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페스트

[도서] 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서상원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1940년대 알제리의 한 도시 오랑에서 의사 리외는 자신의 진료실을 나오다 죽어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하고, 그다음엔 비틀거리다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를 보게 된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비극의 서막이었다. 처음 쥐를 발견하고부터 죽어나가는 쥐 떼들. 죽은 쥐의 수가 몇 천에 이르렀을 때, 쥐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목숨을 잃는 사람이 발생한다. 과거 중세 유럽에서 엄청난 수의 사망자를 낸 페스트가 발병한 것이다. 안일한 태도로 수수방관하던 당국은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그제서야 도시를 봉쇄하고, 시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아픈 아내를 오랑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요양 보낸 의사 리외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은 타루, 취재로 우연히 오랑시에 머물렀으나 아내가 있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은 신문기자 랑베르, 페스트가 죄를 지은 인간에게 신이 내리는 형벌이라고 설교하는 파늘루 신부. 페스트가 가져온 대혼란 속에서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는 많은 사람들. 의사들의 노력과 타루를 비롯한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보건대가 조직되어 페스트 퇴치를 위해 힘쓴다. 열 달의 기나긴 시간 끝에 페스트는 오랑시에서 자취를 감춘다.

"오늘날 페스트가 우리에게 닥쳐온 것은 반성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올바른 사람은 조금도 페스트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공포심을 느낄 것입니다. 신은 재앙의 도리깨를 사정없이 휘둘러 지푸라기와 알곡을 가져낼 것입니다." (본문 65쪽)

책 속에서 보이는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어이없었던 사람은 파늘루 신부였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재앙이 죄인에게 내려진 신의 형벌이라니. 내가 개신교인이라서 더더욱 이런 설교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를 비롯한 많은 재난을 신의 심판이라고 떠들어대는 종교인들이야말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닐까. 물론 후에 죄 없는 어린아이가 페스트로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파늘루 신부도 보건대에 힘을 보탰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내가 믿는 신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었으면 한다.

"자신이 도덕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모두 페스트 환자처럼 취급하지요. 그들은 범죄자들을 없애 버려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사회가 사형 선고라는 제도 위에 세워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과 싸움으로써 살인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오늘날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으며, 또한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66-167쪽)

타루라는 인물은 열일곱 살 때 자기 검찰 차장이었던 아버지가 맡은 재판에서 아버지가 죄수를 교수형에 처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죄인에게 아무런 가책 없이 죽음을 선고하는 모습에 또, 이 제도 위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는 사람을 살리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 싶은 타루. 그는 보건대를 조직하고 구호에 힘쓴다.

내가 직접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 법도 아니지만 이 사회에서 정의의 이름 아래 행해지고 있는 살인에 나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내 목소리를 내지도, 나서지도 않으며,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행동이 나의 페스트인 것이다.

페스트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하지만 결국 그들은 힘을 모았다. 어느 순간 점점 힘을 잃고 사라진 페스트는 그들의 연대가 가져온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페스트가 물러가고 기쁨의 환희를 외치는 군중들 속에서 리외는 생각한다. 페스트는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고..

'앞으로 언젠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동시에 일깨어 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불러내 어느 평화로운 도시로 몰아넣어 그곳에서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본문 188쪽)

코로나19로 세계는 공황 상태에 빠져있다. 이 혼란이 잠잠해지는 날이 오긴 하겠지만, 지구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라진다고 해도 또 다른 바이러스, 혹은 전쟁이나 사회문제들이 끊임없이 인간들을 위협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며, 서로를 지지해 주는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지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이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평화로웠던 그리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