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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도서]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강성은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나라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았다

어젯밤의 그 나라를 생각했다

나는 원주민이었을까 이주민이었을까

나는 왜 그 나라를 떠나지 않았을까

모두가 떠난 그 나라를

생각에 잠겨 있는데

까마귀 소리는 계속 들리고

까마귀 소리는 아주 검고

까마귀 소리는 하나의 점이 되고

그 나라의 공중을 맴돌고

눈을 떠도 어찌 된 일인지

까마귀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 강성은, '어떤 나라'

 

잠을 자다가 시인은 까마귀 소리를 듣는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시인은 눈을 뜨지 않는다.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어젯밤의 그 나라를 생각한다. 까마귀 소리는 어젯밤의 그 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까마귀와 그 나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어젯밤의 그 나라는 과연 무엇일까? 책에 나온 나라일까? 시인이 꿈속에서 본 나라일까? 그도 아니면 단순히 상상하는 나라일까? 시인은 자신이 그 나라의 원주민인지 아니면 이주민이었는지 궁금하다. 원주민과 이주민은 아주 다르다는 것일까? 하긴 한국사회를 보면 이주민은 원주민만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원주민 사이에도 차별이 있는데 하물며 이주민에 이르러서야. 주목할 점은, 모두가 떠난 그 나라를 시인만이 떠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 나라에 살던 사람들은 왜 그 나라를 떠난 것일까? 대답 없는 질문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모두가 떠난 그 나라를 생각하는 도중에도 까마귀 소리는 그치지 않고 들린다. 까마귀 소리는 음산하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자신만이 홀로 남은 나라를 생각한다. 까마귀 소리는 아주 검어졌다가 하나의 점이 되어버린다. 검은 까마귀는 검은 소리로 운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에 시인은 정신을 집중한다. 검은 점이 된 소리가 그 나라의 공중을 맴돈다. 까마귀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나라 밖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나라 안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까마귀 소리는 나라 안과 나라 밖을 구분하지 않는다. 나라 안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는 나라 밖과 이어져 있고, 나라 밖에서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는 나라 안과 이어져 있다. 검은 소리가 나라 전체를 채운 격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검은 세상이 답답해 시인은 눈을 뜬다. 세상은 환해졌을까?

 

눈을 떠도 까마귀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검은 소리가 들리고, 눈을 떠도 검은 소리가 들린다. 침대에 누워도 까마귀 소리는 그치지 않고, 방안을 돌아다녀도 까마귀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시인은 까마귀 소리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다. 이명처럼 까마귀 소리는 시인의 몸에 새겨져 있다. 감각이다.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감각. 시인은 까마귀 소리가 들리는 나라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다. 제어하기는커녕 시인은 끊이지 않는 까마귀 소리에 그만 미칠 노릇이다. 시인이 묘사하는 어떤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하나 분명한 것은 있다. 까마귀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는 것이다. 아주 검은 소리를 내는 까마귀가 주인인 나라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까마귀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존재다. 까마귀 소리는 이리 보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소리이다. 까마귀 소리를 듣는 시인은 그럼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떤 나라에 고립되어 있는 것일까?

 

강성은은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나라를 이야기한다. 안에만 있으면 보이지 않는 나라는 밖에만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나라는 안과 밖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어떤 나라는 이승이면서 동시에저승이다. 까마귀 소리를 듣는 시인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다. 눈을 떠도 까마귀 소리가 들리고, 눈을 뜨지 않아도 까마귀 소리가 들린다. 까마귀 소리는 시인의 마음속에서 울린다. 안에서 울리는 까마귀 소리를 시인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듯 듣는다. 까마귀 소리는 심연과 같다. 까마귀 소리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저 깊은 바다로부터 비롯된다. 검은색과 참 잘 어울리지 않는가. 검은색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검은색은 얕은 듯 깊다. 의미가 있는 듯 없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모두 흡수하기도 하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밖으로 내뱉기도 한다.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세상을 시인은 어떤 나라로 부른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이 나라에는 당연히 국민이 없다. 원주민과 이주민을 구별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블랙홀은 원주민과 이주민을 구분하지 않고 빨아들인다. 모든 것을 빨아들인 이 검은 나라는 어느 순간 하나의 점이 된다. 빅뱅이라도 일으키려는 것일까? 시인은 모든 것이 뒤섞여 하나의 점으로 변한 어떤 나라를 상상한다. 그 나라는 물론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없는 나라이다. 이곳에 없는 나라에 그 누가 발을 디딜 수 있을까? 오로지 시인만이 홀로 그 나라의 공중을 맴도는 까마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나의 점으로 단순화된 소리로부터 시인은 새로운 나라를 그리는 꿈을 꾼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그리는 상상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어떤 나라는 어찌 보면 원시 지구가 출현하던 우주의 어떤 시점과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망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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