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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스케일의 우주 서사.

지금으로부터 수만 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은하계 단위의 영토를 가진 “제국”과 그에 속한 대귀족 가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다룬 엄청난 스케일의 영화다. 자칫 유치해지기 쉬었지만, 이야기를 볼꺼리 쪽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정치적 음모,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더 큰 계획이 좀 더 두드러진다. 괜찮았던 선택.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CG를 못 봐줄 만한 정도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나 잠자리 모양의 소형 비행선은 아주 인상적이고, 개인의 몸을 덮은 보호막이나 거대한 함선 등도 눈길을 끈다. 그리고 배경이 우주 단위이다 보니 짧은 시간 등장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우주 군대도 장관이고. 무엇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모래 가득한 행성과 거대한 모래지렁이도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이렇게 규모가 큰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일단 틀을 잡는 데 시간이 꽤나 걸린 듯하다. 원작이라는 소설을 먼저 읽어본 사람이라면 배경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겠지만(근데 이쪽도 도서관에 갔다가 엄청 두꺼운 책들을 여러 권 본듯해 쉽지만은 않을 듯), 나처럼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은 흘러가는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 초반 한참 주의를 기울여야 할 듯하다.

 

에를 들면 영화 속 세계관에서 중요한 자원인 스파이스가 무엇인지,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 같은 내용은 초반에 책 내용으로 흘러가는데, 너무 금방 지나가서 제대로 설명이 되지 못한다. 또, 수만 년이나 지난 미래에 어째서 이런 봉건제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지, 사람들이 칼을 들고 싸워야 하는지 같은 부분은 따로 작품의 배경에 관한 설명을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고.

 

그렇게 영화에 말미에 이르면.... 음? 지금 2시간짜리 도입이었어?

 


 

 

실현된 예언.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제국의 대귀족 아트레이드 가문의 후계자인 폴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에언 속 구원자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종교들에서 유사한 내용의 전설, 혹은 예언이 발견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현실의 문제에 대한 불만과 그에 대한 해소의 희구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현상이고, 그걸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인물을 미래에서 찾는 것도 그 연장선인 듯하다.

 

영화는 예언의 실현을 다룬다. 진실한 예언은 그렇게 실현으로써 증명된다. 물론 예언의 실현까지는 오랫동안 기다림이 필요하다. 영화 속 반(半) 비밀결사인 베네 게세리트는 그렇게 예연의 성취를 기다리는 인물들로, 오직 여성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독특한 조직인데 오직 예언의 성취에 모든 것을 건 채 다른 것을 포기한 듯하다.

 

예언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리석게만 보일지도 모른다. 당장 손에 잡히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 잔뜩 채워져 있는 세상에서는 더욱 더. 하지만 예언이 실현된 후에는 비로소 그들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이 증명되는 동시에, 그 기다림이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물론 어쩌면 그 실현된 모습이 그들의 기대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믿음이라는 건 그런 기다림과 보상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길수록, 그 보상도 더 만족스러운 법이다.

 

기독교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그 ‘기다림’이 끝났다고 주장한다는 부분이다. 예수가 오래 전 예언자들이 말했던 세상을 구원할 분이시고, 그분이 마침내 자신이 할 일을 끝냈다는 것이 사도들의 선언이었다. 이런 면에서 영화의 주인공 폴(“바울”이다)은 예수, 또는 그의 제자들과 오버랩 된다. 그는 적들에 의해 고난을 당하면서 차근차근 자신이 실현해야 할 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미리 본다는 것.

주인공 폴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아직까지는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 정도)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보면서 걷는 자’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신이 보는 환상이 실제로 일어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보는 것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한다. 믿음을 가진 이들이 실제로 뭔가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들은 이미 성취된 예언들을 보면서,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 실현될 날을 미리 본다. 그들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겠지만, 일단 그들이 보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오늘의 기독교가 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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