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년이 온다』
소년은 왜 그곳에 남았을까?
친구를 찾아 나선 중학생 소년이 있다. 시체가 안치된 곳이면 어김없이 들렀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소년은 도청 민원 봉사실에 들렀다. 그곳 복도에 죽은 이들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었기에 이들은 병원이 아니라 민원 봉사실 복도에 누워 있는 것일까? 중학교 3학년이라는 열여섯 소년은 왜 이런 곳에서 (죽은) 친구를 찾고 있는 것일까? 피비린내가 봉사실 복도를 덮고 있다. 복도 벽을 따라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누워 있다. 소년은 친구를 찾기 위해 그 사람들(사실은 시체인)을 들여다본다. 차근차근 살피고 싶은데 오래 들여다볼 수가 없다. 저리 끔찍한 모습을 한 존재가 한때는 숨을 쉬고 말을 하는 생명이었다니.
교복을 입은 누나가 손이 너무 모자라다며 소년에게 도움을 청한다. 천을 잘라 복도에 누운 사람들, 그러니까 시체들을 덮는 일이다. 여고 3학년인 은숙, 양장점 미싱사인 선주와 한 조가 되어 소년은 총에 맞고, 칼에 찔려 몸 곳곳이 허물어진 시체들을 수습했다. 죽은 이들의 성별과 나이, 입은 옷과 신발 등을 장부에 기록하고 하나하나 번호를 매겼다. 이 기록을 보고 사람들은 실종된 가족들을 찾았다. 시신을 찾은 가족들이 간단하게 염을 하고 입관을 하는 과정까지 소년은 장부에 기록했다.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을 태극기로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가족들이 소년은 참으로 이상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바로 나라가 아니던가.
은숙이 소년의 물음에 답한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쪽) 권력을 잡기 위해 시민들을 죽인 군인들은 결코 ‘나라’가 아니라고 은숙은 말한다. 그럼 나라는 무엇일까? 당연히 국민들을 지키는 게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군인들을 보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지 않을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에게 맞선 시민들은 따라서 나라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못된 권력자와 맞서 싸우는 게 된다. 그러니 죽은 이들의 몸을 태극기로 감싸고, 뜨거운 마음으로 애국가를 부를 수밖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시신들은 이제 상무관으로 모여졌다. 말없이 누워 있는 그들을 보며 소년은 임종한 순간의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소년은 그때 분명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빠져 나가는 어린 새 같은 것을 보았다. 지금 이곳에 누워 있는 저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어린 새가 빠져 나갔을까? 원래대로라면 소년은 지난주에 중간고사를 봐야 했다. 시험을 마친 일요일에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인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지도 모른다. 시험을 보고, 친구와 더불어 운동을 해야 할 소년은 왜 시신들이 널려 있는 이곳에 있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하는 사회를 살고 있어서일까? 소년이 그런 사회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누가 소년을 이런 끔찍한 상황에 빠뜨린 것일까?
계엄군이 오늘 밤 도청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식이 도청에 퍼졌다. 은숙은 소년에게 집에 가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도청에 남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 시간을 산 날보다 살 날이 많이 남은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다. 도청에 남으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이들이 도청에 남았다. 친구를 찾아 길을 나선 소년 또한 도청에 남았다. 소년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정대를 보았다. 소년과 정대는 손을 맞잡고 뛰다가 귀를 찢는 총소리에 놀라 뒤돌아 뛰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는 총을 맞았다. 그런 정대를 놔두고 소년은 계속 달렸다. 빌딩 옥상에서 총을 쏴대는 저격수가 무서워 소년은 정대에게 가지 못했다.
그날 밤, 소년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정대는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정대 누나인 정미도 돌아오지 않았다. 공장에 다니는 정미는 동생을 대학 보낸 후에 자신 또한 대학에 가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년이 정대를 찾아 나선 게.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돌아 다녔지만, 끝내 소년은 친구를 찾지 못했다. 그 대신 소년은 죽은 이들이 모인 곳에서 묵묵히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도청을 찾아와 손을 잡아끌었지만, 그 손을 뿌리치고 끝내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는 곳에 남았다. 소년은 엄마에게 여섯 시가 되면 도청의 문이 닫힌다고 했다. 문이 닫히면 집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안심을 하고 집으로 갔다. 엄마와 소년이 만난 마지막 날이었다.
소년은 왜 이 날 도청에 남았을까? 소년은 그날 죽은 이가 정대가 아니라 형들이었다고 해도, 아버지였다고 해도, 엄마였다고 해도 달아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모인 그 누구였다고 해도 역시 달아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생명의 본능이니까. 소년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45쪽)라고 거듭 다짐한다. 저격수의 총에 맞는 게 두려워 친구를 외면한 그 상황을 가슴 깊이 묻은 채 소년은 죽음이 도사린 도청에 끝까지 남았다. 자신까지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 소년은 꿋꿋이 도청에 남았다. 죽음으로 ‘양심’을 지킨 이 소년의 결단에 그 누가 가타부타 말을 할 수 있을까?
열여섯 소년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외쳤다. 친구가 왜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죽어야 했는지 소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이 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는지 소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상무관에 놓인 저 끔찍한 주검들을 볼 때마다 소년은 가슴이 한없이 미어진다.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소년을 도청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엄마 또한 소년을 도청 밖에 있는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도 소년은 도청에 남았다. 이것만이 자기 양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친구의 죽음을 외면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이 소설의 2장인 ‘검은 숨’에서 소년이 찾는 친구(정대)의 행방을 밝히고 있다. 총에 맞아 죽은 정대는 어딘지도 모를 곳에 버려졌다. 수많은 시체들이 탑을 이룬 곳에서 정대는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51쪽)라고 묻는다. 그는 한편으로 자신을 죽인 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그들의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 왜 자기를 총으로 쏘았느냐고, 왜 자기를 죽였느냐고 묻고 싶다.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이 아이의 깊은 슬픔을 그 누가 치유할 수 있을까? 죽은 이는 말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살아 있는 우리가 그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어떻게 해야 죽은 이들이 내뱉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고? 죽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말을 한다.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를 기억하지 않으면 죽는 자는 결코 말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 날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죽은 이들의 한을 풀려면 산 자들이 똑똑히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어떻게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산 자는 어떻게든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서 벗어나려 할수록 죽은 이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자기들을 기억해 달라고 한사코 매달린다.
살아남아서 슬픈 사람들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러니까 죽은 자들과 더불어 사는 게 된다. 3장 ‘일곱 개의 뺨’에 나오는 은숙이 그렇고, 5장 ‘밤의 눈동자’에 나오는 선주가 그렇다. 그들은 소년과 더불어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했지만 소년과 함께 죽지는 못했다. 어린 아이가 죽은 자리에서 그들은 살아남았다. 살아남는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그들은 뼈저리게 느낀다. 소년이 죽은 자리에서 그들도 죽어야 했다. 그러면 살아서 겪는 이 아픔을 저 멀리로 내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그들은 살아남았다. 몸만 살아남은 게 아니다. 기억도 살아남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 끔찍한 기억이 곧 삶이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근무하는 은숙은 서적을 검열하는 사내에게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 요철이 없는 얼굴에 입술이 얇은 사내는 수배 중인 번역자가 어디에 있는지 대라고 했다. 은숙은 보름 전 교정지를 보여주기 위해 번역자를 만났을 뿐이다. 사내는 이를 빌미 삼아 은숙의 뺨을 일곱 대나 때린다. 그녀는 뺨을 때린 사내에게 맞서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어찌 하면 이 순간을 잊을까 생각한다. 다음 날, 부풀어 오른 뺨을 목도리로 가리고 은숙은 출간 예정인 희곡집을 받기 위해 검열과에 들른다. 가제본 여기저기에 먹줄이 그어져 있다. 먹줄이 그어진 부분을 빼면 책으로 낼 수도 없을뿐더러 공연을 할 수도 없다.
‘광주’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죽은 자는 여전히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고, 산 자 또한 여전히 깊은 슬픔을 가슴에 품은 채 살고 있다. 열아홉 살의 여름이 오기 전만 해도 그녀는 사과처럼 볼이 붉은 삶을 살았다. 끔찍한 여름을 보낸 후 은숙은 이십 대의 청춘을 즐기기보다 어서 빨리 늙기를 바랐다. 늙어서 그 여름에 일어난 기억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었다. 빨리 늙기를 소망하는 여자에게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흐른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아픔은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는다. 사내에게 맞은 뺨이야 시간이 흐르면 아물 테지만, 그 여름 이후로 텅 비어버린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채워질 줄 모른다.
은숙은 말한다.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87쪽)고. 그날 밤 열한 시 경 희생자를 파악하고 시신 관리를 총괄하는 (김)진수가 총을 맨 채로 여자들이 모인 방을 찾았다. 그는 여자들을 향해 세 명만 남아달라고 했다. 아침까지 가두방송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죽는 게 두렵기도 했다. 끔찍하게 죽은 이들을 많이 봤는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기로 한 세 여자 중에는 같이 시신을 수습하던 선주도 있었다. 진수는 도청을 나서 집으로 가는 여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나오도록 해달라고 외쳤다. 도청 앞에 시민들이 꽉 차면 군인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전남대 부속병원의 한 병실에서 은숙은 메가폰을 쥔 여자의 가냘픈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라고도 외쳤다. 그 소리가 지나간 자리를 수천 사람이 내딛는 군홧발 소리가 지나갔다.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은숙은 귀를 막지도, 눈을 감지도, 고개를 젓지도, 신음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녀는 다만 같이 나가자는 말을 듣자마자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난 동호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온몸을 떨면서 동호에게 말했다. 지금 나가야 살 수 있다고. 그렇게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 날 이후 은숙은 죽은 이들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쪽)라는 연극 속 대사가 곧 그 날 이후 그녀가 살아온 삶이었다. 장례식으로서 삶이란 무엇일까? 죽은 이와 사는 삶 말고 달리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연극 무대에 오른 소년을 보고서도 동호를 떠올릴 만큼 그녀는 그 날의 현장에 깊이 매여 있다. 죽은 자를 애도해야 산 자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법이다. 자기 삶을 장례식으로 삼은 여자가 어떻게 마음 편히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낼 수 있을까? 그녀는 죽은 자를 가슴에 품음으로써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살아남은 게 끔찍한 비극이 되는 상황이 참으로 애달프지 않은가.
은숙만 그런 게 아니다. 4장 ‘쇠와 피’에 나오는 ‘나’ 또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힘겹게 생을 붙들고 있다. 도청에서 살아남은 ‘나’는 곧바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내 삶의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허용되는 건 오직 미칠 듯한 통증, 오줌똥을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뿐이라는 것을.”(105쪽) 몸 속 깊이 체험했다. 2인 1조로 나오는 한 끼 식사를 상대보다 더 많이 먹기 위해 도청에서 함께 싸운 동지(김진수)를 외면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김진수는 자살을 했다. ‘나’는 광주의 그 현장을 증언해 달라는 연구자에게 김진수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외친다. 추체험은 체험이 아니라는 것. 온몸을 파고드는 그 지독한 아픔은 오로지 그것을 겪어본 이들만 알 수 있다는 것.
‘나’는 스무 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집으로 보낸다는 지도부의 지침을 바로 그들 자신이 거부했다고 고백한다. 살 날이 많이 남은 그들은 왜 죽음의 광장에 남은 것일까? ‘나’는 양심을 이야기한다. 양심이란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116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죽기 위해 도청에 남은 게 아니다.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그 느낌을 실천하기 위해 그들은 도청에 남아 기꺼이 죽음을 맞았다. 계엄군이 도청에 다다를 즈음 김진수는 어린 학생들을 향해 항복하라고 외쳤다. 총을 버리고 살아남으라고 외쳤다. 자신은 목숨을 걸면서도 다른 이는 살라고 외치는 이 숭고한 마음이 양심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고문자는 무엇보다 사람들 마음 깊이 자리한 양심을 깨뜨리려고 했다. 식판에 담긴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으면서 ‘나’와 김진수는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참고 또 참아야 했다. 식욕만큼 강렬한 욕망이 어디에 있을까? 실제로 어떤 이들은 더 많이 먹으려고 으르렁대기도 했다. 이 장면을 본 고문자가 얼굴에 득의의 미소를 짓는 순간, 한 아이가 그들 사이에 몸을 밀어 넣으며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119쪽)라고 더듬대며 말했다. 고문자는 양심을 말하는 이들을 짐승으로 만들려고 했다. 한 줌의 음식 앞에서 그들이 외치는 양심이 덧없이 무너져 내리기를 바랐다.
밥 앞에서 양심이 무너지려는 찰나 한 아이(이름이 김영재이다)가 ‘죽을 각오’를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김진수의 공허한 눈과 마주쳤다. 영재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외삼촌의 목공소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두 살 많은 외사촌형을 따라 시민군이 되었다. 도청을 사수하는 마지막 새벽 외사촌형은 죽었고 영재는 잡혀서 이곳까지 들어왔다. 외사촌이 죽은 이야기를 하면서는 울지 않던 아이가 지금 뭐가 가장 먹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눈물을 흘렸다. 카스테라가 먹고 싶다던 아이는 이후 십 년 동안 여섯 차례 손목을 그었다. 사람을 죽일 뻔했다가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영재의 얘기를 김진수를 통해 들었다. 그리고 그 김진수마저도 자살을 했다.
김진수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피투성이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는 사진이었다. 연구자는 ‘나’에게 김진수가 이 사진을 남긴 이유를 묻는다. ‘나’는 무슨 권리로 자신에게 그것을 묻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나’는 연구자를 향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거냐고?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이냐고?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동족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던가.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은 더 많은 포상금을 타기 위해 가차 없이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다. 죄 없는 시민들이 죽어간 자리에서 살인을 명령한 권력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나’는 말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이라는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135쪽)라고. 그리고 묻는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같은 쪽)라고. 날마다 싸우는 이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 것인가? 오로지 죽음으로만 인간이라는 사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 사람에게 당신은 또 어떤 말을 들려줄 것인가? 살아남아서 슬픈 사람들이 던지는 이 질문을 그저 망연히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으로 서글프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