삼 씨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거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그쳤다. 법은 언제나 유력자의 편이지. 유력자가 법을 방패로 배짱을 부리면 선량한 다수야 힘이 없으니 어떻게 하느냐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치면서까지 힘이 있는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고, 법은 언제나 그 욕심을 합법으로 만들어주는 거지. 참 이상하고도 이상한 세상이다. 소수의 유력자를 위해 다수의 서민들이 죽음 길로 내몰리는 경우라니!
섬사람들의 애절한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결국 기약 없는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구하고도 감옥에 갇히는 이 상황을 건우, 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너는 학교에 오지 않았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도 너는 끝내 학교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지. 그리고 얼마 후 조마이섬의 황폐한 모래톱을 군대가 정지를 하고 있다는 소문들을 들었다. 유력자가 섬사람들을 이긴 셈이지. 유력자는 꼭이 이 섬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데도, 왜 이리 섬에 욕심을 부린 걸까? 하긴 사람들의 욕심에 어디 한계가 있더냐. 학교를 그만두고 너는 무엇을 하며 지냈니? 할아버지 옥바라지를 했니? 아니면 시아버지마저 잃고 시름에 빠진 어머니와 더불어 다른 살 길을 찾아 길을 나섰니? 그 이후로도 네가 일기를 썼는지 모르겠구나. 그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는지.
이십 년이 넘어서야 네게 이 글을 쓰는구나. 조마이섬과 관련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고 보니 새삼 너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구나. 조마이섬을 집어 삼킨 유력자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겠지? 그들이 잘 사는 만큼 가난한 서민들은 더욱 더 힘든 삶을 살 테고. 서른 중반에 들어선 네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꽤나 궁금하구나. 중학생 때부터 너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 지금도 그러니? 어디선가 사회적 불의와 맞서 싸우고 있을 네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는구나. 어린 나이에 엄청난 고통을 겪은 네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한 게 지금도 한스럽다. 하지만 어쩌겠니.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니. 지금도 이 사회 곳곳에는 너처럼 유력자들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하긴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욕심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겠지. 우리는 또 우리대로 그런 사람들과 끈질기게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정의는 언제나 부정의가 있는 곳에서 생성된다고 한다. 정의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정의와 싸우는 과정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거지. 갈밭새 할아버지만 해도 그렇지 않니. 할아버지의 정의는 유력자들의 부정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력자들을 비호하고, 정작 사람들을 구한 할아버지를 감옥에 가두는 법(法)도 마찬가지고.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보니까 부정의가 있는 곳에서 정의가 피어난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겠더구나. 어디선가 할아버지처럼 싸우고 있을 너를 생각하다 보니 정의니, 부정의니 하는 말까지 나왔다. 나는 네가 겪은 일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련다. 그게 글 쓰는 자의 직무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다 보면 너와 나는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겠지. 갈밭새 할아버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너에게 닿지 못할 이 편지를 쓴다. 내게는 거울과도 같은 두 사람을 마음 깊이 간직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