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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도서] 동백꽃

김유정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 김유정, 「금따는 콩밭」

 

 

 

황금광 시대의 뒷면

 

콩밭에 콩을 심으면 콩이 나온다. 당연한 말을 왜 하느냐고? 콩밭에서 금을 따려고 한 사람이 있어서다. 농부인 영식은 금줄을 찾으려고 콩밭을 뒤덮었다. 이판사판이다. 제 땅도 아닌 곳을 이렇게 들쑤셔놨으니 내년에 땅을 빌리기는 힘들 것이다. 어떻게든 금줄을 찾아내야 그나마 땅을 헤집은 명목이 생긴다. 해만 뜨면 곡괭이를 들고 나와 밭을 파헤치지만, 어디 금줄을 찾는 게 쉽던가. 속이 바직바직 타들어간다. 금줄이 곧 목숨 줄이다. 금줄을 찾지 못하면 목숨 줄이 끊어진다. 애초부터 밭에서 금줄을 찾으려고 한 게 잘못이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일은 벌어진 것을.

 

영식은 제 가슴에 헛바람을 불어넣은 수재를 노려본다. 결정은 자기가 내렸는데도, 그는 금줄을 이야기한 수재가 원망스럽다. 오죽하면 그놈과 더불어 흙더미에 묻혀 죽을 생각까지 할까? 그만큼 영식은 삶의 위기감을 느낀다. 금줄을 찾느라고 아직 세 벌 논도 매지 못했다. 상황을 안 지주는 내년에는 농사지을 생각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에 아랑곳없이 다섯 길이나 땅을 팠건만 금줄은 전혀 잡히지 않는다. 영식이 말이 없으니 수재도 말이 없다. 영식은 영식대로 화가 치밀어 오르고, 수재는 수재대로 친구 눈치만 본다. 영식이 아무 말 없이 땅을 파면, 수재도 아무 말 없이 땅을 판다. 곡괭이 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박태원이 지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보면 황금광 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황금광 시대는 금에 미친 사람들이 많은 시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금줄을 찾아 사람들은 너도 나도 산으로 들로 몰렸다. 금이 나올 만한 곳이라고 하면 땅을 파헤쳤다. 금광 하나를 개발하면 평생 먹고도 남는 돈을 번다. 금광은 요즘으로 따지면 주식으로 대박을 치는 일과 같다. 금광으로 돈을 번 사람의 입소문을 듣고 사람들은 황금광 시대의 대열에 기꺼이 동참한다. 금줄을 찾은 사람보다 찾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으리라. 금광에 빠진 사람들은 오로지 성공한 이야기에만 귀를 열어 놓는다. 근거가 전혀 없는 신념이라고나 할까.

 

땅을 관리하는 마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영식을 찾아와 구덩이를 도로 묻어 놓으라고 소리친다. 지주를 대리해 소작인들을 다스리는 이들이 마름이니, 이대로 놔두면 지주에게 말 듣기 십상이다. 영식은 오늘까지만 해본다는 말을 날마다 반복할 따름이다. 엊그제도 오늘까지 한다고 했고, 어제도 오늘까지만 한다고 했다. 콩밭 이곳저곳에 금줄을 찾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들이 보인다. 저 구덩이를 메운다고 해도 이제는 소용이 없다. 그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다. 이대로라면 밭도지도 갚지 못할 테다. 징역살이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할수록 영식은 수재가 노엽기만 하다.

 

금줄이 언제 나오느냐고 물을라치면 수재는 이제 차차 나올 거라는 말만 반복한다. 지금까지 한 일은 그럼 뭐란 말인가? 화가 난 영식은 흙덩이를 집어 들어 친구 머리에 던진다. 수재도 가만있지 않는다. 곡괭이를 들고 영식에게 달려들지만, 농사로 잔뼈가 굵은 영식을 떠돌이 수재가 어떻게 당해낼까. 빼앗은 곡괭이로 영식은 힘껏 흙벽을 찍어버린다. 그저 열심히 일만 하던 영식을 수재가 부추겼다. 수재는 농사는 짓지 않고 금점을 찾아 곳곳을 싸돌기만 했다. 그런 수재가 영식을 찾아와 콩밭에 금이 묻혀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내뱉는다. 산 너머 금광의 금맥이 산허리를 뚫고 이 콩밭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영식은 수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금점을 칼 물고 뜀을 뛰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잘 돼도 못 돼도 신세를 망칠 수 있는 게 금점 찾는 일이다. 당장 수재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런 영식이 어떻게 수재의 말을 듣게 되었느냐고?

    

그리고 비로소 영식이 아내에게 술병을 내놓는다. 그들은 밥상을 끼고 앉아서 즐거웁게 술을 마셨다. 몇 잔이 들어가고 보니 영식이의 생각도 적이 돌아섰다. 딴은 일년 고생하고 끽 콩 몇 섬 얻어먹느니보다는 금을 캐는 것이 슬기로운 짓이다. 하루에 잘만 캔다면 한해 줄곧 공들인 그 수확보다 훨씬 이익이다. 올봄 보낼 제 비료 값, 품삯, 빚에 빚진 칠 원 까닭에 나날이 졸리는 이 판이다. 이렇게 지지하게 살고 말 바에는 차라리 가로지나 세로지나 사내자식이 한번 해볼 것이다.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 콩 몇 섬을 얻는 게 고작이다. 지주에게 도지를 물면 한겨울을 나기도 힘든 양의 곡식만 남는다. 작년이 올해 같고, 올해가 작년 같은 가난한 삶만이 이어질 뿐이다. 영식은 이러느니 차라리 금을 캐는 게 슬기로운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가 말하는 슬기는 적게 일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재간을 가리킨다. 금줄만 찾는다면 콩밭 농사 따위 짓지 않아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사내자식으로 태어나 언제까지 비료 값에, 품삯에, 빚에 쪼들린 삶을 살 것인가. 지독한 욕망에 빠진 사람은 상황은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려 한다.

 

영식의 아내 또한 반대하지 않는다. 금점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농사에만 매달리면 결국 비렁뱅이가 될 테지만, 금줄을 잡으면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다. 아내는 하루하루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 지긋지긋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내는 가난한 남자를 만나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뼈 빠지게 일을 해도 도무지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호사스런 생활은 못 해도 밥걱정을 하지 않는 평범한(?) 삶을 아내는 꿈꾼다. “아내는 콩밭에서 금이 날 줄은 아주 꿈밖이었다. 놀라고도 또 기뻤다. 올에는 노냥 침만 삼키던 그놈 코다리(명태)를 짜장 먹어 보겠구나만 하여도 속이 미어질 듯이 짜릿하였다.”

 

아내는 광산 일로 돈을 번 남편이 사다 준 고무신을 신고 나릿나릿 뽐내던 양근댁을 떠올린다. 금줄만 잡는다면 어디 고무신으로 끝나겠는가. 얼굴에 분을 바르고 시장에 나가 이것저것 갖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살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 아내는 쉬이 결정을 못 내리는 남편을 부추긴다. 최종 결정은 어차피 영식이 내리는 것이다. 어차피 농사를 지어서는 이 지독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러느니 차라리 금줄에 자기 운명을 거는 게 낫다.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 콩밭에 금이 있다지 않는가. 영식은 이렇게 콩이 무럭무럭 자라는 콩밭을 뒤엎기로 결정한다.

 

금줄은 잡히지 않고

 

동이 트자마자 영식과 수재는 콩밭으로 간다. 수재가 산 쪽으로 이어진 밭 구석을 지목했다. 곧장 금줄이 나오면 얼마나 좋으랴. 영식은 수재가 가리킨 곳에 삽을 꽂고는 땅을 파헤쳤다. 다 자란 콩들이 삽 끝에 으스러진다. 이 콩 하나를 짓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영식은 저도 모르게 콩잎에 흙을 털어낸다. 콩밭을 뒤엎는다고 해도 농부로 살아온 버릇이 단번에 사라질 리는 없다. 진짜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온다. 사람의 힘으로만 농사를 짓는 게 아니다. 땅과 하늘의 힘을 받아야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영식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 삽 끝에 딸려 나온 콩잎을 허투루 다루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눈치 빠른 수재가 그런 영식을 보며 오금을 박듯 말한다. 우리는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금을 캐는 거라고. 농사를 지으면 콩잎 하나도 정성스레 길러야 하지만, 금을 캐려면 밭에서 자란 콩잎쯤은 아무렇지 않게 뽑아내야 한다. 콩잎을 보호하면서 콩밭을 파헤칠 수는 없다. 수재의 말을 들은 영식은 눈을 딱 감고 삽으로 푼 흙을 콩잎 위로 내던진다. 금줄만 잡으면 된다. 금줄만 잡으면 콩밭에 물을 들여 논으로 만들 수도 있다. 돈만 있으면 영식은 하고 싶은 일이 참으로 많다. 문제는 돈이다. 어떻게든 금줄을 찾아 운명을 바꿀 돈을 손에 쥐어야 한다. 이런 판국에 콩잎에 묻은 흙을 털고 있다니, 이 무슨 망령된 짓이란 말인가.

 

영식은 지금 농부의 마음을 완전히 잊었다. 콩밭에 구멍을 내는 두 사람을 보고 마을 노인은 필연코 세상이 망하려는 징조라고 소리친다. 영식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콩밭을 뒤엎은 게 아니다. 한창 여물고 있는 콩을 버리고 그는 일확천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콩밭을 파헤치고 있다. 곡식이 가치 판단의 도구로 인식되는 황금광 세상이 바야흐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황금광 시대의 이면에는 평생을 열심히 일해도 재산을 모으기는커녕 먹고 살기조차 힘든 농민의 비극적 삶이 투영되어 있다. 수재는 그런 농민의 마음을 이용해 제 잇속을 챙긴다. 농민의 마음으로는 버티기 힘든 사회를 영식을 살고 있는 셈이다.

 

금줄을 찾는 데만 신경을 쓰느라 영식은 논농사도 포기하다시피 했다. 논에 물을 채우지도 못했고 벼가 어이 되는지도 몰랐다. 마음 한구석에서 후회가 밀려 나오지만, 상황을 되돌릴 수도 없다. 영식이 애를 태우는 것과 달리 수재는 만사태평이다. 금줄이 언제 잡히느냐는 영식의 물음에 그는 이번에 안 나오거든 자기 목을 베라는 말만 날마다 반복한다. 이 말을 들으면 영식은 다소나마 안심이 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 때마다 피가 마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새벽에 나가 한밤중에 되어서야 그는 진흙투성이 몸으로 집에 들어간다. 들어올 돈이 전혀 없는 집안의 가장이 얼마나 더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아내는 풀이 죽은 채 축 늘어진 몸으로 집에 들어오는 영식을 볼 때마다 맥이 풀린다. 금이 터지면 큰 집으로 이사 갈 거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는데, 남편 꼴을 보니 헛소리를 한 것만 같다. 남편은 새벽에 산제를 지내야 한다며 이웃집에 가 또 양식을 꿔 오라고 한다. 죽을 해먹을 곡식도 없는데 산제 지낼 곡식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한 마디 하자, 남편이 대뜸 아내를 향해 요망 맞은 년이라고 욕을 내뱉는다. 남편은 남편대로 짜증이 나고, 아내는 아내대로 짜증이 난다. 농사를 매진할 때만 해도 남편은 그래도 사근사근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금줄에 눈이 뒤집힌 후로는 아이가 우는 소리에도 퍼뜩 성질을 낸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을 되새기며 아내는 늦은 시간에 양근댁 집을 찾는다. 그동안 이 집에서 양식을 많이 꾸어 먹었다. 그것을 갚기는커녕 또 다시 양식을 꾸기 위해 아내는 떨어지는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내딛는다. 어렵게 말을 뗀 아내에게 양근댁 남편이 선뜻 양식을 내어준다. 산신을 노하게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말까지 들려주는 양근댁 남편이 아내는 그저 고맙기만 하다.

 

쌀을 받아 들고 나오며 영식이 처는 고마움보다 먼저 미안에 질리어 얼굴이 다시 빨갰다. 그리고 그들 부부 살아가는 살림이 참으로 참으로 몹시 부러웠다. 양근댁 남편은 날마다 금점으로 감돌며 버력더미를 뒤지고 토록을 주워 온다. 그걸 온종일 장판돌에다 갈면 수가 좋으면 이삼 원, 옥아도 칠팔십 전 꼴은 매일 셈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쌀을 산다, 피륙을 끊는다, 떡을 한다, 장리를 놓는다그런데 우리는 왜 늘 요 꼴인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메는 듯 맥맥한 한숨이 연발을 하는 것이었다.

 

양근댁 남편은 날마다 금점을 떠돌며 버력더미와 토록을 주워 와서는 온종일 장판돌에 가는 일을 한다. 버력더미는 금을 캐고 내버린 흙을 가리키고, 토록은 광맥의 본래 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광석을 의미한다. 재수가 좋으면 하루에 이삼 원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 돈을 양근댁 남편은 쌀을 사고, 피륙을 끊고, 장리를 놓는다. 금줄을 잡는답시고 애꿎은 콩밭만 파헤친 남편과 견주면, 양근댁 남편은 참으로 실속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아내는 양근댁 집에 양식을 꾸러 갈 때마다 변변치 못한 제 남편이 속상하기만 하다. 누구는 잘난(?) 남편 만나 하얀 고무신을 신는데, 누구는 못난 남편 만나 이렇게 양식이 꾸러 다니니 말이다.

 

헛꿈을 꾸지 않을 때는 그런 대로 가난을 견딜 만했다. 흰 고무신을 신은 양근댁이 부럽기는 했어도, 아내는 양근댁 남편과 제 남편을 비교하며 품평하지는 않았다. “남들은 돌아다니며 잘도 금을 주워 오련만 저 망나니는 제 밭 하나를 다 버려도 금 한 톨 못 주워 오나. , , 변변치도 못한 사나이.”라는 푸념 속에 아내가 처한 현실이 정확히 드러나 있다. 남편을 변변치도 못한 사나이로 규정하는 순간,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을 믿을 수 없게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부장을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을까? 영식은 콩밭만 파헤친 게 아니다. 콩밭에 구멍이 나자마자 집안에도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아내의 말대로 그는 변변치 못한 사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금줄이 터졌다고?

 

산제를 지낼 떡을 하면서도 부부는 한숨만 내쉰다. 당장도 문제지만 앞으로 생활할 일이 더 문제다. 산목숨에 거미줄 치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아내는 떡을 찧다가 얼이 빠져 멍하니 있는 남편을 불만 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기는 이렇게 애가 다는데, 남편은 정신 나간 얼굴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간신히 만든 떡을 들고 부부는 캄캄한 산길을 올라간다. 전면이 검은 산으로 막힌 곳에 느티나무와 대추나무가 서 있다. 밭머리 가까이에 이르자 남편은 아내가 든 떡시루를 받아든다. 그리고는 혼자서 콩밭으로 간다. 왜 혼자서 가느냐고? 여자가 나서면 부정이 탈까봐서다.

 

시루를 들고 가던 남편이 콩밭 앞에 쌓인 흙더미를 돌다가 몸이 기우뚱 흔들린다. 깜짝 놀란 아내가 밭으로 뛰어 올라 부축을 하자, 화가 난 남편이 요망 맞은 년이라고 소리치며 아내의 얼뺨을 올려붙인다. 아내는 넘어지려는 남편을 붙잡은 것밖에는 없다. 한데 남편에게 뺨을 얻어맞았다. 가뜩이나 죽을 판인데 여자가 재수 없게 산제 가는 남편을 붙잡았다는 게 그 이유다. 아내는 어이가 없다. 예전에 남편은 이러지 않았다. 금줄을 찾는답시고 금 한 톨 못 캐는 남편이 이제는 틈만 나면 아내를 때린다. 남편도 죽을 맛이겠지만, 아내도 죽을 맛이다. 출구가 없는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애만 끓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반 병객이 되어가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차라리 죽어나 버렸으면 하고 생각한다. 콩밭 곳곳에 생긴 구멍만큼이나 남편과 아내의 마음에도 구멍이 숭숭 뚫린다.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게 하는 방법은 오로지 금줄을 찾는 일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금줄이 갑작스레 나올 리도 없다. 아내는 이제 흰 고무신이고 코다리(명태)고 간에 금 소리만 들어도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다른 농부들은 누런 들판을 보며 즐거워한다. 금점에 눈이 먼 남편은 논농사도 포기해 가을이 되어도 거둘 것이 전혀 없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들어오는 것은 없고 나갈 것만 쌓였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금을 캐라니까 밤낮 피만 내다 말라는가. 빚에 졸리어 남은 속을 볶는데 무슨 호강에 이 지랄들인구. 아내는 못마땅하여 눈가에 살을 모았다.

산제 지낸다구 꿔온 것은 은제나 갚는다지유?”

뚱하고 있는 남편을 향하여 말끝을 꼬부린다. 그러나 남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어조를 좀 돋우며,

갚지도 못할 걸 왜 꿔오라 했지유!”

하고 얼추 호령이었다.

이 말은 남편의 채 가라앉지도 못한 분통을 다시 건드린다. 그는 벌떡 일어서며 황밤주먹을 쥐어 낭창할 만치 아내의 골통을 후렸다.

 

가슴에 불만이 가득 쌓였으니 말이 곱게 나올 리 없다. 가시가 있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주먹으로 대답을 한다. 남편이라고 아내가 이러는 걸 모를까? 아내 눈에 보이는 엄연히 보이는 게 남편 눈에 보이지 않을 까닭도 없다. 결실을 거두는 이 가을에 남편은 금 한 톨 비치지 않는 콩밭을 파헤치고 있다. 가뜩이나 심란한 판국에 위로해주면 좋을 아내는 남편의 심기를 자꾸만 건드린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 만만한 사람이라고는 아내밖에 없다. 속 좁은 남편은 그래서 아내를 때린다. 마음속에 그득한 이 울분을 풀어 헤칠 방법을 남편은 아내를 때리는 데서 찾고 있는 셈이다.

 

아내도 참을 만큼 참았다.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도 잘못은 남편에게 있다. 친구 말에 속아 이런 사단을 벌였으면 어떻게든 수습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 못난 놈은 그저 애꿎은 아내만 때릴 뿐이다. 맞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매까지 맞으며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아내는 기어이 콩밭에서 금을 딴다는 숙맥도 있담.”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남편의 눈이 뒤집어진다. 아내를 밭둑에 떠다밀고는 발로 허리를 퍽 내질렀다. 남편이 금줄을 찾을지 말지 고심하고 있을 때 아내 또한 수재를 따라 하라는 말로 부추겼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아내는 남편 탓만 한다. 위로는커녕 남편을 비꼬기까지 한다.

 

계속해서 아내를 때리는 영식을 보고 수재는 조바심이 인다. 영식의 울분이 어느 때든 자기에게로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수재는 아내를 때리는 영식을 말릴 생각은 않고 슬금슬금 구덩이 속으로 피해버린다. 가을볕이 만신창이가 된 콩밭에 살갑게 내려앉는 순간, 구덩이 안에서 수재가 터졌네, 터져라는 소리를 내지른다. 구덩이를 뛰쳐나오는 그의 손에 한줌의 흙이 쥐어져 있다. 깜짝 놀라 달려드는 영식에게 수재는 금줄을 잡았다며 불그죽죽한 황토를 내보인다. 황토를 받아든 영식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 상황을 얼마나 고대하며 기다렸던가. 수재는 한 포에 댓 돈씩은 넉넉하게 잡힐 거라고 소리친다.

 

영식이 흙을 움켜쥔 채 아내를 부른다. 좀 전까지만 해도 사정없이 매를 놓던 아내다. 아내는 엄지가락으로 눈물을 지워주는 남편을 보며 그 흙 속에 정말로 금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이제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코다리를 마음껏 먹으며 살 수 있다. 그런 부부를 보며 수재는 시원스레 한 포대에 오십 원씩은 나올 거라고 외친다. 수재는 진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는 오늘 밤에는 무슨 수를 내서든 반드시 달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은 금방 탄로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재는 지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부터 수재는 왜 가진 게 없는 영식을 부추겨 콩밭을 파헤치게 만든 것일까? 금줄을 찾는 일은 원래 어느 정도 자본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던가. 너도 나도 금줄을 찾아 산으로 들로 떠나는 황금광 시대를 영식과 수재는 살고 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금줄을 찾아 나서고, 아무것도 없는 이들은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금줄을 찾아 나선다. 묵묵히 농사를 짓던 영식이 금줄이라는 말에 눈이 뒤집힌 것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가난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농민들이 무슨 일인들 못할까? 수재의 헛된 말에 속아 넘어갈 만큼 영식은 가난한 삶이 지긋지긋했던 것이다.

 

김유정은 황금광 시대의 이면에 드리워진 농민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동백꽃?이나 ?봄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가는 당대 민중들의 서글픈 삶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들은 남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얻고 싶어 금맥을 찾으려는 게 아니다. 하루 세 끼 꼬박꼬박 굶지 않고 먹는 삶을 그들은 동경한다. 가장 기본적인 삶을 이루기 위해 금줄을 찾아 나서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금줄을 찾다가 패가망신한 영식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가진 게 없기 때문에 헛된 욕망을 부풀린다. 영식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영식의 욕망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등단작인 「소낙비」와 「만무방」, 「산골 나그네」 등에도 나타나는 대로, 김유정은 당대 민중들의 비참한 삶에 그 어느 작가보다 관심을 기울였다. 「소낙비」와 「산골 나그네」에서는 능력 없는 남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파는 아내가 나오고, 「만무방」에는 추수를 해도 남는 게 없어 자신이 농사지은 곡식을 훔치는(?) 농부가 나온다. 금줄을 찾아 콩밭을 파헤치는 이 작품에도 순박한 인물들의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분명히 드러난다. 민중들은 살기 위해 사회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김유정은 사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 바깥으로 눈길을 돌리는 민중들의 서러운 삶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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