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엄마의 말뚝

[도서] 엄마의 말뚝

박완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박완서, 「엄마의 말뚝 2」 

 

 

「엄마의 말뚝 2」는 「엄마의 말뚝 1」에 서술된 이야기를 잇고 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서울 문안에 말뚝을 박은 어머니는 이제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다. 박적골에서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는 다섯 남매를 둔 엄마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아이는 엄마가 되었다. 이야기는 여든 살이 넘은 엄마가 눈길에서 넘어져 수술을 받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예민한 촉감으로 집안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아차리는 의 촉감 얘기가 앞에서 나오지만, 그것은 모녀 사이를 잇는 애틋한 정을 표현하는 매개일 뿐이다. ‘는 어머니에게 하나 남은 유일한 일촌이다. 오빠는 어떻게 됐느냐고? 6.25 때 죽었다. 아들은 엄마가 땅에 깊이 박은 말뚝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아들이 죽고 어머니와 딸은 살아남았다. 목숨이란 참으로 모진 것이다. 아들과 오빠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은데도, 문득 정신을 차리면 자신의 손으로 입속에 음식을 넣는 걸 확인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죽은 사람을 따라 죽지 않는 한, 산 사람은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 그게 삶이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아들을 잊은 것은 아니다. 수술을 한사코 거부하던 어머니는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남은 아들에 대한 기억으로 수술을 승낙한다. ‘산골이라는 약초에 대한 기억이다. ‘산골을 이야기하려면 ?엄마의 말뚝 1?에 나온 현저동 꼭대기 괴불마당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가족들은 예년에 없이 혹독한 겨울을 보낸다. 추위도 추위지만,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몇날 며칠 계속되는 눈이 특히 문제였다. 충직한 물장수 김 서방도 자주 물을 걸렀다. 부족한 물이야 눈을 녹여 어떻게든 쓰면 됐지만, 정작 문제는 불을 피우는 데 쓰는 장작이었다. 어머니는 가늘게 패서 새끼로 한 아름씩 묶은 장작을 매일 한두 단씩 전차 종점이 있는 나무장까지 가서 사왔다. 오빠가 그 일을 맡겠다고 해도 어머니는 장차 큰일 할 사람이 이런 자잘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딱 잘라버렸다.

 

그예 일이 벌어졌다. 추위가 그악스럽게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어머니는 장작단을 이고 눈길을 걷다가 그만 미끄러져 넘어졌다. 손목이 뒤틀렸다. 밤새 끙끙 앓던 어머니는 다음날 아침 평상시처럼 움직였다. 삯바느질만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기생집 삯바느질을 대던 노파를 불러 끝맺지 못한 바느질거리를 돌려보냈다. 노파가 부어오른 어머니 손목을 보고 장안의 용한 침쟁이들을 여럿 소개했지만, 어머니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노파가 부러진 뼈를 붙이는 데는 산골이 그만이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하고 돌아간 날, 오빠와 나는 노파의 집을 방문에 산골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노파의 말을 따라 둘은 눈구덩이를 뚫고 무악재 고개를 넘어 산골 굴에 당도한다. 흰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젊은 남자가 열흘 치 약을 주며 신령님께 정성을 들이면 약효가 더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오빠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령님 영전에 절을 한다. 신령을 모시는 젊은 남자조차 감복할 정도다.

 

오빠의 마음에 감동한 어머니는 행복감에 들떠 매일매일 모래시계처럼 정확하게 약을 먹었고, 열흘 만에 완쾌를 선언했다. 손목은 여전히 비틀어진 채였지만, 열흘이 되던 날부터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시작했고, 놀랍게도 그 솜씨는 전과 다름없이 빼어났다. 이런 산골과 수술이 무슨 상관이냐고? ‘는 어머니에게 부러진 뼈에다 쇠붙이를 끼고 튼튼히 이어놓는 것이 수술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뼈를 붙이는 쇠붙이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눈 덮인 고개를 넘어 오빠가 구해온 산골을 떠올린다. 좁쌀보다 클까말까 한 반짝거리는 쇠붙이가 바로 산골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아직도 오빠는 종교였다.”는 말로 이 상황을 표현한다. 어머니는 쇠붙이라는 말을 듣고는 죽은 오빠를 떠올린다. 오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어머니는 한없이 행복해진다. 죽은 오빠가 아픈 어미를 생각해 수술을 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죽은 아들을 여전히 인생의 말뚝으로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수술이 끝난 다음에 발생한다. 어머니가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도 잠깐 곁에서 눈을 붙였는데, 잠결에 나는 주변이 몹시 술렁이는 느낌을 받는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허공을 휘젓고 있다. 무작정 휘젓는 게 아니라 뭔가 신중하고 규칙적인 움직임이다. 얼결에 물으니 마른 빨래를 개어놓는 거란다. 어머니는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눈의 푸른 기가 한층 깊어져서 귀기(鬼氣)까지 감돈다. 간호원을 부른 사이, 푸른 귀기가 돌던 두 눈에 극단적인 공포가 서린다. 어머니는 그놈이 왔다고 외친다. 그놈이라니? ‘는 처음에 그놈을 저승사자로 생각한다. 저승사자를 보고 어머니가 저리 놀라는 거라고. 그런데 아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오라비를 숨겨야 한다고 외친 것이다. 죽은 오라비를 숨기라고? 어머니가 손으로 사방을 더듬더니 붕대 감긴 다리를 만지며 날카롭게 속삭인다. 가엾은 내 새끼 여기 있었구나. 꼼짝 말아. 다 내가 당할 테니.”(95)

 

어머니는 지금 죽은 아들을 떠올리고 있다. 아들이 죽은 그 시점에 어머니는 매여 있다. 어머니가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군관 동무, 군관 선생님,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라고 말한다. 군관 동무는 북한군을 가리킨다. 6.25 때 죽은 오빠는 아마도 북한군과 연관되어 있는 모양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어머니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어댄다. 내가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며 정신 좀 차리라고 소리쳐도 소용없다. 어머니 입에서 안된다, 안돼. 이 노옴. 안돼. 너도 사람이냐? 이 노옴, 이 노옴.”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수술한 다리만 빼고 어머니의 온몸이 성난 파도처럼 출렁인다. 어머니는 안된다 이놈아!’라고 호통을 치다가는 이내 군관 동무를 부르며 아부를 떤다. 틀니를 뺀 상태로 어머니가 이를 가는 시늉을 내기까지 내며 다시 이 노옴을 외친다. 어머니는 이미 오빠가 죽은 그 시간으로 돌아가 있다. 가슴 깊이 파묻어 놓았던 오빠가 어머니의 의식을 뚫고 올라와, 어머니를 이도저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고 내가 사랑한 것 중엔 물론 어머니의 얼굴도 포함돼 있었다. 어머니는 늙어갈수록 아름다운 분이었다. 그건 드물고도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아름다움은 어머니가 말년에 믿게 된 부처님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부처님을 믿는 걸로 어머니가 당한 남다른 참척의 원한을 거의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닮은 곱고 자비롭고 천진한 얼굴로 늙어가셨다. 비록 아들을 잃었으나 거기서 난 손자들을, 그의 짝들을, 거기서 난 증손자들을 딸과 외손자들을 사랑하며, 그러나 결코 집착하진 않으시며 행복하게 늙어가셨다. 누구보다도 화평하게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거의 황홀하리만큼 아름답게 늙으신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저분이야말로 참으로 보살(菩薩)이라고 숙연해지곤 했다. (98~99)

 

어머니는 아들이라는 말뚝을 자신의 삶에서 뽑은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부처를 믿으면 믿을수록 죽은 아들은 더욱 더 어머니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다. ‘는 환각에 빠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비로소 어머니가 아들을 여전히 마음속 깊이 묻어 두고 있음을 알아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놓은 보살이 아니라 보살인 척 행동한 셈이다. 본마음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어머니는 하나뿐인 딸을 보았다. 어머니는 아마도 이것만이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한다고 아들이 살아 돌아올 리는 없다. 괜히 살아 있는 사람들 마음만 처연해질 따름이다. 이성으로 갈무리한 이 마음은 그러나 이성이 제 역할을 못할 때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엄청난 힘으로 마음속에 깊이 숨었던 분노를 표출한다. 아들을 죽인 군관 동무가 표적이지만, 어머니가 분노하는 대상은 그 너머를 향한다.

 

6.25가 터진 해에 가족들은 현저동을 벗어나 중산층이 모인 점잖은 동네에서 살았다. 오빠는 해방 후 한때나마 좌익운동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오빠는 남하를 못하고 적 치하의 서울에 남은 걸 극도로 불안해했다. 권력자들은 이미 서울을 사수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남기고 한강 다리도 끊은 채 도망친 상황이었다. 국민들을 적 치하에 팽개치고 도망친 정부에 대한 원망을 키우며 오빠는 날로 정신이 망가져 갔다. 그런 오빠를 이웃이 고발했다. 인민군에게 끌려간 오빠는 인민 총궐기대회에서 제일 먼저 의용군에 지원했다. 오빠 덕에 남은 식구들은 적 치하에서 보리밥이나마 배 불리 먹으며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석 달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이웃들이 이번에는 빨갱이 집이라고 고발을 했다. 청년당원들이 몽둥이와 총을 들고 달려들어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어머니는 다시 전세가 기울어 사람들이 피난을 가는 와중에도 의용군에 끌려간 아들을 기다린다. 어머니에겐 아들이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문제지 빨갱이냐 흰둥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102)라는 진술에 세상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꾸만 아들을 빨갱이나 흰둥이로 나누어 보려고 한다. 빨갱이가 가면 흰둥이들이 난리를 치고, 흰둥이가 가면 빨갱이들이 난리를 친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빨갱이도, 흰둥이도 아니다. 그저 아들이다. 오빠는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정신은 완전히 망가진 채로였다. 오빠 머릿속에는 오로지 빨갱이를 피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다. 피난을 가려면 시민증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오빠가 어떻게 경찰서에 가서 시민증을 얻겠는가. 이웃 두 명이 오빠 보증을 서면 되지만, 어머니가 아무리 애원을 해도 이웃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피난을 떠난 가족들은 예전 살던 현저동 산꼭대기에 숨어 지내기로 한다.

 

동네는 텅 비어 있다. 가족들은 우물이 있는 집을 골라 들어간다. 며칠 동안 사람이라곤 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빠는 조금씩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였다. 남쪽 친정에 가서 몸을 푼 아내와 아들을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은 결국 인민군들에게 발각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매일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인민군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들을 본 어머니 첫말이 이 집에는 여자들만 산다는 말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온 인민군 군관은 오빠는 뭐냐고 묻는다. 어머니는 대뜸 병신자식이라고 말한다. 인민군들은 틈만 나면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온다. 그때마다 군관은 오빠를 보며 국방군인지 아닌지를 따진다. 또 다시 전세가 바뀌어 인민군이 북으로 올라가야 하는 어느 날, 군관이 사실을 밝히라며 오빠 다리를 향해 총을 쏜다. 어머니가 짐승 같은 소리로 이노옴!’을 외쳐도 소용없다. 군관은 사실을 말하라며 오빠 다리에 서너 발의 총을 쏴댔다. 총상은 치명상이 아니었는데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오빠는 며칠 만에 죽었다.

 

오빠의 살은 연기가 되고 뼈는 한 줌의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는 앞장서서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우린 묵묵히 뒤따랐다. 강화도에서 내린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멀리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 섰다. 그리고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해 그 한 줌의 먼지를 훨훨 날렸다. 개풍군 땅은 우리 가족의 선영이 있는 땅이었지만 선영에 못 묻히는 한()을 그런 방법으로 풀고 있다곤 생각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모습엔 운명에 순종하고 한을 지그시 품고 삭이는 약하고 다소곳한 여자 티는 조금도 없었다. 방금 출전하려는 용사처럼 씩씩하고 도전적이었다. (111)

 

어머니는 서울이 수복되고 화장장이 정상화되자마자 무악재 고개 너머 벌판에 가매장한 오빠를 화장했다. 며느리가 반대했지만 어머니의 뜻은 완강했다. 한 줌의 가루가 된 오빠를 어머니는 개풍군이 보이는 바닷가에 서서 바람에 훨훨 날려버렸다. 개풍군은 선영이 있는 땅이다. 한 맺혀 죽은 아들을 어머니는 고향으로 돌려보낸 것일까? ‘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재로 남은 아들을 바람에 날리는 어머니 모습에서 방금 출전하려는 용사처럼 씩씩하고 도전적인 모습을 본다. 아들을 죽인 빨갱이와 싸우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 소설은 반공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이데올로기 너머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分斷)이란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111)라는 진술에 나타나는 대로, 작가는 분단이라는 괴물과 맞서 싸우려는 어머니의 당찬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분단이란 괴물은 이데올로기다. 우익을 신봉한 남한과 좌익을 신봉한 북한은 이데올로기 싸움을 벌였고, 그것은 6.25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어머니에게 이데올로기는 천금 같은 아들을 빼앗아 간 괴물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죽으면 아들처럼 장례를 치르라고 에게 말한다. 이데올로기라는 괴물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천명한 것이다. 오빠를 그렇게 보낸 는 기가 막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런 일을 해야 하다니. 그후 삼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그 괴물을 무화(無化)시키는 길은 정녕 그 짓밖에 없는가?”(111)라고 는 한탄한다. 분단이라는 괴물은 지금도 우리를 옥죄고 있다. 누군가는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호의호식하는 도구로 삼는다. 누군가에게는 한없는 비극이 누군가에게는 돈을 모으는 수단이 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빨갱이흰둥이로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무엇이 빨갱이이고, 무엇이 흰둥이일까?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이데올로기를 만들었을까?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를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가 왜 도리어 사람들을 죽이는가? 이데올로기에 새겨진 지나친 욕망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욕망을 이상(理想)’으로 바꾸어 부른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를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다. 이데올로기를 모르는 백성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백성들은 어차피 개돼지가 아닌가. 어머니는 아들을 개돼지로 만든 이데올로기를 향해, 그 이데올로기로 이상을 꿈꾼 사람들을 향해, 그리고 그들인 만든 분단이라는 괴물을 향해 홀로 맞서려고 한다. 물론 어머니 혼자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괴물과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고? 그것만이 인간의 품위를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라는 말뚝을 잃은 엄마는 스스로 말뚝이 되어 험난한 세월과 맞선다. 분단된 국가는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그냥 놔두지 않는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양쪽으로 갈라 다른 쪽을 증오하게 만든다. 울타리 밖에는 무서운 적들이 있다. 울타리 밖에 있는 무서운 적을 이기려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 민주니, 자유니 하는 것들은 무서운 적을 이겨낸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다. 그러니 국민들이여,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한 목숨을 기꺼이 바치라고 권력자들은 소리친다. 그래야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까지 외워댄다. 죽은 자식을 마음 깊이 묻은 어머니는 이제 아들이 간 길을 또 다시 가려고 한다. 분단이라는 괴물이 여전히 이 사회를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은 이 땅 깊이 말뚝을 박은 사람들을 뿌리 채 뽑아 저 멀리로 내쳤다. 권력을 쥔 사람들만이 분단의 비극에서 자유로울 뿐이다. 서민들은 아직도 분단의 고통 속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