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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도서] 라인

이송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줄 위에서 찾는 다양한 삶의 길

- 이송현 『라인』

 

 

 

이송현 장편소설 『라인』(사계절, 2017)에 등장하는 이도와 이율은 이란성 쌍둥이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란성 쌍둥이로 소개되고 있다. 이율과 이도가 같은 날 태어난 건 맞다. 다만 이도를 낳은 친엄마는 이도를 신생아실에 놔두고 도망쳤다. 거기다 이도는 혼혈아로 태어났다. 이율의 부모가 이런 이도를 입양해서 둘은 이란성 쌍둥이가 되었다. 두 사람의 특이한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 소설의 중심에 혼혈아이도가 있으리라는 점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이란 사회가 원래 그렇지 않은가. ‘와 다른 사람들을 그대로 봐주면 좋은데, 항상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들을 본단 말이다 이도가 혼혈아라는 기호를 지니고 한국사회에 태어난 순간, 그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차별 사회속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도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난 줄 위에 올라가면 살 것 같아. 온 신경을 다 쏟아 내 발끝으로 걷는 길이 마음에 들어. 줄 위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시선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그게 마음에 들어.”(57)

 

 

이도는 전통 줄타기를 배운다. “줄 위에 올라가면 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줄 위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돌려 말하면 줄 아래에서 이도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시선에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는 말이 된다. 탤런트 뺨 치게 생긴 얼굴과 모델에 버금가는 몸매로 그는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혼혈아 특유의 뽀얀 피부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이도 자신은 그런 제 모습이 싫기만 하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없이 부담스럽다. ‘다르다는 피해의식이 그만큼 이도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도는 너비 3센티미터 나만의 세상.”(58)을 줄타기라는 놀이에서 만끽한다. 다른 사람들은 줄타기를 보며 위태로움을 느끼지만 그는 그 위태로운 놀이공간에서 가장 안전한 길을 발견한다. 위태로운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역설에는 이 사회가 이도를 대하는 차별의 방식이 숨어 있다. 이도는 끊임없이 줄타기라는 골방으로 숨어든다. 그는 줄타기라는 골방에 숨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놓여난 세계를 꿈꾼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도는 자신을 짬뽕이라고 놀린 애의 코를 박살낸 적이 있다. 성장하면서 그가 유일하게 저지른 큰 사고였다. 비행기 사고로 죽은 아버지가 이런 이도에게 줄 위에 서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도만이 아니라 이율도 줄 위에서든 인생에서든 제 앞에 놓인 줄을 잘 따라 걸어가면 괜찮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96)

 

이도가 전통 줄타기를 통해 제 삶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면, 이율은 전통 줄타기를 변형한 슬랙라인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이율은 슬랙라인 세계대회에 참여해 우승하는 게 목표이다. 이도가 줄타기에서 자신이 숨을 공간을 찾은 것과는 달리, 이율은 자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율은 이도가 줄타기를 하는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이율이 나쁜 아이라 그런 게 아니다. 이율은 얼굴 생김새가 다른 이도를 형제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도의 잘 생긴 얼굴을 부러워하기까지 하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이도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차별의식을 이율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 몰래 블로그에 올린 도의 전통 줄타기 장면과 나의 슬랙라인 시범 장면 조회 수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자신의 전통 줄타기 동영상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도는 내게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도의 동영상에 덧붙인 문장도 괜찮았는데 녀석은 펄펄 뛰었다.

이국적인 외모의 초절정 꽃미남이 왜 전통 줄타기에 도전하게 되었을까? (165)

 

 

이율은 슬랙라인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블로그를 만든다. 그리고는 이도와 상의하지 않고 도가 줄타기하는 장면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다. 거기다 그는 이도의 동영상에 이국적인 외모의 초절정 꽃미남이 왜 전통 줄타기에 도전하게 되었을까?”라는 문장을 덧붙인다. 이도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을 저도 모르게 건드린 것이다. 이도는 당연히 이율에게 미친 듯이 화를 낸다. 전통 줄타기 속으로 숨어든 사람을 유튜브라는 열린 공간으로 내몬 격이지 않은가. 이율은 이도가 혼혈아이면서 입양아라는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입양아라는 사실보다는 형제라는 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형제라는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고 이율은 단순하게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율의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이율의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이율의 생각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우리 사회는 이도를 이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도에게 항상 혼혈아나 입양아라는 단서를 붙이려고 한다. 우리 사회를 알리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율이라면 받지 않을 차별을 이도는 받으며 자랐다. 이율은 이율대로 우리 사회를 산 것이고, 이도는 또 이도대로 우리 사회를 산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부여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도에게 전통 줄타기를 가르치는 줄선생(어름사니)’이 이율에게 도는 줄 위에서 끝을 보고 걷는다.”(174)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튀기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이도는 전통 줄타기라는 놀이 세계로 달려든다. 전통 줄타기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도는 전통 줄타기에 매달린다. ‘튀기라는 이름이 듣기 싫어 그는 한국의 전통 속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이율이 쿵푸를 배울 때 그는 태권도를 배웠다. 이율이 피아노를 치면 그는 대금을 배우려고 했다. 한국사회의 바깥으로 내몰리기 싫어 그는 한국 전통 예술에 매달렸다. ‘줄 위에서 끝을 보고 걷는다는 이도의 말에는 한국사회에서 혼혈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그늘진 자의식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율과 이도의 이야기를 통해 살맛나는 세상을 향한 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살맛나는 세상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세상을 가리킨다. 혼혈이라는 기호가 붙어도, 입양아라는 기호가 붙어도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건 마찬가지다. 전통 줄타기에 신명이 있듯 슬랙라인에도 넘치는 흥이 있지 않은가. 신명이 나는 놀이면 다 같은 놀이인 것이다. 이도는 전통 줄타기를 하고, 이율은 슬랙라인을 한다. 신명이나 흥은 그 모두에 있다. 둘 다 발바닥이 온통 굳은살 투성이”(222)가 될 정도로 줄타기에 몰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줄을 제대로 타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두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아니다. 줄을 타면서 두 사람 발바닥에 새겨진 굳은살에 우리는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자기 세상을 펼치기 위해 3센티미터 너비의 줄 위에서, 혹은 5센티미터 너비의 줄 위에서 그들은 오늘도 신명을 다해 놀고 있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꼭이 두 사람 발바닥에만 굳은살이라는 상처가 생긴 건 아니다.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주다인의 발바닥도 이들 못지않게 숱한 상처로 뒤덮여 있다. 신명이 나서 온몸으로 내달리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자꾸만 이런저런 멍에를 들씌우고 있다. 멍에에 묶여 뒷걸음질 치며 좌절하는 청소년들이 보이지 않는가? 우리 사회도 이제는 이들을 드넓은 들판에 풀어놓을 때가 되었다. 굳은살투성이가 된 그들의 발바닥을 인정해 줄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땀이 피보다 진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차별에 들뜬 한국사회의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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