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도 공(空)도 없는 반야의 지혜
광덕사 해우소에서 <반야심경>을 만난 스무 살 청년은 거의 3개월 동안 이 책을 읽고 연구했다. 더불어 아무도 없는 별당에 앉아 하루 내 용맹정진을 거듭했다. 어느 밤 청년은 잊지 못할 신비 체험을 한다. 밤늦게까지 쌍가부좌를 틀고 정진하는데, 갑자기 몸이 그대로 붕 뜨는 것이었다. 부처님 얼굴까지 올라가 살아 움직이는 부처님과 대화를 했다.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를 지은 김용옥의 이야기이다.
억불숭유 정책을 폈던 조선 시대에도 불교의 명맥은 뛰어난 스님들을 통해 이어져 내려왔다. 김용옥은 이 책에서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경허선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울 만큼 휴정과 유정은 불교의 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선종의 교리로 본다면 죽이는 자나 죽임을 당하는 자나 모두 공空일 뿐, 오직 더 큰 살생을 막는 헌신이 있을 뿐"(31쪽)이니까.
선승 서산의 맥은 조선조 말기에 이르러 경허 송동욱으로 이어졌다. 어린 경허는 '박 처사'라는 사람에게 체계적인 문자 수업을 받았다. 사서삼경은 물론 역사서, 도가 경전까지 두루 공부했다. 동학사의 강백으로 이름을 떨친 경허는 서른한 살이 된 1879년 스승인 계허 스님을 만나기 위해 동학사를 나섰다. 17년 만에 동학사 문을 나선 것이었다. 천안을 지나던 길에 날이 저물어 경허는 하룻밤 머물기 위해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렸지만 냉대만 당했다.
한 집에서 지긋한 노인이 나와 마을에 역병이 돈다며 어서 가라고 외쳤다. 경허는 죽음의 동네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마을과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느티나무까지 달려간 경허는 그 나무 아래 피곤한 몸을 뉘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경허는 상념에 휩싸였다. 삶과 죽음을 하나라고 외쳤는데, 그는 죽음이 무서워 저도 모르게 도망쳤다. 자신의 깨달음을 위선으로 느낀 경허는 동학사 강원을 폐쇄하고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석 달만에 경허는 '천비공처(穿鼻孔處)가 없는 소'를 외치며 선방에서 나왔다. 김용옥은 경허가 외친 이 말을 콧구멍이 없는 소가 아니라 코뚜레가 없는 소로 해석한다. 소가 되어도 고삐 없는 소가 되라는 말로 푼 것이다. 경허는 무사지인(無事之人), 곧 세속적인 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 이 말을 받아들인다. 무사지인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이다. '방하착(放下著)이라고도 한다. 여인을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넌 경허의 이야기는 바로 이 상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방하착을 설명하면서 지은이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예수의 말을 인용한다. 사실 어깨의 짐을 내려놓는 데 예수의 힘은 전혀 필요 없다. 스스로 그냥 내려놓으면 된다. 지금 이곳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예수처럼 방하착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교회에 가 기도를 하면 방하착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믿음으로 상황을 오도하는 것은 아닐까?
김용옥은 경허의 이 마음으로 반야심경을 읽는다. 반야심경은 깨달은 보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깨달은 사람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다.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은 보살은 공포도 없고, 전도된 몽상도 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색에 현혹되지 않는단 말이다. 그렇다고 공에 매이지도 않는다. 색을 곧 공으로 여기는 마음은 색과 공을 분별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이것이 바로 반야의 지혜이다. 나와 같은 일반인은 참으로 먼 곳에 있는 지혜이다. 정진하는 도리밖에 거기에 이르는 길이 따로 있지도 않다. 나는 오늘도 반야심경을 읊조린다. 침묵과도 같은 단단한 소리가 내 마음속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