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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을 위하여

[도서] 적멸을 위하여

조오현,권영민 공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가도 가도 제자리에 머물다

 

 

 

  마을 사람들은 해 떠오르는 쪽으로

  중(僧)들은 해 지는 쪽으로

  죽자 사자 걸어만 간다

 

  한 걸음

  안 되는 한뉘

  가도 가도 제자리

  걸음인데

  - '제자리걸음'

 

 

마을사람들이 해 뜨는 쪽으로 열심히 달려간다면, 중들은 해 지는 쪽으로 열심히 달려간다. 해 뜨는 쪽은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를 가리키고, 해 지는 쪽은 욕망과 사투를 벌이는 세계를 가리킨다. 지독한 욕망을 현실에서 실현하려면, 순간의 깨달음을 현실 속에서 맛보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물론 어느 쪽 길을 갈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옳고 그름이란 그 사람이 사는 세계와 연동되어 펼쳐지는 법이니까.

 

시인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한 걸음/ 안 되는 한뉘"라고 표현한다. 한뉘는 한세상을 의미한다.

 

평생의 시간이 한 걸음밖에 안 된다면, 지금 우리는 도대체 어떤 시간을 사는 것일까? 구름을 탄 손오공은 한없는 거리를 날아갔지만, 결국에는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손오공 같은 능력을 지니지 못한 우리 인간이야 새삼 말해 무엇 할까? 욕망을 내려놓는 일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게 없다. 어떻게? 그저 그리로 가는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싶은 것일까?

 

 

  죽음이 바스락바스락 밟히는 늦가을 오후

  개울물 반석에 앉아 이마를 짚어본다

  어머니 가신 후로는 듣지 못한 다듬잇소리

  - '춤 그리고 법뢰(法雷)'

 

 

여기저기서 죽음이 밟히는 늦가을 오후에 시인은 개울물 반석에 앉아 가만히 이마를 짚어본다. 적막한 세상에서는 오로지 개울물 소리만 들려온다. "어머님 가신 후로는 듣지 못한 다듬잇소리"라는 시구로 시인은 개울물 소리를 표현한다. 개울물 소리에는 어머니의 다듬잇소리가 묻어 있다. 다듬잇소리에 개울물 소리와 같은 자연이 서려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 깨달음이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밀려온다.

 

개울물 소리를 듣는 일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법뢰가 일어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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