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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도서] 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낭만적 사랑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같이 있기를 꿈꾸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을까?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그 사람과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소망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연인은 그래서 그 상황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믿음을 저버리느냐고 울부짖는다. 지금의 감정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이 환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왜 자기만은 영원한 사랑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낭만적 사랑에는 늘 한 사람을 향한 순결한 마음이 따라붙는다. 마음만 순결해야 하는 게 아니라 몸도 순결해야 한다. 결혼에 이른 이들에게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라고 말한다. 파뿌리는 흰 머리를 가리키는 말이니, 이것은 나이 들어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라는 의미가 된다. 왜 한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한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관습이 본능인 듯 이 세상에 퍼진 것일까? 낭만적 사랑의 담론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가부장제는 가부장(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제도를 말한다. 개인의 감정에 방점을 찍는 낭만적 사랑이 어떻게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틀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일까?

 

근대사회의 사랑 담론은 자유연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근대 이전에는 집안이 정해주는 상대와 혼인을 했다. 개인보다 집안을 중시하는 관습이 혼인이라는 제도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자유연애 사상은 그러므로 결혼 상대를 개인이 선택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결혼 상대를 선택하려면 자유로이 연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연애와 결혼을 따로 생각하는 게 자유연애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컨대 자유연애 사상은 근대의 가부장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집안의 약속이든, 자유연애든 남녀가 가정을 꾸려 자식(아들)을 생산하기만 하면 가부장제는 존속될 수 있다. 자유연애로 대변되는 낭만적 사랑은 이 지점에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셈이다.

 

정이현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을 내면화한 현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주인공 는 결혼 상대자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다. 그녀는 평소에 고무줄이 헐렁하게 늘어나고 누렇게 물이 빠진 면 팬티(9)를 입고 다닌다. 애인들 앞에서 함부로 옷을 벗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팬티를 입고 만날 남자가 따로 있고, 레이스가 달린 팬티를 입고 만날 남자가 따로 있다. ‘는 팬티를 사수하는 게 세상을 사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남자 앞에서 팬티를 벗느냐에 따라 미래의 인생이 달라진다. 그녀에게 사랑의 열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뜨거운 사랑을 한다고 밥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녀는 팬티를 사수하려는 순결한(?) 마음으로 남자를 유혹하려고 하는 것이다.

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오십 평짜리 빌라트에 신혼살림을 차리는 꿈을 꾼다. 부자 부모를 둔 여자야 이런 꿈이 곧 현실이 될 테지만, 평범한 부모를 둔 는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지 않는 한 이 꿈을 이룰 수 없다. 나는 혼자 힘으로 이 척박한 세상과 맞서야 했다. 진정으로 강한 여성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25)라는 그녀의 외침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척박한 세상에서 강한 여성이 되는 길을 그녀는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데서 찾고 있다. 그러려면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순결을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순결한 몸을 무기로 는 척박한 세상과 맞서려고 한다. 순결만이 오로지 자신을 강하게 할 수 있다고 그녀는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에게 낭만적 사랑이란 명품 가방이나, 고급 차를 선물로 받는 일과 같다. 한 사람을 향한 지순한(?) 사랑을 그녀는 꿈꾸지 않는다. 순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순간, 그녀는 세상 모든 남자를 능력 있는 남자와 능력 없는 남자 둘로 나눈다.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마음껏 돈을 쓰는 삶을 그녀는 누리고 싶다. 순결은 그런 삶으로 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사실 순결은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권력을 쥔 남성들은 순결한 아내(!)를 원한다. 순결한 아내란 다른 남자를 전혀 만나지 않은 여자이다. ‘는 많은 남자를 만나지만, 오로지 한 사람 앞에서 팬티를 벗으려고 한다. 가부장제의 순결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겠다.

 

순결한 여성이 지켜야 할 십계명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일요일 아침, 엄마는 식탁 위 유리잔을 들어올리며 에게 말한다. 여자 몸은 바로 유리잔(그러고 보니 의 이름이 바로 유리)과 같은 거라고. 금이 간 유리잔은 더 이상 유리잔으로서 가치가 없다. 유리잔으로서 가치를 지니려면 유리잔은 금 하나 없이 깨끗해야 한다. 유리잔은 누구를 위해 이렇게 깨끗해야 하는 것일까? 당연히 유리잔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여자 몸의 사용자)를 위해 제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격이 된다. 조그만 흠이라도 있으면 남자는 유리잔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에 깨끗한 유리잔이 널려 있을 테니까. 여자인 엄마는 왜 가부장제가 퍼뜨린 순결 담론을 사실인 듯 딸에게 전파하고 있는 것일까?

 

엄마 또한 할머니에게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엄마와 할머니는 가부장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할머니와 엄마의 말을 이어받는 ,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가부장제가 생긴 이래로 뭇 여성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딸들은 엄마와 다른 삶을 살 거라고 늘 외치지만, 엄마와 다른 삶을 사는 딸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왜냐고? 엄마와 다른 삶을 살려면 가부장제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는 여자는 유리잔과 같은 것이라는 엄마의 말을 다른 방식으로 긍정한다. 엄마가 가부장제가 정한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는 가부장제가 만든 규칙을 이용하려고 한다.

 

가부장제를 지배하는 가부장(권력)은 순결한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한다. 가부장은 아들을 낳아주는 아내와 성적 욕망을 푸는 창녀를 나눈다. 아내(어머니)와 창녀의 이분법은 가부장제를 구성하는 근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은 아내가 될 사람에게 순결을 요구하지, 창녀에게 순결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는 가부장제를 움직이는 권력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부유한 집의 막내아들이자 대대로 놀고먹어도 될 만큼의 유산을 미리 받은 남자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스쿨에 다니는 엘리트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를 은방울꽃에 비유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는 은방울꽃이 청초하고 순수한 느낌을 주는 꽃이라는 걸 알아낸다.

 

남자가 은방울꽃 같은 여자를 원한다는 걸 안 이상, ‘는 스스로 은방울꽃과 같은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녀는 청순함을 콘셉트로 삼아 남자와 만나기 시작한다. 흰색이나 파스텔 계열의 원피스를 입었고, 정성껏 드라이한 머리를 어깨쯤에서 찰랑이게 했으며, 늘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대했다. 조신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스킨십에도 소극적으로 응했다. 드디어 남자 입에서 부모 얘기가 나온다. 자기와 마주치면 사귀는 사람을 얼른 데려오라고 성화를 부린다나. ‘는 하늘과 땅을 걸고 주사위를 던져야 할 순간이 왔다고 직감한다. 지금까지 지켜온 순결을 이 남자가 보는 앞에서 증명해야 하는 그 순간 말이다.

 

남자와 는 건물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유리의 성()’으로 불리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고급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곧바로 객실로 올라간다. 한눈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객실에서 는 완전무결한 첫날밤을 치르기 위한 십계명을 떠올린다. 여러 가지 판본의 십계명이 있지만, 그 모두를 관통하는 주제는 단 하나, 순결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상품으로서 순결을 진열하고 남자는 그것을 많은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다. 순결이 어느 정도의 돈으로 환산되느냐에 따라 순결을 파는 여자의 가치가 결정된다. ‘가 만드는 유리의 성은 이렇게 돈과 권력을 지닌 남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굳건한 건축물로 거듭난다.

 

가 십계명으로 정한 항목들을 살펴보자. 샤워는 혼자서, 남자보다 먼저 하는 게 첫째 항목이다. 남자가 같이 씻자고 해도 여자는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신비감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세 번째로 제시된 속옷 선택에 신중하고, 머리를 촉촉하게 적시는 것 또한 신비감을 높이는 항목들이라고 하겠다. 배뇨감을 없애는 네 번째 항목을 실천한 후 는 욕실 밖으로 나온다. 남자가 욕실로 들어간 사이 는 거울을 보며 최종 점검을 한다. 순결함과 청순함을 강조하려면 은은하게 화장을 하는 게 좋다. 뒤 이어서 적당한 시점에 타월을 깔아라, 조금 머뭇거려라, 엉덩이를 들지 마라,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겨라, 혈흔은 함께 확인해라 등과 같은 항목들이 뒤따른다.

 

뒤에 제시된 다섯 항목은 육체적, 정신적 순결을 증명하기 위한 요식 행위에 해당한다. 여자가 능숙하게 일을 치르면 남자는 여자의 과거를 의심하게 된다. 남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따라 하되, 잠깐은 망설이는 몸짓을 보여야 여자가 내보이는 순결성을 남자가 믿게 된다고 는 생각한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남자와 처음으로 성 관계를 맺는 는 예상보다 아랫도리가 뻐개질 듯한 아픔을 느낀다. 참고 참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는 마무리를 채 하지 못한 남자를 세차게 밀어낸다. 어차피 성적 희열을 얻으려고 치르는 의식이 아니다. 지금은 흰 타월에 찍힌 혈흔만 남자에게 보여주면 된다고 는 애써 생각한다.

 

십계명의 마지막 항목에 나타나는 것처럼, 순결의 상징인 혈흔을 남자와 함께 확인하면 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 된다. 욕망의 여운이 남은 남자는 기가 막힌 듯이 창밖만 바라볼 뿐, 순결의 흔적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살짝 당황한 가 조심스레 이불을 들친다. 흰 타월에 찍혀 있어야 할 혈흔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혹시나 해서 는 자전거를 타지도 않았고, 심한 운동을 한 적도 없다. 당연히 다른 남자와 밤을 보내지도 않았다. 오로지 이 날을 위해 순결을 지켜왔는데, 그것을 증명할 혈흔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남자는 에게 너 되게 뻑뻑하더라.”(33)라는 한 마디 말을 남긴다. ‘는 순결을 증명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지만, 남자가 원한 것은 순결만은 아닌 듯싶다. 어찌 보면 남자에게 순결은 무언가가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무언가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가부장제의 순결 담론은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이다. 가부장은 아내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 다른 누구의 아들이 아닌 바로 자기 아들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길은 단 하나 아내의 순결 밖에는 없다. 가부장은 그래서 아내와 창녀를 나눈다. 아내를 순결의 울타리에 묶는 대신, 가부장은 아내에게는 느끼기 힘든 희열을 창녀를 통해 느끼려고 한다.

 

가 세운 십계명은 그러니까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한 계율이라고 할 수 있다. 순결에 눈이 먼 남자라면 이 계율이 먹혀들지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인 에게 그 이상을 원한다. 남자 역시 지금까지 많은 여자를 만나 왔을 것이다. 남자는 를 은방울꽃에 비유함으로써 자신의 성적 취향을 넌지시 알린다. 여자가 남자 앞에서 연극적인 포즈를 취하듯, 남자 또한 여자 앞에서 연극적인 포즈를 취한 것. 남자를 대하는 여자의 십계명이 있다면, 여자를 대하는 남자의 십계명도 있을 만하다. 남자는 은방울꽃과 같은 와 황홀한 밤을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순결한 아내와 더불어 음란한 창녀를 남자는 에게서 원한 것. 순결 담론에 갇힌 는 무엇보다 이 점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청순한 글래머의 역설

 

낭만적 사랑은 근대의 원리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개인을 삶의 중심에 세웠다.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개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주체로서 개인을 내세움으로써 근대사회는 전통사회와는 다른 삶을 열어젖혔다. 전통사회는 집안에서 정한 사람과 혼인을 하는 게 원칙이었다. 혼인은 집안과 집안을 하나로 잇는 제도였다. 집안이 정한 혼처 대신 개인 스스로 다른 혼처를 구하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혼인은 개인과 개인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집안의 대를 잇는 성스러운일을 이루는 과정으로만 인식되었다. 아들을 낳는 아내는 성스러운 일을 수행하므로 순결한 존재여야 했다. 아내는 성적 욕망을 품은 여자이기 이전에 아들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로서 정립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을 이루려면, 남자는 여자에게 명품 백을 줄 능력이 있어야 하고, 여자는 자신이 처녀로서 한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일을 마치고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동안 남자는 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남자는 를 통해 성적 희열에 이르지 못했다. 남자는 그저 처녀를 원한 게 아니다. 처녀면서 자신을 성적 희열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 여자를 원했다. 남자는 에게 루이뷔통의 로고가 찍힌 가방을 선물한다. 짝퉁이 아닌 진짜 명품. 남자는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로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한다. ‘는 난생처음 명품 백을 소유한 여자가 되었다. 남자와 결혼만 한다면 이런 가방쯤 쉬이 손에 넣을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낭만적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이제야 현실로 드러나는 듯하다.

 

명품 백에 손을 댄 여자는 갑자기 맹렬한 불안감이 샘솟는다. 운전에 몰두하는 남자의 얼굴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진다. 얻고 싶은 것을 얻었는데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일까? 여자는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드는 감정을 내쫓느라 황급히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누가 뭐래도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35)라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가 말하는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낭만적 사랑은 근대가 움직이는 원리와 연동되어 있다. 근대는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사랑과 자본을 연결시키는 것이 이상한가? ‘는 자신을 여왕으로 만들어줄 남자를 원한다. 남자는 여자를 여왕으로 만들어줄 수 있지만, 여왕이 될 조건은 여자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에게는 십계명이다. 자본의 세상에서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이 여자의 삶이 이 글을 읽는 당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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