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속의 저항, 그 한계지점에 대해
-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
청소년은 제도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인간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 드리워진 역설이지만, 그 역설을 역설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복잡해진 현대 사회의 삶에 적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학교(제도)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이 대안학교라는 또 다른 제도를 찾아가는 이유는, 제도 속의 인간은 근본적으로 제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에 반항하는 청소년들의 형상은 사실 제도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반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계절 문학상 수상작인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사계절, 2008)에는 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청소년들의 저항 형태가 나타나 있다. ‘머리털’에 대한 지나친 검열을 거부하는 청소년들의 다양한 반응 양태는 제도적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의 실존적 정황을 대변한다. 두발 단속을 자신들의 개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면서도, 그들은 학교의 정책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한다.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고, 그러면 대학 진학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제도라는 ‘틀’ 위에서 전개되는 청소년들의 삶에는 근본적으로 자신들의 개성을 스스로 억압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고리가 내장되어 있는 셈이다.
<열일곱 살의 털>에서 오정고의 학생부장 오광두는 신입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오정고 학생이라면 누구든 이 두발 형태를 지켜야 한다. 두발 규정을 엄수하는 것은 오정고 학생의 기본 자세다. 원칙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마라.”(35쪽) ‘~라면 ~해야 한다’는 원칙은 엄수해야 될 원칙이며, 그것을 어기면 ‘누구든’ 오정고 학생이 될 수 없다. 제도의 담론은 제도의 구성원들에게 틀을 제시하고, 그 틀을 어기지 말라고 ‘명령’한다. 예외가 없는 원칙은 따라서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청소년들과 불화의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제도가 청소년들의 반항을 부추긴다. 반항의 양상은 다양하다. 문재현은 두발 규제에 대한 불만으로 아예 삭발을 했다가 대안학교로 전학하고, 주인공 송일호는 두발 규제 반대 시위를 계획한 것이 적발되어 정학을 당한다. 함께 시위를 계획했던 친구들이 반성문을 쓰라는 학생부장의 요구를 수용하지만, 일호는 교문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며 학교의 부당한 처사에 끝까지 저항한다.
이 소설은 이처럼 홀로 부당한 제도와의 싸움에 나선 일호의 내적 갈등과 학교 선생, 엄마, 할아버지 등과 일호 사이의 외적 갈등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3대째 이발사의 업을 잇고 있는 할아버지는 “열일곱 살이면 어른”이라는 신념으로 일호의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바싹 깎는다. 머리 스타일을 멋과 연관 짓는 일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할아버지는 사회의 질서와 어울리는 머리형을 일호에게 요구한다. 일호는 할아버지의 일방적인 처사가 못마땅하지만, “머리칼은 네 자신을 나타내는 징표다. 머리칼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네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다.”(50쪽)는 할아버지의 말에는 수긍한다. 머리칼을 인격과 동일시하는 할아버지의 생각은 일호가 두발 문제에 저항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두발 규정을 어긴 학생에게 1학년 체육 선생은 라이터를 학생의 머리에 갖다 대며 “정말 불이라도 붙일 양으로 라이터돌을 틱틱 그어 댔다.” 일호는 순식간에 체육선생에게 달려들어 라이터를 빼앗고는 운동장 바닥에 내팽개친다. 머리칼을 인격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체육선생의 행동은 참을 수 없는 ‘인격 모독’으로 비쳐진 것이다.
두발 규제라는 제도에 대한 일호의 반항은 그러므로 “머리칼이 길다고 라이터를 들이대는 선생님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부당한 제도가 반항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부당한 제도를 근거로 학생들에게 군림하려는 선생들의 권위적인 태도가 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시위의 이유를 밝힌 유인물을 읽고 학생부장은 학교 교칙을 어기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글이며, 어른들의 사주를 받은 글이라고 단정한다. 제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른들의 입장은 제도 밖의 세계를 염원하는 청소년들의 생각을 ‘불순하다’고 평가한다. 불순한 싹은 애초부터 잘라야 한다.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 어른과 제도 밖을 사유하려는 청소년들의 생각은 이처럼 발상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너희 학교 규정이 그런 걸. 네가 그런다고 바뀌지 않아”(145쪽)라며 일호의 행동을 꾸짖는 엄마의 생각 역시 제도적 사유의 틀에 갇혀 있다. 현실과 이상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아이들을 제도적 현실에 맞추려는 어른들의 생각이 제도에 대한 아이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심화시키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열일곱 살의 털>에는 엄격한 규율로 통제된 어른들의 육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생체권력’이란 말이 2000년대 들어 문학담론의 중요한 인식틀로 수용되기도 했는데, 사회(제도)는 구성원들의 육체를 훈육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제도가 원하는 주체상으로 만들어낸다. 독재 정권 시절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체험한 기성세대에게 규율은 ‘살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인식된다. 그들 역시 젊은 시절에는 독재정권의 두발 단속에 반항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두발 단속의 주체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학생부장 오광두는 일호에게 “어른이 되어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야”라고 말한다. 훈육의 대상은 제도 속에서 성장하여 훈육의 주체가 된다. 훈육의 대상이었기에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반항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현실 속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사항임을 어른들은 알고 있다. 어른이 되어도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이유는 어른이 되면 스스로 짊어져야 할 제도적 몫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일호는 어른들과의 게임을 “이기고도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단정한다. “이겼다 싶어 득의만면할 때 어른들은 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슬쩍 패를 뒤집어놓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속임수를 능수능란하게 부리는 야바위꾼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41쪽) 일호가 속임수라고 말하는 것을 어른들은 제도적인 현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일호는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고서야 제도와의 싸움에서 살아남는다. 일호의 할아버지는 일호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인물이다. 할아버지는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재개발과 관련된 사건에서 나타나는 바 국가는 반드시 서민들의 삶을 보살펴줘야 한다고 할아버지는 또한 생각한다. 20년 간 세상과 유리되어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며 세상 사람들과 만난다. 재개발을 국가가 하는 일이라고 찬성하던 할아버지는 재개발이 서민들, 특히 집이 없는 가난한 세입자들을 길거리에 내쫓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변한다. 국가는 서민들의 삶을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이 국가(애국심)에 대한 신념보다 더 강했기 때문이다. 학생부장이 아이들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괴발개발 깎는 장면을 목격한 할아버지가 학생들의 머리를 별 모양으로 깎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일으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아버지는 머리털은 인격이라는 신념으로 이발사로서의 자부심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데, 학생부장이 학생들의 머리를 마음대로 자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할아버지의 이런 자부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항의하는 교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종로에서 이발소를 했는데, 우리 이발소에는 그 근처에 있는 학교 학생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 시절에도 두발 단속이 심했지요. 한번은 대여섯 명이 단속에 걸려 머리를 깎이고 와서는 머리 꼭대기 쪽을 별 모양으로 깎아 달라고 했지요. 물론 제가 해주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날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 학생이 그랬지요. 내 자식들 머리는 마음대로 하게 놔둘 거라고요. 아이들 의견을 존중해 줄 거라고 했습니다.”(202쪽)
독재 정권의 두발 단속에 걸려 머리를 깎인 학생들이 할아버지에게 머리 꼭대기 쪽을 ‘별 모양’으로 깎아달라고 요청한다. 국가의 시책에 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당연히 학생들의 요구를 묵살한다. 이런 할아버지가 일호의 학교에서 ‘별 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존중’이라는 말에 드러나는 것처럼, 할아버지는 국가(제도)가 학생들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는다. 재개발을 명분으로 서민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제도)에 할아버지가 저항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유와 동일하다. 교장이 할아버지가 이야기한 기억 속의 인물이라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를 통해 작가가 두발 문제를 ‘인간에 대한 존중’의 문제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별사건’으로 학교의 두발 규제는 폐지되거나 완화되는 방향으로 정리된다.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할아버지의 ‘존중’과 일호가 주장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동일한 맥락 속에 있다. 두 사람은 ‘사람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갖고 제도적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일으킨 ‘별사건’이나, 교장의 갑작스러운 마음 변화는 제도 속의 인물들의 변화치고는 너무 안이하게 그려지고 있다. 과거의 기억에서 길어 올리는 대안은 윤리적인 대안은 될 수 있지만, 실제의 현실을 타개할만한 구체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1인 피켓 시위를 하며 일호는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제도의 벽은 과연 허물어진 것일까? 어른들이 변하면 제도적 마찰도 쉽게 해소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제도 밖의 어른들을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제도 속의 저항을 그리는 청소년 소설이, 또 어른 인물을 통해 그 저항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청소년 소설이 곱씹어서 생각해 볼 문제들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