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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1

[도서] 대한민국사 1

한홍구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다른 관점이 다른 역사를 낳는다

 

 

역사는 사실이자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사실을 해석한 것이다. 관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는 한때 5.16 혁명이라고 불렸다. 전두환이 일으킨 12.12 쿠데타는 또 어떤가? 시간이 흐르면서 혁명은 쿠데타로 교정되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권력의 눈으로 보는 역사와 시민의 눈으로 보는 역사는 이토록 다르다. 우리가 역사의식을 길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마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는 테러리즘에 반대한 것입니다. 저 멀리 유럽이나 중동에서 이름도 생소한 아랍의 무장세력에 의한 테러행위가 발생하기만 하면 예외없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테러리즘을 비난해 왔으니까요.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어떻습니까? 기차에서 내리는 비무장 정치인을 권총으로 암살한 행위, 바로 전형적인 개인테러행위 아닐까요? 그런데 테러리즘 일반이 나쁜 것이라면 유독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훌륭한 행위일 수 있을까요? 안중근 의사의 행위가 옳은 일이었다면, 어떤 테러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명제가 잘못된 것이고, 테러리즘 일반이 나쁜 것이라면 안중근 의사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9쪽)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이고, 신채호는 사기꾼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유럽이나 중동에서 테러를 일으킨 아랍의 무장 세력은 그럼 어떤가? 이들 또한 어떤 명분을 내걸고 테러를 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은 무조건 옳고,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른 아랍의 무장 세력은 무조건 그른 것인가?

 

일본인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근대사의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안중근은 분명 테러리스트이다. 왜 일본의 시선을 안중근 의거에 들이대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한국인의 관점으로 안중근이 일으킨 거사를 바라봐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가뜩이나 이토는 한반도를 발판 삼아 일본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만방에 내보인 인물이지 않은가? 힘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을 품은 정치인이 바로 이토라는 건 분명하다.

 

비무장 상태로 기차에서 내리는 정치인이었고 해도 이런 위험한 인물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렇다면 개인 테러 행위를 무조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옳다고 생각한 일이 그른 것이 될 수 있고, 그르다고 생각한 일이 옳은 것이 될 수 있다. 일본인이 아무리 이토를 옹호해도 우리는 그래서 안중근을 의사(義士)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어떻습니까? 변절의 기미가 보이는 이광수를 꾸짖기 위해 세수할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으셨다는 그분을 많은 역사학자들은 우리 독립운동의 고고한 지사로 주저없이 꼽습니다. 그러나 이분도 일제관헌의 관점을 적용한다면 고고한 지사이기는커녕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질서를 교란한, 요즘으로 치면 유가증권 위조의 파렴치범입니다.

문제는 관점과 기준입니다. 일어난 일은 분명 하나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분명 이토 히로부미를 쏴죽였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분명 유가증권을 위조했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그 행동의 의미를 달라집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국의 의병장으로서 우리를 침략하는 일본국의 수괴 이토를 사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입장에 서느냐, 아니면 일제의 입장과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모든 개인테러행위를 비난하는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그 행동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래서 역사는 골치 아픕니다. (9쪽)

 

단채 신채호는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가증권을 위조했다. 일제 관헌이라면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교란한 인물로 신채호를 평가할 것이다. 우리도 그럴까? 남한이나 북한이나 신채호를 독립운동가로 기린다. 그는 한민족의 독립을 앞당기는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유가증권을 위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방법 자체만 따지면 문제가 있지만, 그것으로 이룰 목적이 정당하므로 우리는 신채호의 행위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골치 아픈 역사의 딜레마는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는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고, 노근리 학살에 참담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벌인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일제와 맞서 싸운 안중근과 신채호를 기리려면, 우리가 해외에서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중 잣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강자의 논리로 역사를 보면 약자들의 아픔이 보이지 않는다.

 

테러리즘이 정당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만 해도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관점으로 이 전쟁을 들여다본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악마이고, 우크라이나를 돕는 세력은 그 악마를 무찌르는 십자군인 듯 생각한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입을 꽉 다문다. 미국은 옳고 러시아는 그르다는 사고는 도대체 어디서 뻗어 나온 것인가? 애꿎은 약자들만 신냉전의 구조 속에서 죽어갈 따름이다.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하고 제국주의적 근대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들이 고스란히 다음 시대에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를 척결하는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현실에서 근대/전근대의 이분법적 도식은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전 시대를 정리하지 못한 불행은 비단 시민혁명의 결여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채 건설되었다 청산 못한 정도가 아니라 친일파를 척결하려던 반민특위가 오히려 친일경찰의 공격을 받아 해산당했고, 친일잔재 청산을 부르짖던 소장파 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 모둔 1949년 6월의 뜨거운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은 친일파 청산을 외치던 민족 세력들이 오히려 친일파에 청산당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9~20쪽)

 

서구의 근대는 시민혁명을 거치며 서서히 이루어졌다. 19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제도로 도입된 한국의 근대는 어떨까? 시민혁명이란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를 시민의 힘으로 척결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은 한국의 근대는 당연히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전근대적 사상을 마음 깊이 품은 채 근대 사상을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게다가 남한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 건국을 선포했다. 대통령은 친일파를 요직에 앉혀 친일파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스스로 포기했다. 친일파 척결을 주장한 반민특위를 친일 경찰이 해산시켰고, 친일파 청산을 요구한 국회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감옥에 갇혔다. 남과 북을 하나로 이으려 했던 김구 선생의 암살로 1949년의 뜨거운 여름은 절정에 이르렀다.

 

친일파 청산 문제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다. 친일파 선조들의 재산을 물려받은 친일파 후손들이 화려한 삶을 누릴 때, 정작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새로운 나라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유명 정치인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사람들은 이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니, 역사적 정의를 실천한 사람들이 핍박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소탕한 박정희는 18년 동안 절대 권력자가 되었고,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은 구국의 영웅이 되어 떳떳하게 대통령 선서를 했다. 과오를 저지른 권력자들은 힘으로 국민을 내리누른다. 총에서 권력이 나온다. 한국의 근대사를 수놓은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을 떠올려 보라.

 

역사는 반복된다. 미국과 이승만 정부 덕분에 친일파는 살아남았다. 이들에게 미국과 이승만 정부는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었던 것이다. 친일파는 반공 이념을 뼛속 깊이 받아들여 그 은혜를 갚았다. 이념 논쟁이 심해질수록 친일파가 설 자리는 그만큼 넓어졌다. 6.25 전쟁은 반공 정책을 더욱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속에서 친일파가 살길 또한 활짝 열렸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관점에서 이 세계를 들여다본다. 미국이 벌이는 일이라면 무조건 찬성하는 극우언론들을 보라. 미군 탱크가 한국의 소녀들을 짓뭉개도 우리 법으로는 그들을 처벌할 수 없다('반미 감정 좀 가지면 어때?').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정권이 나오면 이내 이념에 물든 세력이 나서 비난의 강도를 높인다. 스스로 역사와 대면해 본 적이 없는 지난 시간의 결과라고 말하면 지나친 해석이 될까?

 

인천에 가면 맥아더 동상이 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세워진 동상이다. 맥아더가 아직 생존해 있을 때 건립되었으니, 한국 사회에서 맥아더의 위상을 새삼 알 수 있다. 지은이는 '맥아더가 은인이라고?'라는 항목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지만,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노병의 동상을 보며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211쪽)라고 적는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이 맥아더 찬양이라는 시대착오적 영웅심리를 낳았다고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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