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꺼억,꺼억 속울음 삼키며 책 한 권을 읽었다. 바쁨을 기쁨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지만, 정신을 차릴 새가 없을 만큼 빡빡한 일정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졸려도 그냥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참 신기한 책이다.
나는 오래 전, 동생이 말기 위암으로 뼈만 남은 채, 딴 세상으로 간 경험이 있다. 통곡해도 떠난 동생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갔고, 남은 건 그토록 사랑한 동생의 아들이었다. 지금도 그 아들을 볼 때마다 명치 끝이 아프다.
그리고 도예가로 열심히 활동하는 바로 밑 동생이 유방암 수술을 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하고 투병하는 동안,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 동생은 담대히 병을 이기고 더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다. 가족력이 무섭다는 말 때문에 나 역시 주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암 환자인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섬겨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부부 이야기가 나왔다고 해서 일착으로 책을 주문해 놓았다.
어젯밤 단숨에 다 읽었다. 아픈 동생에게 나는 정말 아무 것도 못해 준 이기적인 언니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쓴 강애리자 씨처럼 환자를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랄까. 기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아픈 남편을 위해 허벅지 살이라도 떼어 줄 마음으로 간호할 때, 기적이라는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이 책 속의 모든 내용이 여실히 말해 주고 있다.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은 배가 아프다는 남편이 간단한 조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육 개월 밖에 못 산다는 의사의 말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흔세 차례나 계속되는 남편의 항암치료 동안 느낀 불안, 아픔, 상실감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항암 치료를 받는 힘든 남편을 위해 먹거리를 열심히 만드는 아내의 정성이 놀랍다. 하루에 여섯 끼도 먹이고 여덟 끼도 먹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러나 절대 징징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글 자체는 한 편의 희곡처럼 통통 튄다. 역시 작사를 하는 분답구나 싶다.
강애리자 씨의 남편 박용수 씨는 2021년 3월 29일 발병하여 2023년 1월 17일까지 육백사십칠일 간 항암 투병을 한 후 건강을 회복했다. 암 덩어리가 작아지는 과정을 소설처럼 긴장감 넘치는 글로 쓴 책이다.
강애리자 씨가 남편을 간병하며 쓴 노래 가사를 보면 그녀의 남편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당신과 손잡고 걸어가는 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당신과 먹는 따스한 밥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 나를 보고 웃어주는 당신의 얼굴
세상에서 제일 신비한 소리 나에게 속삭이는 당신 목소리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나는 당신을 찾을 거야
먼지가 되어 떠돌아다녀도 우린 또다시 만날 거야”
“남편을 살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절망의 순간 저를 살렸던 남편처럼……. 남편이 없으면 제 인생도 끝이기에……. 하루를 살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간에서 살려고 죽을힘을 다해 무조건 살리기로 했습니다. 이 다짐은 남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혼자 남을 제가 무서워서이기도 했습니다. 저를 위해서 제 목숨의 반을 내어주더라도 살려내어 오랫동안 얼굴 보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꼭 살려보기로 했습니다.”
저자의 고백을 읽으며, 잠든 옆지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있을 때 잘해!“ 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밤이었습니다.
”건강할 때 잘하며 살자.“
이 책은 암 투병기만은 아니다. 부부가, 가족이, 친구가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에 대한 자기 점검표 같은 책이다. 아픈 이야기지만 우울하지 않아 좋습니다. 희망을 읽고 희망을 얻은 느낌입니다. 강추입니다.
참, 강애리자 씨는 <분홍립스틱>을 부른 가수입니다. 말기암 환자였던 박용수 씨는 그녀의 남편이고요. 제목도 해학적이지요?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