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스피노자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공부가 시험이라고 여기며 불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시험공부를 벼락치기로 하다보면 정말이지 온 몸에 있는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공부가 나의 전부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만 했던 모순은 시간은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처럼 무심하게도 돈을 벌어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였습니다. 문제는 계속해서 아무런 만족 없이 살아가는 게 무척이나 싫었습니다. 분명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꼭 해보고 싶은 욕망을 멈출 수 없는 자기 목표가 있었습니다.
한동일의『라틴어 수업』을 묵묵히 들으면서 당연한 논리에 복종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삶이 있는 한 나의 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논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는 정반대입니다. 나의 논리는 이 책의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논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공부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공부하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어왔는데 또, 공부하라고 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졸업장이나 스펙이 아닌 인생을 위한 공부는 학교 공부와는 다릅니다. 학교 공부는 맹목적으로 취업을 우선시합니다. 그런가하면 인생 공부는 삶의 의지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부하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게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공부를 머리로만 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를 실감하면서 공부는 리듬이며 습관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런데 ‘라틴어 수업’이라는 제목을 보면 공부의 습관하고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집니다. 영어라고 하면 모를까, 굳이 실생활에 쓰이지 않아 사어(死語)처럼 여겨지는 라틴어를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라틴어 문법은 굉장히 복잡해서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들조차 오죽했으면 라틴어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라고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까지 공부하기 어려운 라틴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영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들이 대부분 라틴어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진리는 라틴어를 공부하게 되면 지식이 양적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사고 체계를 넓혀준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천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라틴어 원전으로 고전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천재가 되고 싶다면 라틴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라틴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언어는 공부가 아니다.’라는 역설적인 명제를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언어를 암기하며 공부하는 것은 학문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학문의 목적은 어떤 것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는 것을 바탕으로 사고의 틀을 확장해야 합니다. 가령,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오늘을 즐겨라,는 라틴어입니다. 카르페 디엠을 단순히 알고만 있는 것은 죽음에 불과합니다. 삶은 있는 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듯 삶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답답할 때 다시 태어 난 것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한동일의『라틴어 수업』은 인생의 좋은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 기계적으로 소모되는 존재가 아니라 공부하는 노동자의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