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명가 시리즈는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이 다루고 있는 학문의 분류부터 친절히 안내해준다. 이번에 나온 책은 크게 문학의 범주에서 세부적으로 서어서문학, 즉 스페인어권 세계(나아가 포르투갈어권까지)의 언어와 문학을 탐구하는 영역에 속해 있는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그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책에서 주로 다뤄지는 개념들의 정의를 설명하여 독서에 도움을 준다.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는 매력적인 제목의 이 책은 앞서 말했듯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을 다루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란 우리에게 익숙한 중남미 지역의 국가들, 지도의 위도로 보면 위로는 멕시코에서 아래로 칠레와 아르헨티나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독립을 이루었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미국-스페인 전쟁 직전인 19세기 말의 일이라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라는 용어는 쿠바 혁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온 세계로부터 관심이 집중되었고, 역으로 쿠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은 국제화되고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치적으로 혁명을 이루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배후에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끼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간섭과 지원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비슷한 혼란과 시련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혼탁한 상황이 오히려 라틴아메리카문학에 특유의 색채를 더해간 건 아닌지모르겠다.
1960년대 유럽 소설의 위기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서사의 회복과 함께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 주변부 문학에서 중심부 문학으로 들어오면서 이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작가들을 ‘붐 세대’라고 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발견한 ‘마술적 사실주의’로 명명되는 창의적인 글쓰기 방식은 사실주의의 지역적 변형을 넘어 탈중심적인 새로운 세계 인식의 방법이기도 하다. 라틴 아메리카 고유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며, 전근대와 (탈)근대가 공존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일상적 삶의 범주에서 확인되는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적 현실이라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과 서구 문명이 혼합된 형태로 오늘날까지 이어온 라틴 아메리카 문화는 이러한 역사적 이중성 가운데서 사회와 문화, 정치 등에서 마찬가지의 특성을 띄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혼합된 형태가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라는 고유의 문화로 자리를 잡게 된다. 확실히 미디어를 통해 보게 되는 중남미 국가들은 오롯이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가 어지럽게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인상이 있다. 그런데 그게 또 하나의 특징이 된다는 미묘함이 있다.
주류 세계의 문화적 공백과 전쟁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환상과 현실, 이성과 비이성을 넘나드는 새로운 의미의 ‘서사의 귀환’을 선보이며,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방향을 제공했다.
그에 앞서 라틴아메리카는 시적 전통이 매우 강한 대륙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인들이 닦아놓은 탄탄한 문학의 길이 없었다면 라틴 아메리카 현대 소설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는 붐 작가들에 앞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세계적인 시인이었다.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상 깊은 정의들이 나온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특히 시 문학에 집중하여 그 주요 인물 네 사람, 루벤 다리오,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를 다루고 있다.
루벤 다리오는 모든 라틴 아메리카 시문학의 근원이며, 그 영향에서 벗어난 후예들이 없다고 할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고, 네루다는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사회참여적인 측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고, 많은 사랑을 받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한다. 바예호를 다룬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나는 신이 / 아픈 날 태어났다'라는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고통을 가장 시적으로, 가장 근본적으로 표현한 시인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었다. 파라는 '나는 시를 청산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다'라는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문학 속에서 다시 반기를 들었다는 점, 형태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시인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어떤 특징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나라 문학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현실과 가상현실이 점점 구분되지 않는 세상으로 가는 이 시대에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이중성 속에서 독특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 그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간접적인 조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였다.
이미 존재했지만, 새로웠던 세계에 한 걸음 더 발들여놓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에 의미를 둔다.